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49)

― '소수의 깨어 있는 분들', '소수의 의지' 다듬기

등록 2009.09.29 10:10수정 2009.09.2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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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소수의 깨어 있는 분들

 

.. 물론 소수의 깨어 있는 분들이 있어 아이들의 세계를 정직하고 진지한 자세로 탐구하고 있기는 하지만 ..  《이오덕-삶ㆍ문학ㆍ교육》(종로서적,1987) 125쪽

 

 '물론(勿論)'은 '가만히 살펴보면'이나 '찬찬히 찾아보면'이나 '그러나'나 '그렇지만'으로 다듬어 봅니다. "아이들의 세계를"은 "아이들 세계를"이나 "아이들 나라를"이나 "아이들 마음밭을"로 손질해 줍니다. "정직(正直)하고 진지(眞摯)하게"는 "올바르고 참되게"나 "바르고 알뜰히"로 손보고, '탐구(探求)하고'는 '찾고'나 '살피고'로 손봅니다.

 

 ┌ 소수의 깨어 있는 분들이

 │

 │(1)→ 몇몇 깨어 있는 분들이

 │(1)→ 많지는 않아도 깨어 있는 분들이

 │(2)→ 깨어 있는 분들이 적지만

 │(2)→ 깨어 있는 분들이 얼마쯤

 │(2)→ 깨어 있는 분들 몇몇이

 │(2)→ 깨어 있는 분들이 그럭저럭

 └ …

 

 '소수-의'만 다듬어 (1)처럼 적어도 됩니다. 글차례를 살짝 바꾸어 (2)처럼 적어도 됩니다. "적은 숫자"를 가리키는 '소수(少數)'이니, 말 그대로 "깨어 있는 분들이 적지만"이나 "많지 않아도 깨어 있는 분들이"처럼 적으면 넉넉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분들에 따라 다른 낱말을 넣어 볼 수 있겠지요.

 

 ┌ 몇몇 깨어 있는 분들께서 아이들 마음밭을 올바르고 차분히 살펴보고

 ├ 퍽 드물지만 깨어 있는 분들이 있어 아이들 삶터를 바르고 알뜰히 헤아리고

 └ …

 

 어영부영 넣는 낱말이 아니라, 곰곰이 헤아리며 넣는 낱말입니다. 이래도 되고 저래도 좋은 낱말이 아니라, 이렇게도 살피고 저렇게도 돌아보며 알뜰살뜰 넣는 낱말입니다.

 

 밥 한 술을 뜨면서 오래도록 씹어서 내 배속에 고맙게 넣듯, 글 한 줄을 쓰면서 오래도록 갈무리하고 가다듬으면서 내 마음밭에 반갑게 아로새깁니다. 한 마디 한 마디에 사랑을 담습니다. 한 줄 두 줄에 믿음을 싣습니다.

 

 

ㄴ. 소수의 의지

 

.. 여섯째, 자유가 없다. 소수의 의지가 존중되는 일은 없다 ..  《가가와 도요히코/홍순명 옮김-우애의 경제학》(그물코,2009) 73쪽

 

 '의지(意志)'는 '뜻'으로 다듬고, '존중(尊重)되는'은 '높이 섬기는'이나 '고이 여기는'이나 '알뜰히 여기는'이나 '널리 받아들이는'으로 다듬어 봅니다.

 

 ┌ 소수의 의지가

 │

 │→ 작은 뜻이

 │→ 작은 생각이

 │→ 작은 이야기가

 └ …

 

 우리 삶터는 작은 뜻을 널리 아끼고 사랑한다고 느끼기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 말을 하기 앞서 나 스스로 돌아볼 때에, 우리 삶터는 큰 뜻에 너무 짓눌려 작은 뜻을 업신여기고 있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힘으로 누르고 이름으로 누르고 돈으로 누르는 우리 삶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삶터는 작은 생각을 두루 보듬고 즐긴다고 보기 힘듭니다. 다른 어느 곳보다 우리 스스로 살아가는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살피면, 조촐하게 가꾸거나 꾸리는 문화나 삶이 아니라, 자꾸자꾸 크게 키우려고만 하는 문화나 삶입니다. 스스로 즐기는 문화와 삶이 아닌, 바깥 누군가한테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하는 문화와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삶터는 작은 이야기를 고이 반기고 어우른다고 여길 수 있을까요. 작은 사람을 보고, 작은 동네를 보며, 작은 자전거를 보는 가운데, 작은 집을 본다고 여길 수 있을까요.

 

 작은 돈 한 푼을 고맙게 여기며, 작은 땀방울 하나를 알뜰히 섬기고, 작은 몸짓 하나를 애틋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우리 삶터라고 여길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작은 뜻을 섬기는 일은 없다

 ├ 작은 마음을 아끼는 일은 없다

 ├ 작은 생각을 기쁘게 여기는 일은 없다

 ├ 작은 이야기를 높이 사는 일은 없다

 └ …

 

 작은 돈을 아낀다고 좁쌀뱅이가 아닙니다. 작은 돈을 아끼지 못하기에 좁쌀뱅이입니다. 작은 땀방울을 섬긴다고 어리보기가 아닙니다. 작은 땀방울을 섬기지 못하기에 어리보기입니다. 작은 몸짓을 애틋이 받아들인다고 쥐대기가 아닙니다. 작은 몸짓을 애틋이 받아들일 줄 모르니 쥐대기입니다.

 

 하찮아 보인다는 말 한 마디라고 여기지 않기에 훌륭한 사람입니다. 보잘것없어 보인다는 글 한 줄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거룩한 사람입니다. 더 낮은 자리에 기꺼이 설 줄 알기에 사랑스러운 사람입니다. 더 가난한 자리에서도 웃음과 눈물을 듬뿍 나눌 수 있기에 믿음직한 사람입니다.

 

 작은 말을 보며 작은 생각을 봅니다. 작은 동네를 온몸으로 느끼며 나 스스로 얼마나 작고, 이렇게 작으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깨닫습니다. 작은 글을 알아채며 작은 삶을 알아챕니다. 작은 이웃을 온마음으로 어깨동무하며 나 스스로 얼마나 작고, 이렇게 작으니 얼마나 고운가 하고 깨우칩니다.

 

 스스로 작아지려 하고 낮아지려 하고 가난해지려 하는 데에, 참된 말과 생각과 삶이 우뚝 서는 지름길이 있다고 하루하루 새삼 배웁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09.29 10:10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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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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