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55) 완화

[우리 말에 마음쓰기 767] '완화시키다'와 '누그러뜨리다-잠재우다-다독이다'

등록 2009.10.06 09:56수정 2009.10.0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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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화시키다

 

.. 따라서 극소수라도 휴가 제도를 도입하여 불만을 완화시키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  《요시미 요시아키/이규태 옮김-일본군 군대위안부》(소화,1998) 83쪽

 

 '극소수(極少數)라도'는 '몇몇이라도'나 '한둘이라도'나 '드물게라도'나 '아주 조금이라도'로 다듬어 봅니다. '도입(導入)하여'는 '받아들여'나 '펼쳐서'나 '써서'로 손보고, "있었던 것이다"는 "있었다"나 "있었던 셈이다"로 손봅니다. '불만(不滿)'은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으나, '못마땅함'이나 '투덜거림'이나 '짜증'이나 '볼 부은 소리'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 완화(緩和) : 긴장된 상태나 급박한 것을 느슨하게 함

 │   - 긴장 완화 / 출국 제한 완화 / 긴장 상태가 완화되다 /

 │     환자의 증세가 완화되다 / 규제를 완화하다 / 남북 간의 긴장을 완화하다

 │

 ├ 불만을 완화시키려 하고

 │→ 불만을 누그러뜨리려고

 │→ 불만을 풀어 주려고

 │→ 불만을 다독이려고

 │→ 불만을 잠재우려고

 └ …

 

 제법 널리 쓰는 한자말 '완화'도 '-화'붙이 낱말이 아닌가 하고 국어사전을 뒤적여 보는데, '緩化'가 아닌 '緩和'라고 나옵니다. 뜻밖이라고 생각하면서, 어쩌면 퍽 많은 이들은 '완화'를 '-化'붙이 낱말로 여길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저부터 그렇습니다.

 

 '-化'를 말끝에 붙이는 일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 말투가 아니라고들 이야기합니다. 더욱이, '-化'를 붙이는 말투가 일제강점기 뒤부터 일본말과 일본책과 일본 문화와 함께 들어오며 널리 쓰이게 된 오늘날, 이 말투를 우리 말투로 녹여낸다고 할지라도, 이 낱말 뒤에 '-되다'나 '-시키다'를 붙이는 일은 알맞지 않다고들 덧붙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말투를 털어내거나 씻어내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입으로는 "이런 말투를 쓰면 안 되는데, 저도 이런 말투가 자꾸 튀어나와요. 안 쓰기가 어려워요." 하고 말하기 일쑤입니다. 국어학자라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국문학과 교수라 해서 남다르지 않습니다. 지식인이나 지성인이라는 분들이라고 벗어나지 않습니다. 한국땅에서 한국사람한테 한국삶을 이야기하면서 옳고 바른 한국말을 다스리는 사람이 몹시 드뭅니다.

 

 ┌ 아주 조금이나마 쉬도록 해 주며 성난 목소리를 잠재우려고 했다

 ├ 드물게나마 말미를 주어 시끄러운 소리를 막으려고 했던 셈이다

 ├ 아주 잠깐이라도 쉴 틈을 마련해 들끓는 짜증을 삭여 낸다고 했다

 └ …

 

 배웠다는 사람들이 엉망진창이니 안 배웠다는 사람들은 보나 마나로 여겨야 할까 궁금합니다. 잘났다는 사람들이 엉터리로 쓰고 있으니, 못났다는 사람이나 안 잘난 사람들은 이래저래 뒤죽박죽으로 써도 괜찮다고 보아야 할까 모르겠습니다.

 

 '-化'붙이 말투라서 털고 '-的'붙이 말씨라서 떼며 '-의'붙이 말결이라 씻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생각을 싱그럽게 가다듬는 일을 가로막는 가운데, 우리 손으로 우리 삶을 알차게 일구는 흐름을 거스르기 때문에 이 같은 말투와 말씨와 말결을 걸러내고자 합니다. 우리 넋을 아름답지 못한 쪽으로 자꾸 홀리고 있으며, 우리 얼을 거룩하지 못한 곳으로 그예 잡아끌고 있기에 말삶과 글삶을 좀더 다부지게 붙잡자고 합니다.

 

 ┌ 긴장 완화 → 긴장 풀기 / 조여진 마음 풀기

 ├ 출국 제한 완화 → 출국 제한 풀림

 └ 환자의 증세가 완화되다 → 환자 몸이 나아지다 / 아픈 곳이 누그러지다

 

  팽팽하게 당겨 있던 무엇을 느슨하게 해 준다는 자리에 쓰는 한자말 '완화'입니다. 그러나 느슨하게 해 줄 때에는 말 그대로 '느슨하게 한다'고 하면 넉넉합니다. 자리에 따라서는 '누그러뜨리다'를 넣을 수 있고, '풀어 주다'라든지 '다독이다'라든지 '잠재우다'라든지 '줄이다'를 넣을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달라, 누군가는 '왜 한자말 완화를 쓰지 말라고 하느냐?'고 따질 수 있습니다. 이런 토박이말이 있고 저런 토박이말을 예부터 썼다 할지라도 눈길 한 번 두지 않고 '난 완화라는 말만 쓸래' 하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요. 쓰고 싶으면 써야겠지요. 한 번 쓰고 버리는 나무젓가락도 쓰고 싶으면 써야겠지요. 짜장면을 먹을 때에는 나무젓가락을 톡 하고 끊어서 먹고 나무젓가락은 빈 접시에 쑤셔박고 버려야 제맛이라고 하는 분들은 이렇게 살아야 할 테지요.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 짜장면을 나무젓가락을 끊어서 썼을까요? 예전에도 나무젓가락을 한 번만 쓰고 버렸을까요? 다 쓴 나무젓가락도 깨끗이 씻고 말려서 다시 쓰거나 다른 자리에서 쓰거나 '나무젓가락 만들기 놀이'를 하거나 새총을 만들거나 하지 않았을까요.

 

 자가용을 타고 싶다면 자가용을 탈 노릇이지만, 자가용을 타는 만큼 석유를 더 많이 써야 하며 훨씬 많은 자원을 써야 할 뿐더러 우리 삶터 공기와 물은 나날이 더 나빠집니다. 이를 아울러 생각하는 가운데 자가용을 몰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엉터리 말을 쓴다고 할 때에도 이 엉터리 말 때문에 둘레 사람들이나 아이들한테 나쁘게 스며들거나 파고들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 규제를 완화하다 → 규제를 풀다 / 규제를 느슨하게 하다

 └ 남북 간의 긴장을 완화하다 → 남북 사이에 팽팽함을 누그러뜨리다

 

 팽팽함을 풀고 우리 삶을 좀더 살며시 들여다보고 따숩게 껴안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남북 사이에 팽팽함이 아닌 따스함이 감돌 수 있도록 하는 마음으로, 그러니까 "남북이 서로 따숩게 손을 잡았다"나 "남북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기로 했다"와 같이 흐를 수 있도록, 우리 말과 글을 함께 나누는 나와 네가 따숩게 손을 잡고 즐거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곱고 싱그럽고 맑은 말마디와 글줄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말 한 마디에 사랑을 담고 글 한 줄에 웃음을 담을 수 있는 우리들로 거듭난다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10.06 09:56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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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외마디 한자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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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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