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텃밭과 아파트숲 사이

[인천 골목길마실 62] 도시를 아름답게 하는 힘은?

등록 2009.09.14 11:45수정 2009.09.14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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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 낮이었습니다. 우리 도서관 아래층은 비어 있는데, 건물임자가 아래층 공사를 한다면서 아주 시끄럽게 굽니다. 노래를 크게 틀어 놓아도 시끄럽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공사가 조용해졌다 싶어 고개를 빼꼼 내밀어 아래층을 내려다보니, 도서관으로 올라오는 쇠문(셔터문)을 내려놓고 있습니다. 이런! 뭐 이런 놈들이 다 있지? 버젓이 3층에 사람이 있는데 쇠문을 내려놓으면 어떡하라고?

 

 도서관에 왜 사람들이 안 들어오나 했더니, 건물임자가 아래층 공사를 시끄럽게 해대고 이제 그만 하고 쉰다며 나가는 길에 쇠문을 내려놓았으니 '도서관 문이 닫혔구나' 생각하며 안 들어올밖에 없습니다. 에휴, 저런 불쌍한 마음씀을 어찌하나.

 

 화딱지가 치밀지만 꾹 눌러 참습니다. 책 갈무리를 하다가 벌떡 일어나 가방을 챙기고 밖으로 나옵니다. 오늘은 그만 도서관 문을 닫고, 골목마실을 하면서 마음에 앙금이 쌓이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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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들이 고추를 밟고 다니니, 꽃그릇 하나 고추판 옆에 살며시 놓았습니다. ⓒ 최종규

자동차들이 고추를 밟고 다니니, 꽃그릇 하나 고추판 옆에 살며시 놓았습니다. ⓒ 최종규

 

 자전거를 달리며 생각합니다. 우리 도서관 건물임자는 쉰 해를 묵은 오래된 이 건물이 낡든 비가 새든 수도가 새서 물값이 (물을 잠가 놓고 안 써도) 4만 원이 나오든 기찻길 옆이라 기차소리 때문에 시끄럽든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엊그제 비가 왔을 때에도 또 비가 새서 하마터면 애먼 책이 젖을 뻔했습니다. 그러나 책꽂이는 젖어서 곰팡이가 핍니다. 도무지 돈 들어가는 데에는 돈을 한푼 안 쓰려 하는데 꽤 돈이 많은 부자인 건물임자입니다.

 

이번에 아래층에 삯을 놓으려고 공사를 하는 듯하지만, 이 동네에 따로 삯을 내며 들어오는 가게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난달 8월 24일에 인천시에서 '동인천역 주변 재개발 방침'을 내놓기도 했지만, 인천시장은 그예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를 전면철거하고 이 자리에 '헌책방을 추억하는 상징물'을 새로 짓겠다고 했거든요. 언제 들이닥쳐 헐지 모르는 판에 누가 들어오겠습니까. 아래층 공사는 '전면철거를 앞두고 건물임자 보상을 해 주려는 지장물 조사'를 하기 앞서 '지장물이 많이 있게 보이려고 하는' 공사로 보입니다.

 

 돈으로 살아가기에 돈밖에 못 보는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무리 돈이 좋다 한들, 사람 있고 돈이 있지 돈 있고 사람 있느냐 하고 생각합니다. 돈이 있는 분들은 왜 이렇게 더 돈바라기 삶으로 치달을까요. 안쓰럽고 딱합니다.

 

 자전거는 금곡동을 지나 송림3동을 거쳐 송림4동으로 접어듭니다. 금곡동에서는 골목 한복판에 꽃그릇을 둔 할머니 손길을 느낍니다. 고추를 말리려고 펼쳐 놓은 장판을 누군가 자동차로 밀고 지나간 듯합니다. 제발 고추를 밟지 말라는 말없는 몸부림이요, 사랑스러운 손놀림이구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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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삶터를 들여다보는 일이란, 동네이웃으로서는 마실이요 먼 곳 사람한테는 고마운 사랑나눔입니다. 자전거를 끌고 이고 하면서 산비탈 달동네 이웃마을 마실을 했습니다. ⓒ 최종규

골목 삶터를 들여다보는 일이란, 동네이웃으로서는 마실이요 먼 곳 사람한테는 고마운 사랑나눔입니다. 자전거를 끌고 이고 하면서 산비탈 달동네 이웃마을 마실을 했습니다. ⓒ 최종규

 

