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엔 '3김정치' 비판, 오후엔 JP에 SOS

[取중眞담] 세종시 여론몰이, 한나라당의 '이율배반' 정치공학

등록 2010.01.14 21:32수정 2010.01.14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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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13일 오후 서울 중구 청구동 자택을 방문, 김종필 전 총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한나라당


"과거 정치는 지역감정을 기초로 해서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은밀하게 이를 부추기고 활용함으로써 정치적 이득, 즉 표를 얻는 방식이었다. '3김정치'가 그 전형이었고 피해자는 국민들이었다. 세종시 또한 그 아류정치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한다. 국가백년대계에 대한 고찰 없이 우선 당선되고 보자는 과거형 정치 전략이 빚어낸 잘못된 결과물이었다."

지난 13일 오전 한나라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장광근 사무총장이 열변을 토했다. 세종시를 지역감정을 기초로 한 '3김정치'의 부산물이라고 규정하면서 "세종시 수정안은 잘못된 정치공학적 결과물을 바로잡겠다는 참으로 어려운 정치실험"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정몽준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는 오전 회의석상에서 비판한 '3김정치'의 한 축이었던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를 만나러 갔다. 세종시 여론몰이를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에스오에스(SOS)를 치기 위해서였다.

정 대표는 이 자리에서 "한나라당의 전신이 총재께서 만드신 민자당이니까 도와주셔야 한다"며 거듭 도움을 요청했다.

가려운 곳 제대로 긁어준 JP

JP는 한나라당 지도부의 '러브콜'에 화끈하게 화답했다. 세종시를 추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세종시 수정을 반대하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모두 겨냥해 이렇게 말했다.

"엉뚱한 사람이 일을 저지르고 뒷수습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원안을 지켜야 한다는데 나도 약속을 하면 지켜야 한다고 했었다. 그러나 국가적 차원에서 행정력 분할은 안 된다. 정부가 그 이상 할 수 없는 안을 내놨다."


한나라당 지도부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준 셈이다. 이 발언에 고무됐는지 14일 오전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지도부는 JP의 발언을 크게 소개했다.

정몽준 대표는 JP의 발언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자유선진당이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고 안상수 원내대표는 "김종필 전 총리는 우리나라 총리를 두 번이나 지내고 누구보다 충청도에 대한 애정이 깊으신 분이다. 충청도 출신으로서, 또 국가원로로서 그 말씀을 우리는 깊이 새겨들어야 된다"고 말했다.

전날 '3김정치'를 직접 비판했던 장광근 사무총장도 JP를 "충청권의 큰 어른"이라고 치켜세웠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JP의 발언을 언급하면서 '충청도', '충청권'을 강조한 것은 JP에게 아직 남아있을지 모를 충청도에 대한 영향력을 쥐어짜내기 위한 안간힘으로 비쳤다.

퇴장한 '3김'을 다시 무대에 세우려는 이들

여당 뿐 아니라 정부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9일 '3김' 중 한 명인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나 세종시 수정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다. 정운찬 총리는 지난달 28일, 수정안을 발표하기도 전에 JP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고도 지난 11일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하면서는 "과거의 약속에 조금이라도 정치적 복선이 내재돼 있다면 뒤늦게나마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 나라를 생각하는 지도자의 용기 있는 결단 아니겠느냐"고 역설했다.

문제는 이들의 이율배반이다. 정부와 여당은 세종시가 지역감정에 기댄 '3김정치'의 부산물이라거나 정치적 복선이 내재돼 있다며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여론몰이를 위해 지역주의에 기생했던 노정치인들의 과거 영향력에 목을 매고 있다.

덕분에 역사 속으로 퇴장한 이들을 더 이상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관객들은 뇌졸중 치료를 받고 회복 중인 JP가 올가을에는 골프를 치고 싶어 한다는 시시콜콜한 근황까지 전해 듣게 됐다. 

정부·한나라당의 '이율배반' 정치공학

하지만 관객들은 안다. JP가 자민련 총재로 있던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행정수도 이전을 얼마나 부르짖었는가를. 당시 그는 충청지역을 돌며 "행정수도 이전 완수를 위해서는 자민련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가 필요하다"고 외치고 다녔다.

그래서 관객들은 이렇게 짐작할 수도 있다. 요즘 언론에 오르내리는 JP의 세종시 반대 발언이 그가 더 이상 충청권에서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처지에 있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정부와 여당이 세종시에 대해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치공학이 낳은 나쁜 정책이라는 여론몰이를 할 것이라면 최소한 그 지역주의에 기생했던 정치인들을 이용하려는 이율배반적 정치공학은 포기하는 것이 정도가 아닐까.

자민련 총재 시절 JP 모습. ⓒ 이종호


#세종시 수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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