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의 개혁은 본질적으로 '신자유주의 개혁 노선'이라 할 수 있다. 기성 정치경제 체제에 대한 개혁의 성질을 일정하게 갖고는 있으나 그 방식이 자본시장을 경제운용의 중심축으로 놓는 신자유주의 방식을 추진한 것이다. 우정 체제 개편 과정에서 부상한 각종 인물들이 이런 방식을 지지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고이즈미 당시 총리가 우정민영화에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 정도로 강하게 집착한 이유도 바로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하는 데 있어 우정사업의 민영화가 대단히 중요했기 때문이다. 일본 가계의 금융자산은 예금성 자산에 밀집되어 있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대표국가인 미국 가계의 금융자산이 대부분 주식, 채권 등의 투자 자산에 몰려있던 것과 명백히 대비되는 점이다(표2 참조).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경제를 운용하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확장을 위해서는 가장 많은 예금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우정국을 민영화시켜 예금 자산을 주식과 채권 시장으로 돌려야 했던 것이다. 결국 일본의 우정사업 민영화는 겉으로 보기에는 우편사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목적을 둔 것으로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우편의 희생'을 통한 '신자유주의 금융화'에 있다고 하겠다.
일본 정부가 우정사업 민영화의 필요성으로 내세운 것은 '신자유주의 금융화'가 아니라 우정사업, 특히 우편 분야의 비효율성이었다. 직원 24만 명, 자산 360조 엔의 '공룡'이 비효율적인 경영으로 인해 적자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일본 우정사업이 계속된 적자를 보인 이유는 우편사업의 비효율성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의 재정 시스템 그 자체에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인 2007년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일본 정부 재정은 세입의 31%가 국채 발행에서 조달되고 총 세출의 25%가 국채상환에 사용되는 대단히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런 재정구조는 1990년대 중앙과 지방 정부가 도로, 교통 등에 대한 재정지출을 확대하면서 더욱 고착화되었는데, 여기에 소요되는 국채와 지방채의 가장 큰 구매자가 바로 일본 우정국이었던 것이다. 일본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정부 부채를 안고 있는데, 이런 구조적 문제를 우정사업이 보완해 주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05년 선거에서 고이즈미 칠드런으로 불리면서 당선된 83명의 초선 의원들 중에서 이번 선거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단 3명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이즈미의 우정민영화 노선이 완전히 파산했음을 상징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승리의 환호성이 잦아들기도 전인 9월 1일에 일본 민주당 등은 우정민영화 방안을 수정하는 법안을 제출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반대로 돌아선 우정민영화 여론
혹자는 우정민영화가 폐기되었다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할지 모른다. 무엇보다 이미 민영화의 중간 단계에까지 도달해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되돌리기에는 너무 많이 나아갔다. 집권 여당이 된 민주당이 제출하기로 한 법안도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일단 멈추고 좀 더 생각해 보자'는 식에 가깝다. 따라서 아직 '민영화 폐기'로 단정할 수는 없겠고 이미 민영화의 중간 단계에까지 도달해 있는 우정사업이 최종적으로는 어떤 모습으로 귀결될지는 유동적인 상태에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4년 전에는 우정민영화를 개혁 노선으로 보고 지지를 보냈던 일본 국민들이 이제는 우정민영화가 낳은 폐해를 절실히 느끼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일본 국민들이 우정민영화가 신자유주의 개혁 노선과 얼마나 본질적으로 가까이 있는지를 충분히 깨닫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고이즈미식 노선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본 국민들의 인식 전환이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된다면 더 이상의 민영화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우정사업 민영화가 본격 탄력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5년 관련 6개 법안이 통과된 이후이고, 거슬러 올라가 민영화의 시작은 우정국을 '공사'-정부기관을 완전 민영화하기 이전에 중간 단계로 흔히 쓰이는 방식이 공기업화하는 것이다(필자 주)-로 바꾼 2003년부터이다. 