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63)

― '엄마의 길', '출세의 길' 다듬기

등록 2009.11.27 13:33수정 2009.11.27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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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엄마의 길

 

.. 세상의 엄마들은 엄마라는 기억을 머리에 이고 엄마를 부정하면서 또 평생 그리워하면서 그렇게 제각기 엄마의 길을 간다 ..  《안미선-내 날개 옷은 어디 갔지?》(철수와영희,2009) 80쪽

 

 "세상의 엄마들"은 "세상 엄마들"이나 "온누리 엄마들"로 다듬습니다. '기억(記憶)'은 '생각'으로 손보고, '부정(否定)하면서'는 '도리질 치면서'나 '머리에서 지우면서'로 손보며, '평생(平生)'은 '죽는 날까지'나 '언제까지나'로 손봅니다. '제각기(-各其)'는 '저마다'로 손질해 줍니다.

 

 ┌ 엄마의 길을 간다

 │

 │→ 엄마 길을 간다

 │→ 엄마라는 길을 간다

 │→ 엄마로 살아내는 길을 간다

 └ …

 

 제법 여러 해 되었는데, "배움의 도"라는 책이 나온 적 있습니다. 얼마 앞서 "인간의 길"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이 책과 저 책에 붙은 이름을 헤아려 보면, "배움의 도"는 얼마든지 "배움의 길"처럼 '道'를 털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인간의 길"은 '人間'을 가다듬으며 "사람의 길"로 추스를 수 있었습니다.

 

 한쪽 책은 '工夫'나 '修鍊'이나 '學習'을 털어내고 '배움'을 적었으며, 다른 한쪽 책은 '道'를 털어내고 '길'을 적었습니다. 아쉽게도, 두 가지 책은 서로한테서 조금씩 나은 모습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서로서로 한결 나은 길을 걸어간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의 道'처럼 적는 말투이든, '道'를 한글로 옮긴 '-의 도'처럼 말투이든, '道'를 우리 말로 풀어낸 '-의 길'처럼 적는 말투이든, 하나같이 일본 말투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본 말투를 살갗으로 못 느끼는 가운데, 살갗으로 느낀다 하여도 살뜰히 털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낱말 한두 군데는 알뜰살뜰 살려쓰거나 북돋우기는 하지만, 말투를 옹글게 알차게 갈고닦거나 껴안지는 못합니다.

 

 ┌ 배움의 도 → 배움의 길 → 배우는 길 → 배움길

 └ 인간의 길 → 사람의 길 → 사람이 걷는 길 → 사람길

 

 보기글에 나온 "엄마의 길"에서도 매한가지입니다. "모정의 도"이든 "모성의 길"이든 하는 글투가 아닌 "엄마의 길"처럼 적으니 반갑습니다. 그렇지만 토씨 '-의'에서 걸리는 글투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왜 '엄마 길'이나 '아빠 길'이나 '누나 길'처럼 말하지 못하는지요. 우리는 왜 '내 길'이나 '우리 길'이나 '네 길'처럼 말하지 못하는가요. 그나마 '내 길'조차 아닌 '나의 길'이며, '우리 길'마저 아닌 '우리의 길'처럼 적어 버리고 맙니다.

 

 말이 말다운 길을 걷도록 애쓰지 못합니다. 말길을 트지 못해요. 글길을 열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생각이 생각답게 뿌리내리며 퍼져나가는 생각길을 가누지 못하는 탓이 아니랴 싶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싱그럽게 가꾸는 삶길을 여미지 못하는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삶길이 없는 가운데 말길이 없습니다. 생각길을 열지 않는 가운데 글길을 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눈길을 곧게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 귓길을 열고 마음길을 보듬으면서 우리들 참살길을 찾아야지 싶습니다.

 

 

ㄴ. 출세의 길

 

.. 해방의 기쁨과 혼란 속에서 남들은 출세의 길을 찾기 바빴지만, 나는 학병으로 끌려나가는 바람에 중단했던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  《김보겸-철학 이전의 대화》(애지사,1971) 261쪽

 

 "해방의 기쁨과"는 "해방된 기쁨과"나 "해방을 맞이한 기쁨과"로 손봅니다. "혼란(混亂) 속에서"는 "뒤죽박죽인 가운데"나 "어수선한 가운데"로 손보고, "계속(繼續)하기 위(爲)해"는 '이어나가고자'나 '이어나가려고'로 손봐 주고요. '중단(中斷)했던'은 '멈췄던'이나 '쉬고 있던'으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 출세의 길을 찾기 바빴지만

 │

 │→ 출세길을 찾기 바빴지만

 │→ 이름을 드날릴 길을 찾기 바빴지만

 └ …

 

 저 혼자 이름을 드날리면 된다는 잇속이 아니라,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조그마한 한 가지라도 즐겁게 나누면서 살아가자는 마음으로 애쓰는 사람 숫자는 왜 적을까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머나먼 옛날부터 이렇게 살아왔을까요. 어느 한때 확 잘못 뒤틀리면서 이처럼 되었을까요.

 

 우리는 내 밥그릇 두둑하게 챙기려는 얕은 출세길을, 이름길을, 돈길을, 힘길을 왜 그리도 좋아하거나 반기는지 궁금합니다. 참되고 슬기롭고 아름다운 배움길을 걷지 못하면서 가방끈만 길게 늘어뜨리려는 학벌길로만 걸어가는 까닭이 궁금합니다. 나 하나만 배불러도 나 한 사람 삶이 넉넉하거나 즐거울 수 있을까요. 내 둘레 사람들은 하나같이 굶거나 고달픈데 내 밥상이 푸짐하면 아무 걱정이 없을 수 있는가요.

 

 ┌ 남들은 출세할 길을 찾기 바빴지만

 ├ 남들은 출세하겠다며 제 살 길을 찾기 바빴지만

 ├ 남들은 이름을 날리겠다며 눈 먼 길을 찾기 바빴지만

 ├ 남들은 더 높은 자리에 오르겠다는 길을 찾기 바빴지만

 └ …

 

 이름이 얼마나 좋은가요. 돈이 얼마나 기쁜가요. 힘이 얼마나 고마운가요. 우리들은 이런 저지레에 끄달리면서 살아가야 하나요. 이름 아닌 아름다운 사랑은 싫은가요. 돈 아닌 살가운 믿음이 내키지 않나요. 힘 아닌 푸근한 나눔은 못마땅한가요.

 

 밥그릇은 하루에 기껏 세 그릇 받으면 배부릅니다. 하루에 대여섯 그릇이나 열 그릇을 먹으면 배가 터지거나 뚱뚱보가 됩니다. 살만 디룩디룩 쪄서 생각이 사라집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우리들 삶은 하루 세 그릇 밥먹기가 아니라 하루 열 그릇 밥먹기처럼 되고 말아, 한결같이 배불러 아무 생각 없이 지내는 모양새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루 세 그릇을 하루 두 그릇으로 줄이며 내 동무나 이웃하고 나누려는 마음은 죄 잃어버리고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배부르고 살찐 사람한테는 우리 말이고 우리 글이고 우리 얼이고 우리 넋이고를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배부르고 살찐 사람한테는 더 많은 밥그릇과 또 다른 밥상만 눈에 들어오니 아무런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11.27 13:33ⓒ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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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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