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터 하나 값과 사진책 한 권 값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9] 성남훈, <유민의 땅>

등록 2009.12.27 12:08수정 2009.12.27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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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The unrooted 1991-2005, 유민의 땅

- 사진 : 성남훈

- 펴낸곳 : 눈빛 (2005.12.29.)

- 책값 : 5만 원

 

 

 (1) 필터 하나 값과 사진책 한 권 값

 

 2005년 12월에 1쇄를 찍은 사진책 《유민의 땅》은 2007년 11월에 2쇄를 찍습니다. 나라안 사진책이 2쇄를 찍는 일이 드문데, 《유민의 땅》은 고작 이태 만에 2쇄를 찍었습니다. 적잖은 사람들이 손가락을 추켜세울 뿐 아니라, 이름이 제법 높은 분 사진책임을 헤아린다면, 흔한 말로 '필터 하나 값'밖에 안 되는 5만 원짜리 사진책 《유민의 땅》이 2쇄밖에 못 찍은 일은 슬프다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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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유민의 땅> 모습. ⓒ 최종규

사진책 <유민의 땅> 모습. ⓒ 최종규

 

 그런데 웬만한 필터는 5만 원뿐 아니라 7만 원도 하고 10만 원이 넘기도 합니다. 필터 아닌 다른 부속이나 장식품은 훨씬 비싸곤 합니다. 저로서는 사진기하고 필름 두 가지만 사지 다른 어떠한 부속이나 장식을 더 사지 않으니 잘 모릅니다만, 곁따르는 물건이 제법 많이 팔린다고 합니다. 이런 흐름을 살핀다면, 사진책이 참 안 팔리는 모습이 슬픕니다.

 

 어쩌면, 이 나라에는 사진장비를 사고파는 누리집하고 가게만 있지, 사진책을 전문으로 다루는 책방이 없는 탓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사진책이라 한다면 ㄱ문고나 ㅇ문고 같은 책꽂이뿐 아니라 웬만큼 큰 사진관 한켠에 책시렁을 마련해서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을 보아야 사진 찍는 눈썰미'를 키울 수 있지 않습니다만, 사진 한 장으로 우리 가슴을 촉촉히 적시거나 사진 한 장으로 우리 마음을 따뜻히 감싸안을 수 있음을 느낀다면, 우리는 우리 깜냥껏 우리 사진을 더 즐겁고 알차게 가꿀 수 있거든요.

 

.. 앞으로 5년 정도 저널리즘에 천착하고자 한다면 분명 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사진집 《유민의 땅》이 출간되는 시기는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난 15년 간 단 한 순간도 인간과 그들의 삶을 생각해 보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또 앞으로 최소한 5년 간 분명한 사진의 방향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이 책 《유민의 땅》은 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290쪽)

 

 택시 탈 일이 거의 없는 제 삶인데, 어찌하다 보니 서울에서 인천으로 몇 번 택시를 타고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서울에서만 돌아다니면 지하철이 늦게까지 있으나 인천으로 돌아가는 사람한테는 참 일찍 끊깁니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인천으로 달리니 4만 1천 원 안팎이 나옵니다. 택시삯을 치르며 '이 돈이면 책이 몇 권인가?' 하고 되뇌며 속으로 울음을 삼키는데, 돈을 조금 더 보태면 《유민의 땅》 같은 사진책을 한 권 장만할 수 있습니다.

 

 엊그제 헌책방마실을 하며 '世界の文化史蹟' 가운데 하나로 나온 《マヤの神殿》(講談社,1968) 하나를 장만했습니다. 1968년에 나온 책값으로 2500엔인데, 헌책방에서는 고작 1만 5천 원에 팔았습니다. 자그마치 마흔 해가 묵은 사진책입니다만 인쇄 품질이나 사진결이나 얼마나 대단한지, 1만 5천 원이든 2500엔이든(예전 값이지만) 더없이 값싼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놀라운 사진책이 헌책방에 자주 들어오지는 않지만, 눈에 보이는 대로 장만해 놓고 있는데, 택시삯 4만 원이면 몇 푼 얹으면 이만한 놀라운 사진책을 세 권 장만할 수 있습니다.

