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작가 코넬 울리치는 우리나라에서 윌리엄 아이리시라는 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을 읽어보았거나 아니면 제목이라도 들어봤을 것이다. <환상의 여인>은 '세계 몇 대 추리소설' 등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을 만큼 유명한 작품이다.
<환상의 여인>에서는 유령처럼 사라져버린 한 여인을 찾기위해 주인공이 동분서주한다. 여인과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그 사실을 증명할 방법이 없어서 주인공이 난감한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이렇게 난감한 상황은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에서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은둔자 톰킨스가 등장한다. 톰킨스는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가까운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 타인의 과거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다.
톰킨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이용해서 떼돈을 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대신에 낡은 아파트의 작은 방에 은둔하는 쪽을 택한다. 사람들의 호기심과 짓궂은 행동에서 커다란 상처를 받은 것이다.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남자
이런 톰킨스에게 중년의 사업가 레이드가 찾아온다. 얼마전 자신이 타려고 했던 비행기의 추락사고를 톰킨스가 미리 예언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레이드는 톰킨스의 능력을 이용해서 수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톰킨스는 주식투자를 어떻게 하라고 조언하고, 사업파트너의 제안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그의 예언은 백발백중이다. 레이드는 주식으로 하루에 2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위탁판매를 하루 연기해서 20만 달러의 수익을 만들어낸다. 레이드는 그때마다 톰킨스에게 사례하려고 하지만 톰킨스는 항상 거절한다. 톰킨스가 평소에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돈의 유혹에 넘어가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날, 톰킨스는 레이드의 죽음을 예언한다. 톰킨스도 그런 예언은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레이드의 다그침을 견디지 못해서 마침내 실토하고 만다. 당신은 3주 후 자정에 사자의 아가리에서 죽을 것이라고.
3년 후에 죽는다는 말을 듣더라도 사람은 절망에 빠지기 쉽다. 하물며 3주 후에 죽는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심정이 될까. 레이드는 외동딸 진과 함께 살고 있다. 이 사실을 진도 알게되고 그녀도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진이 아무리 아버지를 달래고 위로해도 소용없다. 톰킨스의 능력을 이미 알고있는 레이드의 앞에는 오로지 3주 후의 죽음만이 남은 것이다.
레이드는 이때부터 침실에 틀어박혀서 시계만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보낸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1초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그리고 점점 쇠약하고 초췌하게 변해간다. 하루에 2만 달러를 벌어들이던 기백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죽음에 대한 예언이 누군가의 음모라고 하더라도, 그 음모는 예언 만으로도 잔인하게 성공한 것이다.
경찰도 수사에 들어간다. 톰킨스의 능력이 정말로 실재하는지 조사하고, 근처에 어떤 사자들이 돌아다니고 있는지 탐문한다. 그리고 젊은 형사 한 명을 레이드의 곁에 파견한다. 죽음의 날이 오면, 한 순간도 레이드의 곁에서 떨어지지 말라는 명령도 내려진다. 형사들의 수사가 레이드에게 다시 삶을 되찾아줄 수 있을까?
운명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기이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등장하는 미스터리 소설은 많다. 그런 능력은 대부분 미래를 내다보는 힘이다. 그들은 끔찍한 미래의 사건을 미리보고, 어떻게든 그것을 막으려고 노력한다. 능력을 가진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그런 작품들과 약간 다르다. 힘을 가진 사람은 한쪽에 물러나 있고, 미래를 바꾸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대신에 죽음의 대상이 된 사람이 절망적으로 그려진다. 레이드는 자신을 찾아온 형사에게 호소한다. 자신에게 삶을 돌려달라고. 자신을 구해달라고.
코넬 울리치는 절망에 빠진 사람을 묘사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 앞에서 예언자의 존재는 필요하지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형사들의 수사가 모든 궁금증을 해소하지는 못하지만, 그것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코넬 울리치가 창조한 것은 죽음의 공포에 직면한 사람이 꾸는 악몽이다.
덧붙이는 글 |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코넬 울리치 지음 / 이은경 옮김. 이룸 펴냄.
2009.11.19 11:55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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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코넬 울리치 지음, 이은경 옮김,
자음과모음(이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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