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쓴 겹말 손질 (75) 숲과 삼림

[우리 말에 마음쓰기 761] '우거진 숲'과 '무성한 삼림' 사이에서

등록 2009.09.25 11:10수정 2009.09.2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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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과 삼림

 

.. 일본의 식민지 통치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그렇게 소중하게 보호해 온 삼림을 억울하게도 90% 이상 빼앗기거나 파괴당해 버렸지만 … 그 와중에 간신히 살려 놓았던 숲이 무참히 사라져 가고 있다 ..  《이진아-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책장,2008) 217쪽

 

 "일본의 식민지 통치(統治)와"는 "일본이 식민지로 다스리고"로 다듬고, '소중(所重)하게'는 '알뜰히'나 '고이'로 다듬으며, '억울(抑鬱)하게도'는 '안타깝게도'나 '슬프게도'로 다듬습니다. '파괴당(破壞當)해'는 '무너져'나 '망가져'로 손보며, "그 와중(渦中)에"는 "그러는 동안"이나 "그러는 가운데"로 손봅니다. '무참(無慘)히'는 '끔찍하게'나 '남김없이'나 '송두리째'로 손질해 줍니다.

 

 ┌ 삼림(森林) : 나무가 많이 우거진 숲

 │   - 삼림 자원 / 삼림 보호 / 정부에서는 삼림의 벌목을 금지하고 있다

 │

 ├ 소중하게 보호해 온 삼림 (x)

 └ 간신히 살려 놓았던 숲 (o)

 

 나무가 많이 우거진 숲을 가리키는 '삼림'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숲'이란 어떤 곳일까요. 국어사전에서 '숲'을 찾아보면 '수풀'을 줄인 낱말이라 나오고, '수풀'이란 "나무들이 무성하게 우거지거나 꽉 들어찬 것"을 가리킨다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삼림 = 숲'이요, '삼림 = 수풀'인 셈입니다. 아니, '삼림'이라는 한자말을 풀이하면서 "나무가 많이 우거진 숲"이라고 적으면 낱말풀이부터 겹치기가 되고 맙니다.

 

 그런데 '무성(茂盛)'이란 무엇일까요. 토박이말 '수풀'을 풀이하면서 "나무들이 무성하게 우거지거나"라 적고 있거든요. 이 낱말도 국어사전에서 찾아봅니다. 한자말 '무성'은 "풀이나 나무 따위가 자라서 우거져 있다"를 뜻한다고 나옵니다. '우거지는' 일이 '무성'이라는 소리인데, 이렇게 되면 '수풀'을 풀이하는 말도 겹치기인 셈입니다.

 

 ┌ 삼림 자원 → 숲 자원

 ├ 삼림 보호 → 숲 지키기

 ├ 삼림의 벌목을 금지하고

 │→ 숲에서 나무베기를 막고

 │→ 숲에서 나무를 못 베게 하고

 └ …

 

 말뜻은 이렇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말뜻을 제대로 가누거나 살피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숲을 숲대로 볼 줄 아는 눈이 드물고, 말을 말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머리가 드뭅니다. 그러하니, '숲'과 '삼림'을 버젓이 겹치기로 쓸 뿐 아니라, '무성하다'와 '우거지다'가 다른 낱말인 줄 알기까지 합니다.

 

 우리 말로는 '숲'이요 '우거지다'이며, 한자말로는 '삼림'이요 '무성하다'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가 쓸 말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엉망으로 내팽개치고 말며, 우리가 알뜰살뜰 가꿀 말이란 어디에 있는지 잊고 맙니다.

 

 ┌ 소중하게 보호해 온 삼림

 │

 │→ 알뜰히 지켜 온 숲

 │→ 고이 간직해 온 숲

 │→ 아름다이 돌봐 온 숲

 │→ 사랑스레 가꿔 온 숲

 └ …

 

 우리는 우리 숲을 알뜰히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숲을 고이 간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숲을 아름다이 돌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숲을 사랑스레 가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 맞물려, 나라밖 숲 또한 알뜰히 지킬 마음이 없습니다. 나라안 숲뿐 아니라, 나무로 만들거나 나무로 이루어진 물건을 함부로 쓰면서 나라 안팎 숲이 무너지는 데에 큰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나라안 숲은 나라안 숲대로 고이 간직하면서, 이웃나라에서도 제 숲을 고이 간직할 수 있게끔 물질만능 소비주의를 줄이거나 멀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만, 우리 살림살이는 벼랑으로 치닫기만 합니다.

 

 벼랑으로 치닫기만 하는 살림살이인 터라, 우리 매무새는 겉치레와 겉발림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겉치레와 겉발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매무새로는 생각도 넋도 얼도 겉치레와 겉발림에서 맴돌 뿐입니다. 생각을 나타내고 넋을 펼치고 얼을 나누는 자리에서도 얄궂은 말과 글만 떠돌 뿐입니다.

 

 숲을 지키는 마음은 우리 살림을 지키는 마음과 잇닿습니다. 우리 살림을 지키는 마음은 우리 마음밭을 지키는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우리 마음밭을 지키는 마음은 우리 말을 지키는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우리 말 하나만 지킬 수 없는 노릇이고, 우리 말 하나를 지키자면 우리 둘레 뭇 살림살이와 터전을 함께 지키는 매무새여야 합니다. 말을 말다이 느끼는 가슴이 될 수 있도록, 아니 말을 말다이 느끼는 가슴으로 즐거이 살아가는 우리가 되도록, 숲을 느끼고 숲을 사랑하고 숲을 어루만질 수 있는 참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꿈을 꿉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09.25 11:10ⓒ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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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중복표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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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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