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고 사진잡지 묶는 마음

[헌책방 책시렁에 숨은 책 46] 일본 도쿄 간다 헌책방거리와 <アサヒグラフ>

등록 2009.12.07 14:23수정 2009.12.0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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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 고향마을인 인천에서 쫓겨나야 합니다. 저한테는 아파트가 없고, 아파트 빌릴 돈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인천에서는 서울 용산처럼 '끔찍한 일'이 터지지는 않았으나, 서울 용산과 견주면 더 무시무시한 도시개발특별법이 춤추고 있습니다. 그저 중앙언론에 기사가 제대로 안 날 뿐더러, 부동산투기와 도시축전 기사만 넘치며 인천 안팎에서 속알맹이 모습을 샅샅이 들여다보는 눈길과 마음길이 없을 뿐입니다.

이리하여 인천에서 사진을 찍거나 책을 묶는 이들을 비롯하여 나라안에서 인천을 찾아와 사진 찍고 글 쓰는 사람들 가운데 여태까지 '인천 참모습 보여주는 목소리'를 낸 일은 아직 없다고 느낍니다. 인천에서 문화·사회·정치·예술·교육 운동을 한다는 이들 가운데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서 '마음을 살찌우는 책'을 몸소 두 손에 책먼지 묻혀 가며 찾아 읽는 분이 퍽 드뭅니다. 너무 바쁘셔서. 너무 많은 일에 얽매이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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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간다 헌책방거리에서. ⓒ 최종규

동네책방에서 책을 사는 일 없이 ㄱ문고, ㅇ문고, ㅇ라딘, ㅇ파크 같은 데만 드나들 뿐입니다. 어쩌면, 오늘날 지식인과 문화예술인 가운데 술 한 병 살 때에 구멍가게로 가는 이는 없고, ㅇ마트, ㄹ마트 같은 데로 자가용 몰고 가는 이만 있는 모습하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이제 웬만한 분들은 구멍가게 하나 없는 아파트마을에 살고 있기도 합니다. 대형과 중형 사진기를 쓰면 틀림없이 멋진 작품이 나옵니다만, 작고 낮은 사람과 함께 작고 낮은 사진기를 고개숙이며 어깨동무하며 땀내와 눈물내 나는 사진을 빚어내지는 못하는 흐름하고도 여러모로 닮은 삶입니다.

남 이야기를 하기보다 제 이야기를 해 본다면, 그동안 열 차례 사진기를 잃거나 도둑맞은 일은 제가 더 '크고 높은' 장비를 못 쓰도록 잘 타일러 주면서, 언제나 낮고 작은 자리에서 낮고 작은 눈높이 사진을 찍도록 해 주었다고 느낍니다.

늘 밑바닥 살림돈으로 허덕이니, 프랑스며 미국이며 남미며 인도며 네팔이며 하는 데에는 가 본 적 없고 가 볼 꿈 또한 못 꿉니다. 나라밖 비싸구려 멋진 사진책을 장만할 주머니가 안 됩니다. 그렇지만 이런 밑바닥 살림이기 때문에 나라안 헌책방을 골골샅샅 찾아다닙니다. 값싸구려 사진책을 이제까지 5천 권 남짓 장만하며 얕은 눈이 더 얕아지지는 않도록 다스릴 수 있습니다.

딱 한 번, 지난 2001년에 일본땅을 밟아 보았습니다. 그때 다니고 있던 출판사에서 저를 '책 사들고 돌아오는 짐꾼'으로 보내 주었기 때문입니다. 네 밤 자는 나들이를 고맙게 얻어 다니면서, 도쿄 간다 헌책방거리 151군데 헌책방 가운데 100군데쯤 들락거렸습니다. 출판사에서 쓸 책을 가방 여러 개에 잔뜩 채우며 메고 끌고 나르고 했는데, 제 몫으로 삼고 싶은 책을 꼭 두 권 살짝 챙겼습니다. 다만, 저한테는 돈이 없고 들어야 할 짐이 아주 많아서 얇고 가벼운 사진잡지를 장만했습니다. 이나마 제 몫으로 두 권을 사지 않는다면 아무리 짐꾼 노릇이라 하더라도 몹시 슬픈 노릇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 두 분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짐꾼 노릇을 하면서, '사진잡지만 파는' 헌책방 앞에서 참으로 잠깐 머물렀습니다. 1950년대 뒤 잡지는 300엔, 1950년대 앞 잡지는 500엔, 1930년대 앞 잡지는 1000엔… 하는 값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일본 물건값을 헤아린다면 1800년대 책마저 퍽 값싸게 살 수 있음을 느끼며 우리네 책마을이 얼마나 가난한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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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층짜리 '고서센터' 건물은 우리 나라에서는 꿈만 같은 '헌책방 빌딩'입니다. ⓒ 최종규


가만히 살피면, 우리가 쓰는 거의 모든 사진기는 캐논이나 니콘입니다. 다른 사진기도 여럿인데 웬만한 사진기는 일본에서 다 만든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필름을 만드는 회사는 몇 군데뿐인데 두 가지 큰 기둥 가운데 하나는 후지입니다. 더 들여다보아도 그렇지만, 일본은 지구에서 가장 크고 높은 사진문화와 사진기술과 사진경제와 사진삶이 뿌리내리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세계 사진 역사'와 '손꼽히는 사진작가'는 일본 역사와 일본 작가를 거의 안 다루고 있습니다만, '일본 사진 역사'와 '일본 사진작가'를 책으로 묶으면 '세계 사진 역사'와 '세계 사진작가' 이야기보다 훨씬 두툼하면 두툼하지, 얇을 수 없어요. 그런데 사진을 배우겠다는 분 가운데 일본으로 찾아가는 이는 매우 드뭅니다. 일본 사진문화나 일본 사진책이나 일본 사진작가를 살피지 않습니다. 우리 곁에 참으로 크고 높은 스승이 있으나 스승으로 섬기지 못합니다. 배우는 사람으로서나 창작하는 사람으로서나 우리 얼굴은 더없이 부끄럽다고 느낍니다.

주간 사진잡지 <LIFE>는 1936년에 첫 호를 냈으나 1972년에 마지막 호를 냈습니다. 이와 달리 주간 사진잡지 <アサヒグラフ(ASAHIGRAPH)>는 1923년에 첫 호를 냈고 4000호가 넘는 숫자를 자랑합니다. 월간 사진잡지 <アサヒカメラ(ASAHICAMERA>는 1949년부터 나오고 있어요.

제가 장만한 <アサヒグラフ>는 1961년치(1941호)와 1966년치(2202호)인데, 이 주간 사진잡지 기자는 한국땅에 찾아와 구석구석을 돌며 "한국 시민 삶"을 특집으로 삼았습니다. 아마 이때 앞서와 이때 뒤로도 "한국 시민 삶"을 담아내었겠지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아예 안 찍거나 거의 안 살피는 "우리 이웃 삶"이라는 사진밭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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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진잡지 두 권. 2001년에 일본마실을 한 번 했을 때 장만한 녀석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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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진쟁이들은 이해만이 아니라 여느 해에도 늘 '한국 취재'를 해서 '한국 사진쟁이는 안 담는 숱한 모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사진잡지 <포토넷> 2009년 12월호에 함께 싣습니다.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사진잡지 <포토넷> 2009년 12월호에 함께 싣습니다.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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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사진책 #일본사진 #사진잡지 #사진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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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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