▲미국인들은 이미 한 번 인사를 한 사람에게조차 계속해서 '추가인사'를 던지는 경향이 있다. 외면을 어색하게 여기는 미국인들의 관습은 낯선 이에게 웃음이나 인사를 던지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잠깐 자리를 뜨고 돌아온 후에 '괜찮니?' 다시 라고 묻기도 한다. 이것은 상대에 대한 관심을 표현이기도 하지만, 어색한 침묵을 깨고 다시 대화를 시작하는 윤활유 기능도 한다.
강인규
인사의 유통기한미국인들이 쓰는 인사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한국의 '안녕하세요?'에 해당하는 가장 흔한 표현으로는 '하우 아 유(How are you)?'와 '하우 아 유 두잉(How are you doing)?' 두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빌이라는 대학원 친구를 바에서 만나기로 한 적이 있다. 10분 정도 일찍 도착한 나는 맥주 한 잔을 시켜 놓고 기다렸다. 얼마 후 그 친구가 문을 밀고 들어섰다.
"헤이! 하우 아 유 두잉(Hey! How are you doing)?" 한국에서 영어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에 대한 대답은 '파블로프의 개' 수준의 조건반사에 가깝다.
"파인, 앤드 유(Fine, and you)?"
그 친구는 '잘 지낸다'고 답하며 성큼성큼 걸어왔다. 내 맥주잔이 탁자에 놓여 있는 것을 본 그는 '나도 한 잔 가져오겠다'고 말하며 카운터로 갔다. 잠시 후 빌은 김이 허옇게 서린 차가운 맥주잔을 들고 왔다. 의자를 빼고 앉으며 그는 다시 물었다.
"하우 아 유 두잉?"3분 만에 또 안녕하냐고?이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는 가장 자신 있는 영어표현에 대한 확신도 무너지기 마련이다. 유학생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길을 걷던 한국인 유학생 한 명이 눈 위를 걷다 미끄러져 길바닥에 넘어졌다. 뒤를 따라 오던 행인이 근심스런 표정으로 묻는다.
"괜찮으세요(Are you OK)?"본능이 답한다.
"파인, 땡큐. 앤드 유(Fine, thank you. And you)?"3분 만에 다시 '안녕하냐?'고 묻고 빤히 얼굴을 쳐다보는 미국인 친구. 생각이 복잡해진다. 혹시 아까 처음 만났을 때 인사를 했다는 사실을 잊은 것일까? 친구는 다시 묻는다.
"하우 아 유 두잉?" "파인… 앤드 유?"미국인들은 자주 이 질문을 던진다. 이처럼 반복되는 질문에는 여러 가지 목적과 정서가 담겨 있다. 하나는 상대에 대한 지속적 배려를 과시하는 것이기도 하고, 잠시 헤어졌다 만난 사람과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한 분위기 환기 장치이기도 하다. 상대의 기분을 자주 확인하는 것은 미국인 특유의 다정함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침묵에 대한 어색함과 더불어 타인에 대한 기묘한 불안감도 함께 녹아 있다.
미국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사람들에게조차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인사'를 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복도 같은 곳에서 서로 지나쳐 가면서 눈썹을 이마 위로 추켜올리며 아는 척을 하거나, 장난스럽게 별명을 부르거나, '역시 자네가 최고야(You're the man)'처럼 의미 없는 말을 던지는 것이다.
미국인들이 던지는 '괴상한' 질문들지역과 문화권, 그리고 개인에 따라 타인에 대한 '배려'의 영역은 조금씩 다르기 마련이다. 거칠기로 말하면 세계 어디에도 지지 않을 서울의 운전자들도 신호등에 서면 앞의 운전자가 '눈부실까 봐' 헤드라이트를 꺼주는 자상함을 보인다. 물론, 그 앞 차가 신호가 바뀐 뒤 조금이라도 주저하면 뒤의 '천사 운전사'는 미친 듯 경적을 울려 댈 것이다.
미국 가게의 계산대에 서면 전 세계 어디서도 듣기 어려운 자상한 질문을 들을 수 있다. '영수증이 필요하냐'거나 '물건을 봉투에 담아드릴까요' 등의 질문은 세계 어디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미국 점원은 이렇게 묻는다.
"Would you want the receipt with you, or in the bag?"(영수증을 그냥 드릴까요, 아니면 물건과 함께 봉투에 담아 드릴까요?) 이 질문을 던지는 점원 손에는 영수증이 들려 있고, 방금 돈을 낸 고객의 손이 계산대 위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고객은 이 실존적 문제로 잠시 고민한 후 답변을 내 놓는다.
"봉투에 넣어 주세요." 고객의 손 주변에 어른거리던 영수증은 다시 되돌아가 저 편 봉투 속으로 모습을 감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