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이처럼 사무적이며
.. 인간의 목숨을 빼앗는 일이 이처럼 사무적이며, 이처럼 손을 더럽히지 않고 깨끗이, 이처럼 개인적 비난을 받지도 않고 해낼 수 있었던 적이 일찍이 있었던가? .. 《랠프 랩/표문태 옮김-핵전쟁》(현암사,1970) 50쪽
"인간(人間)의 목숨"은 "사람 목숨"으로 다듬습니다. "개인적(個人的) 비난(非難)을 받지도 않고"는 "사람들한테 욕을 먹지도 않고"나 "사람들한테 아무 소리도 안 듣고"로 손질해 봅니다.
┌ 사무적(事務的)
│ (1) 사무에 관한
│ - 퇴직하신 아버지를 다시 모셔 사무적 지원을 받았다 / 사무적인 능력
│ (2) 행동이나 태도가 진심이나 성의가 없고 기계적이거나 형식적인
│ - 공적인 자리에서 나를 그렇게 사무적 태도로 대해 매우 당황했다 /
│ 사무적인 말투는 듣는 사람을 늘 불편하게 만든다
├ 사무(事務) : 자신이 맡은 직책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일. 주로
│ 책상에서 문서 따위를 다루는 일을 이른다
│ - 사무 처리 / 사무를 보다 / 사무를 인계하다
│
├ 이처럼 사무적이며
│→ 이처럼 착착 이루어지며
│→ 이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지며
│→ 이처럼 서류 한 장으로 이루어지며
│→ 이처럼 책상 앞에서 이루어지며
└ …
'-적'붙이 말투 '사무적' 뜻은 '기계적'과 '형식적'이라고 합니다. 낱말 하나로 그치지 않고 다른 데까지 가지를 뻗는 '-적' 씀씀이입니다. 다시금 '기계적'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봅니다. 뜻풀이가 "인간적인 감정이나 창의성이 없이 맹목적ㆍ수동적으로 하는"으로 나옵니다. 또다른 '-적'붙이 말투 '기계적'은 세 가지 '-적'붙이 말투를 불러들입니다. '형식적'은 "사물이 외부로 나타나 보이는 모양을 위주로 하는"이라는 풀이말이 달립니다. 이참에는 다른 '-적'붙이 말투가 뒤따르지 않습니다.
― 사무적 : 기계적, 형식적, 맹목적, 수동적
이런저런 말풀이를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기계와 같고 형식만 있으며 맹목으로 치닫고 수동이기만 한 모습이라 하는 '사무적'입니다. 기계와 같으니 따뜻한 마음이나 사랑이 없이 차갑거나 쌀쌀한 느낌입니다. 형식만 있으니 넉넉함이나 너그러움은 없는 가운데 겉만 번드르르하며 매몰차겠구나 싶습니다. 맹목으로 치달으니 둘레를 널리 바라보거나 살피지 못하는 느낌이고, 수동이기만한 모습이니 스스로 나서서 무엇인가를 해 보려는 모습을 찾기 어렵습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어떤 뜻으로 넣은 '사무적'일까 궁금합니다. "여느 회사일처럼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쓴 '사무적'일까요? 아니면, 따순 마음 하나 없이 차갑거나 쌀쌀맞게 구는 모습을 가리키려는 '사무적'일까요?
┌ 사람 목숨을 빼앗는 일이 이처럼 차갑게 이루어지며
├ 사람 목숨을 빼앗는 일이 이처럼 손쉽게 이루어지며
├ 사람 목숨을 빼앗는 일이 이처럼 가볍게 이루어지며
└ …
글흐름을 다시금 짚어 보니, "사람 목숨을 빼앗는 일이 이처럼 여느 회사일처럼 이루어지며"쯤으로 손질해 보아도 잘 어울리는구나 싶습니다. '여느 회사일'이란 책상 앞에서 이루어지니 "책상 앞에서 이루어지며"나 "서류 한 장으로 이루어지며"를 넣어도 되고, '손쉽게'나 '가볍게'나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를 넣어 주어도 괜찮습니다.