 

 서울 혜화동에는 〈이음책방〉이라고 하는 인문예술책방이 있습니다. 이곳을 찾아가면 'PHAIDON'에서 펴낸 손바닥 사진책들이 차곡차곡 꽂혀 있습니다. 자그마한 판으로 퍽 값싸게 묶은 이 사진책들은, 서울에서 인천으로 달린 택시삯으로 네 권을 장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택시를 타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꽤 괜찮은 필터 하나 사는 데에 들이는 값이면 좋은 사진책 하나를 살 수 있기도 하지만, 필터를 사지 말자는 소리 또한 아닙니다. 요사이는 필름값이 무척 올라서, 제가 쓰는 필름(일포트 델타 프로페셔날 400)은 한 통에 7500원씩 합니다. 제가 쓰는 필름으로 치자면, 이 필름 여섯 통 값이면 《유민의 땅》 한 권이 나옵니다. 필름 여섯 통을 덜 사면 좋은 사진책 한 권을 마련할 수 있기까지 합니다. 한 해가 끝나는 요즈음 크고작은 갖가지 술자리가 많다는데, 웬만한 술자리 한 번 치르며 나가는 돈은 몇 만 원씩 됩니다. 예부터 익히 떠도는 말인데, 술자리 한 번 줄이는 값이면 《유민의 땅》에다가 《내가 바라본 격동의 한국》 한 권을 더 장만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이렇게 이래저래 나가는 돈을 줄여서 사진책을 하나 더 장만하는 일이 좋을까요, 아니면 이래저래 나가는 대로 돈을 쓰면서도 사진책을 하나 더 장만하려고 용쓰는 일이 좋을까요, 아니면 그 어느 데에도 돈을 안 쓰면서 사진책만 장만하는 일이 좋을까요, 사진책은 꿈같은 소리로 여기며 눈을 감는 일이 좋을까요, 아니면 집하고 가까운 도서관에 사진책을 신청해 놓고 기다리면서 도서관마실을 하며 사진책을 읽는 일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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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훈 님 사진책 <유민의 땅>은 떠돌이 삶을 '스치고 지나가야 하는 사람'으로서 잘 들여다보면서 담아냈습니다. ⓒ 성남훈/눈빛

성남훈 님 사진책 <유민의 땅>은 떠돌이 삶을 '스치고 지나가야 하는 사람'으로서 잘 들여다보면서 담아냈습니다. ⓒ 성남훈/눈빛

 

.. 다른 사람들도 제 사진에 '변화'가 없다는 말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심각하게 앵글의 변화가 없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저도 요즘 제 사진에 대한 문제점과 그 원인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가가 자신의 문제점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의 작업 과정을 검토하는 것은 당연합니다만, 저도 제가 가는 길과 제가 얻으려 하는 사진에 대해서 많은 검토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앞으로 좀더 저널리즘 쪽으로 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  (290쪽)

 

 보름쯤 앞서 홍순태 님 사진책 《낙동강》(눈빛,2007)을 장만했습니다. 2007년에 2만 원 값으로 나온 책인데 2009년 눈높이로 돌아보자니 책값 2만 원은 퍽 싸다고 느꼈습니다. 2005년에 나온 전민조 님 사진책 《섬》(눈빛,2005)은 책값이 1만 5천 원입니다. 2005년에 이 사진책을 살 때에도 그리 비싸다고는 느끼지 않았으나 이무렵 1만 5천 원에 나온 사진책이 요즈음에는 3만 원을 달고 있습니다. 더욱이 《섬》은 156쪽인데 《낙동강》은 110쪽입니다.

