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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안읍성에는 그에 맞는 장인제도가 있어야 한다 낙안읍성에 기능인 제도가 생긴지 16년, 제도적 뒷받침과 일관된 정책이었다면 이미 낙안읍성의 또다른 매력, 장인마을이 생기고도 남았으리라는 지적이다. 지금이라도 낙안읍성만의 '장인제도'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에 귀기울여 볼만하다 ⓒ 서정일
▲ 낙안읍성에는 그에 맞는 장인제도가 있어야 한다 낙안읍성에 기능인 제도가 생긴지 16년, 제도적 뒷받침과 일관된 정책이었다면 이미 낙안읍성의 또다른 매력, 장인마을이 생기고도 남았으리라는 지적이다. 지금이라도 낙안읍성만의 '장인제도'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에 귀기울여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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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전통을 이어가는 순천시 낙안읍성
'전통(傳統)'이란, 습속이 예로부터 후대까지 전해 내려옴을 의미한다. '문화(文化)'란, 전해 내려오는 것 중에서 가치가 있거나 뛰어난 것을 추려내 펼쳐 놓음으로써 시간적 공간적으로 자리잡아가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런데 굳이 거창하고 좀 특별하게 느껴지는 문화라는 단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전통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가치와 느낌이 충분히 전해지는 곳이 있다. 바로 전통마을인 순천시 '낙안읍성'이다
낙안읍성은 전통마을에 걸맞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 놓고 있다. 짚물공예, 길쌈, 대장간, 자연생태, 읍성군악, 전통농기구체험, 동헌체험, 옥사체험, 대장금, 천연염색, 국악교실, 도자기, 한지공예, 목공예 등 14개 종목은 매일 운영되고 수문장교대식, 가야금병창공연, 읍성군악, 낙안서당, 소달구지 등 5가지는 주말마다 펼쳐진다.
그럼 낙안읍성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직접 시연하며 전통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나 대우는 어느 정도일까? 안타깝게도 그들이 있는 곳과, 그들을 칭하는 '체험장'과 '기능인'이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우'라는 것에서는 좀 벗어나 있다.
최초 기능인 짚물공예가 임채지씨 낙안읍성 떠나
낙안읍성에서 기능인의 시초라고 하면 지금은 다른 도시로 자리를 옮겼지만 16년 전인 1993년경부터 짚물공예를 했던 '임채지'씨를 들 수 있다. 그는 짚물공예로도 유명했지만 상투를 틀고, 수염을 기르고, 한복을 차려입고, 너털웃음과 해학적 만담으로 관람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평소 때에는 물론이고 주말이나 휴일이 되면 임채지씨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전국의 사진가들이 낙안읍성으로 수도 없이 몰려들었다. 때문에 그의 짚물공예 작품과 인물 임채지는 사진 속에 담겨 공모전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메뉴가 되기도 했다. 그는 낙안읍성을 대·내외적으로 각인시키는데 크게 공헌한 인물이며, 전통 속에 사람 있고 사람이 전통을 만들어간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준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2년여 전, 그는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낙안읍성을 떠나고 말았다. 여러 가지 개인 사정이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대우와 후계자' 문제 때문이었다. 그는 보다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되는 기능인을 넘어선 장인으로의 예우도 내심 원했고 맥을 이어나갈 후계자도 절실했지만 이 문제를 진지하게 돌아본 사람도, 정책도 없었다.
낙안읍성을 떠난 이후, 그는 타 시도에서 곧바로 후계자도 만났고 기능보유자로 인증도 받아 정부로부터 지원금도 받게 됐다. 하지만 지인을 통해 들어본 얘기는 그가 "향수병처럼 낙안읍성을 그리워하면서 지낸다"는 그리 밝지 않은 소식이었다.
이것은 낙안읍성은 그 어느 곳보다도 전통이 살아있고, 장인들이 능력발휘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좋은 환경과 잠재적 기반이 있는 곳으로써, 장인(기능인)들은 그 속에 살고 활동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어서 임채지씨의 사례는 무척 안타까운 일이었다.
장인(匠人) 예우 없이 장인정신 기대할 수 없어
낙안읍성은 기능인들에게 분명 더할나위없이 좋은 환경과 잠재적 기반이 있는 곳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미 낙안읍성을 떠난 최초의 기능인 임채지씨는 말 할 것도 없고 현재 남아있는 10여명의 기능인들도 자신의 거취에 관해 항상 고민하고 있다.
"일용직처럼 받는 시급, 한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얽매임, 시연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보이지 않는 차별 그리고 1년마다 재계약으로 언제 그만두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 등으로 불안하고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요즘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비정규직'이다.
관리하는 행정의 입장은 좀 다르다. 그들은 '낙안읍성에서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보조적 역할'임을 강조한다. 일면, 맞는 측면도 있지만 기능인 채용 16년이 지난 지금은 사정이 좀 달라, 가야금병창과 수문장 교대식 등의 굵직한 프로그램은 낙안읍성의 보조역할이 아닌 중심 역할로 변모했다.
몇몇 뜻있는 지역민들은 "그들이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을 수 있도록 읍성 내에서 자체적으로라도 장인 제도를 만들어 그들에게 장인 칭호를 주고 후계자도 적극 육성하는 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일관성 있고 투명성 있는 정책을 이끌어나갈 지역기구도 필요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사적지이면서 민속마을로 조성된 지 25년이 넘어가고 기능인(장인)을 채용하기 시작한 것도 16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낙안읍성이 '장인의 마을'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좋은 환경과 잠재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적극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낙안읍성 최초의 기능인 임채지씨의 사례나, 다년간의 노하우를 갖고 있는 한 프로그램 진행자를 '경제 논리'를 앞세워 교체해 장기적인 안목이 부족하고 계속성이 떨어진다는 질책을 받고 있는 최근의 사례는 '장인 예우 없이 장인정신을 기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일부 낙안읍성과는 맞지 않은 프로그램이 있다는 지적을 수용해 정비하고, 보조적인 기능인 역할에서 주된 장인의 역할로 그들을 변모시키고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민간기구의 자문을 받는다면 또 하나의 새로운 낙안읍성이 탄생할 것이다"는 주민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낙안군과 낙안군 폐군(廢郡) |
현재의 순천시 외서면을 비롯해 낙안면, 별량면 일부, 보성군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일부의 땅은 옛 낙안군이었다. 101년 전인 지난 1908년 10월 15일, 일제는 항일투쟁무력화, 동학혁명진원지 분산, 침략거점 도시화를 위해 낙안군 자체를 없애버리고 주민들을 인근 지역 세 곳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
덧붙이는 글 | 예고: [09-013] 이렇게 작은곳에서 전국 딸기묘 생산 1위?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2009.08.05 21:02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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