┌ 사무적인 능력 → 일솜씨
└ 사무적인 말투 → 딱딱한 말투 / 회사원(공무원) 말투
따지고 보면, 회사일이라고 해서 딱딱하거나 차갑거나 쌀쌀맞거나 매몰차게 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모든 회사일이 딱딱하게 이루어진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터를 돌아본다면, 여느 회사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나 여느 공무원이 일하는 매무새는 퍽 차갑거나 쌀쌀맞지 않느냐 싶습니다. 마치 기계와 같고, 얼굴에는 웃음기 하나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는데 사람다움을 찾기 힘듭니다. 사람으로서 사람일을 맡고 있으나 사람내음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사람 앞에 서류가 있고 사람 위에 형식이 있습니다. 사람 앞에 이름값이 있고 사람 위에 계급이 놓입니다.
이에 따라 우리들 말과 글은 차츰 차갑거나 딱딱해지고, 쌀쌀맞거나 메마르게 되어 버립니다.
ㄴ. 사무적인 타산
.. 거짓과 거짓, 사무적인 타산으로 이루어지는 기계적인 표현 .. 《신동엽-젊은 시인의 사랑》(실천문학사,1988) 169쪽
'타산(打算)'은 '셈속'이나 '속셈'이나 '꿍꿍이셈'이나 '꿍꿍이'로 다듬어 줍니다. '표현(表現)'은 '말'로 손봅니다.
┌ 사무적인 타산으로 이루어지는 기계적인 표현
│
│→ 차디찬 꿍꿍이셈으로 이루어지는 딱딱한 말
│→ 메마른 셈속으로 이루어지는 차가운 말
│→ 제 배속만 챙기며 이루어지는 매몰찬 말
└ …
참된 마음이 없이 기계와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할 때 '사무적'이라는 말을 넣곤 합니다. 보기글을 보면 뒤쪽에 "기계적인 표현"이라고 나오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글 앞뒤에 '기계적'이라는 낱말을 나란히 넣은 셈입니다. 성긴 겹말이라고 할까요.
'기계적'이라는 낱말이든 '사무적'이라는 낱말이든, 모두 따뜻함이나 사랑이나 믿음이나 넉넉함이나 웃음이나 즐거움이나 보람 따위를 헤아리지 않는 마음결을 가리킵니다. 우리 스스로 차갑거나 쌀쌀하거나 모질거나 딱딱하거나 굳어 있거나 서늘하거나 찬바람 휭휭 부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보기글처럼 글을 쓰고 말을 해야 할까요. 우리 깜냥껏 우리 느낌과 생각을 나타낼 수는 없는가요. 반드시 한자말로 적어야 하고, 어김없이 '-적'을 붙여야 할까요. "사무를 보듯 타산으로 이루어지는 기계 같은 표현"처럼 적을 수 없었을까요. 한자말 '사무'와 '기계'를 쓰고 싶다면 쓸 노릇입니다만, 올바르고 알맞게 써야 하지 않을는지요.
┌ 차가운 꿍꿍이로 이루어지는 덧없는 말
├ 싸늘한 셈속으로 이루어지는 부질없는 말
├ 핏기 없이 주판알 굴리듯 이루어지는 굳어 버린 말
└ …
삶이 굳어 있어 생각이 굳고, 생각이 굳는 가운데 말이 굳는지 모릅니다. 삶이 딱딱한 가운데 생각이 딱딱하고, 생각이 딱딱하다 보니 말이 딱딱해지는지 모릅니다. 삶이 메마르니 생각이 메마르고, 생각이 메마른 판에 말이 메마르지 않기란 어렵습니다.
쳇바퀴를 도는 삶과 생각과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흐르지 못하고 고여 버린 웅덩이와 같은 삶과 생각과 말이 아니랴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11.10 18:22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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