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덕여왕>.
MBC
요즘 드라마 <선덕여왕> 속 김유신(엄태웅 분)의 처지가 말이 아니다. 선덕여왕(이요원 분)의 즉위 이후 신라의 명장으로 떠올랐지만, 가야 출신이라는 게 족쇄가 되어 비담(김남길 분)에게 정치적 공격을 받더니 급기야 우산국 유배라는 수모를 당하기까지에 이르렀다.
다행히 여왕의 배려로 우산국 대신 백제에 잠입하여 첩자 노릇을 하게 되기는 했지만, 유신의 위신은 이미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지고 말았다. 신라의 전쟁 영웅이, 무슨 삼재(三災)의 재앙이라도 만난 듯이 관운을 잃을 대로 잃고 만 것이다. 그런 유신이 무슨 저주라도 내린 것처럼, 유신을 버린 신라는 백제에게 대야성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드라마 속 유신은 최근 유행어로 말하자면 '신라판 루저'나 마찬가지다. 여왕의 등극에 큰 기여를 하고 전쟁터에서 큰 공을 세운 그가 결정적으로 '가야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온갖 정치적 박해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키가 작지는 않았겠지만, '북위 36도도 안 되는' 가야 땅 출신이라는 게 그에게는 콤플렉스 중의 콤플렉스로 작용하고 있다. 참고로, 멸망 이전의 가야 땅은 대체로 북위 36도 아래에 있었다.
23일과 24일에 방영된 드라마 <선덕여왕> 제53부 및 제54부는 선덕여왕 집권 후에 일련의 군공을 바탕으로 신라의 명장으로 떠오른 김유신이 가야 출신이라는 약점 때문에 비담의 공격을 받아 모든 관직을 잃고 말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런 구성은 김유신의 실제 처지와는 전혀 딴판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선덕여왕 시대에 김유신의 관운은 초기에는 잠잠하다가 나중으로 가면서 점차 상승하는 기운을 보였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관운과는 정반대의 양상을 보였던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신라판 루저'로 전락한 유신논의를 본격 진행하기에 앞서, 우리는 가야 출신이라는 사실이 김유신의 정치적 성장에 큰 지장을 주지 않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정통 신라 출신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다고 가야 출신이라는 게 특별히 장애가 되지도 않았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신라 입장에서는 최첨단 철기문명을 보유한 가야 출신들을 배척하기보다는 어떻게든 그들을 수용하는 게 더 유리했다. 한민족 중 최약체였던 신라가 가야를 흡수한 뒤부터 승승장구하여 나중에는 대동강 유역까지 진출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신라 입장에서는 가야 출신들을 배척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잘 구슬려서 하나라도 더 얻어내는 게 이익이었다.
둘째, 7세기 초반은 대체로 '출신'보다는 '능력'이 더 중시되는 시기였다. 신생 통일제국인 수나라·당나라의 대외팽창이 진행되던 이 시기는 신라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가 새로운 질서를 향해 요동 치던 때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신라는 선덕여왕(재위 632~647년)이 즉위하기 30년 전인 602년부터 고구려·백제의 만성적인 침공에 시달렸다. 그렇기 때문에, 신라 출신이니 가야 출신이니 가릴 것 없이 누구라도 능력만 있으면 일단 믿고 맡겨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되어 있었다.
조직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비주류에게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는 점은 우리의 경험법칙상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군에 갈 수 없었던 '불가촉천민'인 노비들이 임진왜란을 계기로 속오군에 편제되어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국가적 위기 앞에서는 양인의 힘이든 노비의 힘이든 일단 빌리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하급 무관인 이순신과 권율이 유성룡에 의해 발탁된 것 역시, 조직의 위기 앞에서는 신분이 높은 사람보다는 능력이 많은 사람을 우선적으로 기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처럼, 위기에 처한 7세기 초반의 신라인들 역시 가야 출신들을 차별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실제 유신은 군사무대에서 영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