2003년 이후 6년여에 걸쳐 일본 국민들은 우정사업의 보편적 서비스 훼손과 직원들의 고용 불안을 목격해 오고 있다. 또한 일본 국민들은 우체국이 지역사회에서 수행해 왔던 사회안전망 역할이 축소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필자의 견해로는 지난 6월 일본 정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칸포(簡保, 간이보험) 숙박시설" 매각사건에서도 우정민영화의 폐해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드러난다고 보인다. 이 사건은 (공)기업화된 일본우정의 대표이사가 적자투성이의 숙박시설을 자산가격의 20분의 1에 매각하려 한 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무리한 자산매각이 있었음에도 오히려 인사권자인 총무상의 사표수리로 이어졌다. 국민들의 반대 여론은 높았으나, 개혁의 상징인 우정 민영화는 추진해야겠고 딜레마에 빠진 아소 다로 총리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2009년 현재 상황에서 진단해 본다면, 일본 경제의 회생을 위해 고이즈미와 자민당이 꺼내 놓은 신자유주의 개혁 노선이 이제는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의 우정민영화는 살아 있다
눈을 돌려 한국으로 돌아와 보면, 현 이명박 정부도 우정사업의 민영화에 강한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지난 해 1월 16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우정사업본부를 지식경제부로 이관한 다음 단계적으로 공사화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인수위의 발표는 정부조직개편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인수위가 일본의 우정민영화를 사례로 든 것으로 보아 우정사업 민영화를 신자유주의 개혁의 하나로 여기고 있음은 분명하다.
한국의 우정사업은 일본과는 달리 적자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체제 개편의 근거가 미약하다. 더구나 최소 2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민영화 체제전환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우정사업의 보편적 서비스를 훼손시켜야 하는 이유를 찾기도 힘들다. 현 정부도 우정사업 민영화의 근거로 이런 이유를 내놓고 있지는 않다. 당시 인수위가 강조한 것은 3만 명이 넘는 우정사업 공무원 수를 감축함으로써 '작은 정부'를 내세운 것 뿐이다.
이후 정부 내부에서는 계속해서 우정사업 민영화가 검토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으로 더 나아간 계획이 발표된 바는 없으나 정부는 단 한 번도 민영화를 중지한다는 명시적인 언급을 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27일 촛불시위가 '민영화 반대'를 높이 외치고 있을 때, 청와대에서는 주목할 만한 행사가 열렸다. 이명박 대통령이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게이오대 교수를 청와대로 초청해 대통령 국제 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다케나카 교수는 고이즈미 총리 시절 경제재정, 금융, 총무 장관 등의 요직을 맡아 우정민영화 등 공공부문의 신자유주의화를 진두지휘했던 인물이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선진화'로 이름 바꾼 민영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자신의 개혁 의지가 전혀 퇴색하지 않았음을 천명한 바 있다.
이 자리는 한 마디로 말해서 다케나카라는 상징을 내세워 고이즈미 전 총리의 노선을 따라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미진한(?) 신자유주의화를 더욱 강력하게 밀고 나가려고 했던 것을 '개혁'이라고 본 것이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오늘 일본 자민당의 쇠퇴와 중의원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은 고이즈미 '개혁'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하토야마 민주당 대표의 기고글(새사연 <헤럴드 트리뷴> 글 번역, '일본이 나아갈 새로운 길' 2009.8.27)은 첫 머리에서 미국 주도의 시장근본주의, 신자유주의 비판으로 시작된다. 이는 새로운 일본 정부가 고이즈미 개혁과는 다른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음이다. 이명박 정부는 누구의 전철을 따를 것인가? 우정민영화 방침을 이제라도 분명히 폐기하고 새로운 흐름에 대해 깊이 고민함이 옳지 않겠는가?
*새사연 <헤럴드 트리뷴> 글 번역, '일본이 나아갈 새로운 길' 2009.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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