 

 사진책을 '어떠한 사진이 어떻게 담겨 내 마음을 건드리느냐'가 아닌 돈값과 쪽수와 크기로만 따지는 일은 부질없습니다. 그러나, 사진책도 똑같은 책인 만큼 이런 생각도 한 번 해 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사진책 값이 퍽 비싸다고들 이야기하는데, 이 사진책들이 참으로 비싼지, 비싸다면 얼마나 비싼지를 곰곰이 따져 볼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사진책은 한 번 슥 훑고 그치는 책이 아닙니다. 내 주머니를 털어서 장만한다는 사진책이라면 아무리 못해도 100번은 다시 넘기는 책입니다. 참 좋았던 사진책이라면 1000번을 되읽습니다. 그지없이 훌륭한 사진책이라고 받아들인다면 종이장이 너덜너덜해지도록 들추다가는 나중에 '깨끗하게 간수할 판'으로 하나 더 사 놓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저한테는 《섬》 사진책이 두 권 있습니다. 전몽각 님이 담은 《윤미네 집》도 두 권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번에 '포토넷' 출판사에서 새로 찍는 《윤미네 집》까지 주문해 놓았습니다. 이들 사진책을 장만하면서 주머니가 한꺼번에 아주 얇아진다고 느끼지만, 주머니가 얇아져 살림돈이 바닥나 버리더라도 제 가슴에는 뭉클한 웃음과 눈물이 가득가득 넘치기 때문에 기꺼이 거듭거듭 장만해서 새로 보고 새삼 보며 새록새록 되새기며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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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의 땅>에 실린 '우리 나라 달동네' 모습. 이 모습을 좀더 깊이 담아서 따로 묶어낸다면 더 좋겠습니다. ⓒ 성남훈/눈빛

<유민의 땅>에 실린 '우리 나라 달동네' 모습. 이 모습을 좀더 깊이 담아서 따로 묶어낸다면 더 좋겠습니다. ⓒ 성남훈/눈빛

 

 (2) 성남훈 님이 사진으로 담은 삶

 

 2005년에 《유민의 땅》을 내놓은 성남훈 님은 1993년에 《꿈꾸는 들녘》을 내놓았고, 1996년에 《소록도》를 내놓았으며, 2000년에 이상엽 님과 함께 《No War No Cry》를 내놓은 다음, 2002년에 《아프가니스탄에 피는 꽃》을 내놓습니다. 2005년에 내놓은 《유민의 땅》은 그동안 일군 사진 열매를 한 자리에 그러모은 작품이라 할 수 있어, 예전 사진책에 실린 사진을 많이 다시 실었습니다. 다만, 《유민의 땅》에 실린 '달동네 아이들' 모습은 따로 묶어 놓은 작품들이 아닌데, 성남훈 님이 당신 나름대로 바라본 낮은자리 달동네 사람들 삶자락을 앞으로도 좀더 꾸준히 담아서 한 자리에 그러모을 수 있으면 좋겠구나 싶습니다. 요즈음에는 '연화지정'이라는 사진감을 잡아서 동티베트땅에서 불교를 배우는 비구니를 사진으로 담고 있습니다.

 

.. 파리로 곧장 가지 못하고, 파리 근교의 지방도시에서 어학원을 다녔습니다. 그곳에서 어학 공부를 하면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특히 이국적인 풍경을 접하면서 순수풍경이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루빨리 파리로 들어가 사진을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서더군요. 점점 마음에서 패션 사진이 떠나고 있었습니다. 파리로 가서는 브레송, 드와노의 사진 같은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도회지풍의 전형적인 프랑스 사진이 마음에 자리잡았습니다 ..  (287쪽)

 

 사진책 《꿈꾸는 들녘》부터 《유민의 땅》까지 두루 살피면, 《소록도》 한 권과 《유민의 땅》에 실린 이 땅에서 떠돌이가 되어야 하는 사람들 삶 몇 칸을 빼놓고, 성남훈 님은 늘 나라밖 떠돌이에 조금 더 눈길을 맞추고 있습니다.

 

 곰곰이 따지면, 나라안 떠돌이보다 나라밖 떠돌이가 더 많습니다. 세계가 한울타리라고 하는 물결에서 나라안팎을 굳이 따지는 일은 덧없습니다. 성남훈 님은 나라밖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떠돌이가 된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아내지만, 이들 떠돌이 발자취는 '우리 나라하고는 아무 끈이 안 닿는' 사람이라 여길 수 없습니다. 지난날 우리 삶이 오늘날 나라밖 떠돌이와 다를 바 없었고, 오늘날 나라밖 떠돌이가 이렇게 살아가게 된 까닭에는 우리 나라 흐름도 알게 모르게 이어져 있습니다.