 재능대학교 건물을 따라 이어진 골목동네를 빙 돌다가 송림4동성당 앞 언덕받이에서 멈춥니다. 아파트를 짓느니 무엇을 짓느니 하면서, 재능대학교 뒤쪽 '도화3동'은 거의 자취를 남기지 않고 사라졌습니다. 지도책에는 동과 번지수가 남아 있지만, 코앞에 마주하는 도화3동은 나무전봇대 하나와 나무문패 달린 골목집 하나를 빼고 송두리째 사라졌습니다. 도화3동과 맞닿은 송림4동은 아슬아슬 삽날에서 벗어났지만, 어느 때 갑작스레 용역이 들어와 때려부술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쇠울타리 하나 높게 세우고 시끄럽게 중장비 움직이면서 '시끄럽고 살기 나쁘면 얼른 떠나시든지?' 하라는 투입니다. 우리 세상 힘이 있는 이들 또한 언제부터인가 이 힘을 사랑을 나누려는 데에는 못 쓰고 더 큰 힘을 얻고 돈을 누리는 데에만 듬뿍듬뿍 바치고 있습니다.

 

 헐리고 없어진 빈 집터 둘레에서 '끝까지 살아가는' 골목동네 이웃이 일군 텃밭이 제법 널따랗습니다. 구불구불 살짝 가파르기까지 한 골목길을 자전거를 어깨에 짊어지고 오르면서 텃밭과 아파트숲을 번갈아 바라봅니다. 이렇게 손수 일구어 가꾸는 텃밭하고, 저 무리지은 아파트숲하고 어느 쪽이 더 싱그럽고 '자연을 사랑하는' 길이라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 더 살기 좋거나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골목동네에서 살던 제 오래된 벗들은 하나같이 새로 지은 아파트로 옮겨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골목동네에 남아서 살아가는 벗들이 있으나, "너라면 이런 동네에 삼십 년 넘게 살았는데, 더 살고 싶겠냐?" 하면서 떠납니다. 이렇게 읊는 동무들 말마디에 대꾸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래도 저는 뒷간 딸린 집에서 살았으니까요. 공동뒷간이 있는 동네에서는 살지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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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동네 사람들 너른 텃밭하고 공무원과 개발업자가 일구어 낸 아파트숲하고 어느 쪽이 더 아름답거나 더 보기 나쁜지는 함부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 느낄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 최종규

골목동네 사람들 너른 텃밭하고 공무원과 개발업자가 일구어 낸 아파트숲하고 어느 쪽이 더 아름답거나 더 보기 나쁜지는 함부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 느낄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 최종규

 

 하루하루 벌판으로 바뀌는 달동네 언덕마루에 자전거를 세워 놓고 인천시내를 두루 둘러봅니다. 이곳에서는 300도를 돌면서 인천시내를 둘러볼 수 있습니다. 하늘끝으로는 인천 앞바다가 아닌 숱한 중화학 공단하고 아파트가 가득합니다. 바다를 볼 수 없도록 공장과 아파트가 가로막습니다. 그러나, 송림4동과 도화3동이 이루어 낸 가난한 사람들 낮은자리 살림집은, 나무전봇대에 전깃줄을 기대고 빈 집터를 텃밭으로 바꾸어 내면서 오늘 하루도 다부지고 싱그럽게 가꾸고 있습니다.

 

 빈 빨랫줄에 앉아서 날개쉼을 하는 잠자리를 슬그머니 바라보며 몇 분을 서 있다가 퍼뜩 꿈에서 깹니다. 우리 집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애 엄마와 아기가 둘이서만 고단하겠구나. 얼른 집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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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골목마실에서는 여덟째 나무전봇대와 아홉째 나무전봇대를 보았습니다. 예전에도 지나다녔으나 보지 못했는데, 다닐 때마다 새삼스럽게 고개를 내밀어 줍니다. ⓒ 최종규

이번 골목마실에서는 여덟째 나무전봇대와 아홉째 나무전봇대를 보았습니다. 예전에도 지나다녔으나 보지 못했는데, 다닐 때마다 새삼스럽게 고개를 내밀어 줍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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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동네에는 '개발 삽날'이 아닌 '따순 손길'을 건내 주소서. ⓒ 최종규

골목동네에는 '개발 삽날'이 아닌 '따순 손길'을 건내 주소서.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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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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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와 나무전봇대와 골목집과 문패와. 이 모두는 아름다이 어우러져 있다고, 제 눈은 바라보고 제 가슴은 느낍니다. ⓒ 최종규

잠자리와 나무전봇대와 골목집과 문패와. 이 모두는 아름다이 어우러져 있다고, 제 눈은 바라보고 제 가슴은 느낍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09.14 11:45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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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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