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당신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면?

[아는 만큼 보이는 법 30] 법전에도 없는 초상권, 법원이 인정하는 근거

등록 2009.11.03 08:57수정 2009.11.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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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혼자서 혹은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거리를 걷고 있는데 누군가 카메라를 들이댄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당장 쫓아가서 카메라를 치우라고 따질 것이다.

그뿐인가. 상대방 카메라에 저장된 사진들을 일일이 확인한 후 당신과 관련된 사진을 삭제하게끔 할 것이다. 그러면서 한마디 쏘아붙인다.

"초상권 침해라고요!"

법을 잘 모르는 사람도 초상권이라는 말은 쉽게 사용한다. 하지만 법전 어디에도 초상권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는 초상권이 정당한 권리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감추고 싶은 노점상의 과거를 사진으로 공개하다니

[사례1] 노상인(가명)씨는 2006년 복원공사를 마친 청계천을 구경 왔다가 깜짝 놀랄 만한 일을 경험했다.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 기념으로 과거의 청계천 풍경을 담은 사진전을 열고 있었는데 그 사진 중에 자신의 얼굴이 담겨있었던 것이다. 노씨는 청계천이 복구되기 전 노점상으로 일해왔는데 그때의 경험은 숨기고 싶은 비밀이었다. 그런데 '청계천 노점상인'이라는 제목을 단 사진을 통해 노점을 펼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으니 노씨의 기분이 어떠했을까.

노씨는 초상권 침해행위라고 반발하며 서울시를 상대로 2007년 소송을 냈다. 서울시는 "노씨에게 모멸감을 줄 의도로 사진을 게시한 것이 아닌데다 사진전시회가 상업성이 없었으므로 초상권 침해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노씨의 허락 없이 공공장소에 이씨가 촬영된 작품을 전시한 것은 초상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라고 판단했다. 또한 "사진 전시장소가 관광명소가 된 곳이며, 사진이 보기에 따라서는 노씨의 사회적 평판을 저하시킬 수 있는 부정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며 노씨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시는 판결에 따라 노씨에게 손해배상을 해주어야 했다.     

'소송의 진실발견 VS 초상권' 소송의 결과는

그렇다면 초상권은 도대체 무엇이고 어디서 나온 권리일까. 조금 길지만 나환자(가명)씨가 보험회사와 벌인 소송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그중 2차 소송을 눈여겨보자.

[사례 2] 나환자(가명)씨는 주말에 오랜만에 가족들과 동해안 나들이를 떠났다. 그는 승용차에 가족들을 태우고 영동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나씨는 옆차선에 있던 승용차가 갑자기 앞으로 끼어드는 바람에 급정거를 했다. 이때 뒤따르던 트럭이 그만 나씨 가족이 타고 있던 차를 들이받고 말았다. 이 사고로 나씨와 아내는 요추부(허리뻐)와 경추부(목뼈)에 부상을 입었다.

트럭이 가입해있던 보험회사는 나씨 가족이 가벼운 상처를 입었을 뿐이라며 소액의 합의금을 주는 선으로 사건을 종결지으려 했다. 하지만 나씨 가족은 보험회사와 합의하는 대신, 후유장해가 인정된다는 병원의 진단서를 제시하며 1차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종합병원에 신체감정을 의뢰하였고, 그 결과 역시 나씨 부부의 후유장해와 노동능력 상실이 예상된다는 감정이 나왔다. 1차 소송은 나씨에게 유리하게 끝이 났다. 보험회사는 나씨 등이 가짜 환자 행세를 한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보험회사 쪽은 나씨 부부가 멀쩡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소송 중에 '뒷조사'를 했던 것이다.

보험회사는 직원을 시켜 나씨를 따라다니며 몰래 사진을 촬영하게 했다. 보험회사 직원은 무려 8일 동안 나씨가 출퇴근하거나 외출하는 장면, 자동차에 타고 있는 장면을 찍었다. 또한 나씨의 아내가 승용차로 아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는 장면과 허리와 목을 움직이는 장면 등을 카메라에 담았다.

보험회사는 이 사진을 법원에 증거로 제시하면서 법원의 신체감정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나씨는 자신을 미행한 보험회사가 초상권을 침해했다며 또다시 위자료 소송(2차 소송)을 제기했다.   

초상권 = 얼굴 촬영・이용 거절권 +초상 이용권

2차 소송에서 법원은 초상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사람은 누구나 얼굴 기타 사회통념상 특정인임을 식별할 수 있는 신체적 특징에 관하여 함부로 촬영 또는 그림 묘사되거나 공표되지 아니하며 영리적으로 이용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러한 초상권은 어디서 오는 권리일까.

법원은 헌법 10조("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와 헌법 17조(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서 그 근거를 찾았다. 이것을 인격권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법률전문가들도 인격권 안에 초상권이 포함된다고 보고 있다.