 

 달동네 사람들은 당신들 스스로 못나거나 게으르거나 잘못했기에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겠습니까. 이리 휩쓸리고 저리 쫓겨나는 까닭이 당신들 스스로 애쓰지 않은 탓이겠습니까. 프랑스 파리 변두리 루마니아 난민은 어쩌다가 제 고향마을이 아닌 파리 변두리에서 목숨줄을 잇고 있습니까. 아프가니스탄과 르완다와 코소보에서 아파하는 사람들은 왜 제 집자리를 잃거나 빼앗기며 서로 총을 들고 싸워야 하겠습니까. 이들이 손에 쥔 무기는 누가 만들었고, 이들이 조용하게 살던 터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우리 나라는 이라크에 군대를 보냈고, 아프가니스탄에 또다시 군대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우리 나라는 무엇을 노리고 나라밖으로 군대를 보내고 있으며, 우리는 우리 나라가 나라밖에 군대를 보내는 일에 얼마나 눈을 두거나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또한, 이 나라 안에는 수없이 많은 전투경찰들이 시내 한복판에서 무기를 갖추어 든 채 한길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 전투경찰은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남녘과 북녘은 수십만 군인을 서로 총부리를 겨눈 채 다툼질을 하도록 부추기는데, 남북녘 젊은이들은 왜 낯모르고 이름모르는 한겨레한테 총부리를 겨누면서 서로를 윽박질러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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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의 땅>에서 즐겁게 바라보는 눈길은 이 눈길대로 잘 살리고, 조금 더 찬찬히 들여다보지 못한 눈길은 다음 사진책에서 슬기롭게 갈고닦아 더 빛을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성남훈/눈빛

<유민의 땅>에서 즐겁게 바라보는 눈길은 이 눈길대로 잘 살리고, 조금 더 찬찬히 들여다보지 못한 눈길은 다음 사진책에서 슬기롭게 갈고닦아 더 빛을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성남훈/눈빛

 

.. 제가 사회에 대한 분명한 철학이나 깊은 성찰을 갖지 못했다는 것을 어떤 사진가의 사진을 보면서 알았습니다. 그 사진가가 암병동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그 사진들을 보면서 '사진도 연극이나 영화처럼 충분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구나'를 깨달았습니다 ..  (288쪽)

 

 성남훈 님 《유민의 땅》은 제 삶터를 잃거나 앗긴 사람들이 어느 땅에 어떻게 서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꾸밈없이 보여주지는 않고 '꾸며진' 대로 보여줍니다. 떠돌이가 된 사람들이 억지스레 꾸미는 삶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떠돌이가 된 사람들을 억누르거나 내쫓거나 들볶으면서 이들한테 '꾸며진' 삶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제 땅을 잃거나 앗겨야 하는 사람들이 낯설고 물선 땅에서 무엇을 꿈으로 삼으며 목숨줄을 이어야 하는가를 갈피 잡기 어려운 삶을 성남훈 님 눈길이 넌지시 곁눈질을 하면서 담아냈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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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훈 님 첫 사진책 <꿈꾸는 들녘>. ⓒ 최종규

성남훈 님 첫 사진책 <꿈꾸는 들녘>. ⓒ 최종규

 떠돌이가 아닌 '떠돌이를 찾아다니는 성남훈' 님입니다. 그래서 성남훈 님 눈길은 곁눈입니다. 그러나, 곁눈이라고 하여 어설피 스쳐 지나가는 눈길이 아닙니다. 함께 살아가는 자리에서 떠돌이하고 똑같은 눈길로 바라보는 눈길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떠돌이하고 똑같은 눈길일 수 없는 성남훈 님 눈길입니다. 성남훈 님 눈길은 곁눈으로 떠돌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왜 이들은 떠돌이가 되어 제 터전이 아닌 자리에서 이와 같이 살아가고 있는지를 지켜봅니다. 그리고, 떠돌이가 된 사람들이 제 삶터가 아닌 데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모습을 깨닫습니다. 떠돌이가 된 사람들한테 눈물도 많으나 웃음도 많고, 고단함과 아픔도 많으나 즐거움과 사랑스러움도 깊음을 배웁니다.