또 다른 판례들을 통해 법원은 초상권의 내용에는 △함부로 얼굴을 촬영당하지 않을 권리(촬영거절권) △촬영된 초상사진의 이용을 거절할 권리(이용거절권) △초상의 이용에 대한 재산적 권리(재산권)가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초상권은 인격권뿐 아니라 재산권의 성격도 띤다는 말이다.

법원 "헌법 안에 초상권 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보험회사가 8일 동안이나 나씨 가족을 미행ㆍ감시한 행위는 초상권과 사생활의 비밀ㆍ자유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물론 보험회사는 공개된 장소에서 증거수집을 하였으며 소송에서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사생활 침해는 허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소송에서 '진실발견 이익'과 '초상권ㆍ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충돌할 때는 어느 것이 중대한지를 따져보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즉 보험회사가 달성하려는 이익의 중대성, 필요성, 긴급성 등과 나씨가 보호하려는 이익의 중대성과 피해 정도를 비교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은 보험회사의 이익이 피해자들의 초상권과 사생활을 침해하면서까지 사진을 촬영할만큼 긴급하거나 중대하지는 않다고 보고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고객이나 소송 상대방의 뒷조사를 일삼던 보험회사의 잘못된 관행에 경종을 울린 판결이었다.

하지만 초상권은 무제한적으로 인정되는 권리는 아니다. 정치인이나 유명인 등의 사생활은 공적인 관심사가 되어 국민의 알권리와 충돌한다.

따라서 공적 인물은 일반인보다 초상권이 제한되는 경향이 있다. 침해를 통해 얻어지는 이익이 침해로 인해 훼손되는 이익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판단된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 그렇지만 공적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아주 은밀한 사생활까지 공개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사진 찍을 때 조심해야 할 2가지

남의 사진 찍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조심해야 할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성폭력 특별법(카메라등 이용촬영)이다. 여성의 다리나 은밀한(?) 신체를 몰래 찍다가는 경찰서에 갈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초상권이다. 일단 인물 사진 찍기 전엔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설사 몰래 사진 찍기에 성공했더라도 나중에 인터넷이나 사진, 책 등에 사진을 실었다가 초상권 침해로 손해배상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권리 있다"
퍼블리시티권과 초상권, 저작권
다음 사례에서 A 회사는 고운녀씨의 어떤 권리를 침해했을까.

유명 여배우 고운녀(가명)씨는 A 건설회사와 아파트 광고 전속 모델 계약을 맺었다. 고씨는 1년간 TVㆍ신문 광고를 포함하여 각종 홍보물과 홈페이지 등에 A 사의 모델로 활동했다. 그런데 A사는 계약기간이 지났는데도 홈페이지와 분양사이트 등에 여전히 고씨의 사진을 올려놓고 있었다.

답은 퍼블리시티권(Right of Publicity)이다. 퍼블리시티권이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성명, 초상이나 기타의 동일성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통제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를 말한다.

법원은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퍼블리시티권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보였는데 최근에는 이러한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2006년 12월 서울동부지법은 퍼블리시티권에 대해 △법에 명문의 규정은 없으나 대부분의 국가가 인정하고 있는 점 △ 이런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민법상의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점 △사회가 발달함에 따라 권리 보호 필요성이 증대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독립된 권리로 인정했다. 퍼블리시티권은 유명인 뿐 아니라 일반인도 성명, 사진, 초상, 기타 개인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경우 널리 인정될 수 있다.

퍼블리시티권은 초상권과 유사한 성격을 띤다. 퍼블리시티권의 대상이 초상일 경우 재산권으로서의 초상권과 겹친다. 하지만 퍼블리시티권이 재산권임에 반해 초상권은 인격권과 재산권의 2가지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초상권이 더 넓은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퍼블리시티권은 언제까지 인정되는 것일까. 법원은 퍼블리시티권을 저작권과 유사한 권리로 보아 상속이 가능하고, 해당 권리자의 사망 후 50년간 존속한다고 보고 있다.

소설가 이효석 선생의 유족이 "상품권에 유족의 승낙없이 이효석 선생의 얼굴과 서명 등을 사용하였다"며 상품권발행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적이 있었다. 법원은 2007년 이 사건 판결을 통해 "이효석 선생이 사망한 지 50년이 지났기 때문에 유족들의 독점적 권리는 보호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초상권 #사진 #퍼블리시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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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법원공무원(각종 강의, 출간, 기고) 책<생활법률상식사전> <판결 vs 판결> 등/ 강의(인권위, 도서관, 구청, 도청, 대학에서 생활법률 정보인권 강의) / 방송 (KBS 라디오 경제로통일로 고정출연 등) /2009년,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jundorap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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