 

 사진기를 들고 단추를 누르는 사람이 더 즐거운 삶일까요? 사진기 앞에 서며 찍히는 사람이 더 즐거운 삶일까요?

 

 어느 쪽이 더 즐거운 삶일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느 쪽이 더 고단한 삶일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저, 둘 모두 아름다운 삶이고, 두 쪽 모두 사랑스러운 목숨입니다.

 

 다큐멘터리라는 틀에 넣는다면 성남훈 님 사진은 틀림없이 다큐사진이라 일컬을 수 있을 텐데, 다큐사진에 이르는 힘은 '가난한 사람들'을 다루었거나 '빼앗긴 사람들'을 살펴보았거나 '떠돌이가 된 사람들'을 찾아나섰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요제프 쿠델카나 세바스티앙 살가도를 다큐사진작가라고 하는데, 이들 또한 다큐사진을 한다고 일컬을 수 있으나, 이들 사진은 다큐사진이라는 틀에 굳이 집어넣어야 할 까닭이 없곤 합니다. 왜냐하면 이들 사진은 그저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사진이 맡은 몫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조용히 이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기 좋게 다큐사진이니 상업사진이니 패션사진이니 보도사진이니 예술사진이니 가르지만, 어느 갈래 어떤 사진이라 하더라도 우리 삶을 내 눈길과 눈높이에 따라서 얼마나 살뜰히 담아서 보여주느냐로 이야기할 일이라고 느낍니다. 사진기를 들기 앞서 내가 생각하는 사진감하고 함께 살아가는 흐름이어야 하고, 사진기 단추를 누르기 앞서 내가 함께 살아가는 님들과 나란히 서 있는 넋이어야 하며, 사진을 종이에 옮길 때에는 누구보다도 내 가슴을 철렁 울리는 발자국이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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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 님하고 함께 낸 사진책. ⓒ 최종규

이상엽 님하고 함께 낸 사진책. ⓒ 최종규

.. 우연히 파리 근교에서 난민 생활을 하는 루마니아 집시들을 보게 되었고, 집시 사진을 찍게 되었죠. 그러면서 주제뿐만 아니라 그런 사진들이 나의 정서와도 일치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방인으로서 프랑스 사회의 주류에서 멀리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 작업이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한 생각을 키우기는 했어도 아직은 공부가 부족해서 집시에 대한 역사적인 맥락보다는 프랑스 안에서의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된 정도였습니다 ..  (288쪽)

 

 사진쟁이 성남훈 님은 오늘 어느 자리에 어떻게 서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성남훈 님은 우리 둘레에서 누가 떠돌이가 되고 있는지를 얼마나 읽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성남훈 님은 떠돌이가 된 사람들을 이 모습으로 내몬 사람이 누구인가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합니다. 성남훈 님은 떠돌이 삶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당신 삶은 어떠한 빛깔과 모습으로 일구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제 사진학과 교수님이 된 성남훈 님은 당신이 처음 사진을 배울 때에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사진을 할 수 있다고 여겼는지 궁금하고, 사진을 가르치는 자리에서 당신 제자한테 '사진하는 마음'을 어떤 눈썰미로 들려주는지 궁금합니다.

 

 아무쪼록 열일곱 해를 이어온 사진 한길을 앞으로도 꿋꿋하게 걸어가시겠지요. 이 사진 한길에서 좀더 많이 흔들리고 더욱 크게 소용돌이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쟁이 성남훈 님은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성남훈'이니, 성남훈 사진을 힘차고 다부지게 이어나가면 좋겠습니다. 다큐사진이든 그냥 '사진'이든 어떤 사진감을 잡느냐보다도 사진으로 무엇을 하느냐를 더 속깊이 들여다보면서 사진을 하는 맛과 멋을 차분하게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은 내가 일구고 있는 삶 그대로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12.27 12:08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유민의 땅 - The Unrooted - 1991-2005, 성남훈 사진집

성남훈 지음,
눈빛, 2005


#성남훈 #사진책 #사진찍기 #사진읽기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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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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