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은 한자말 덜기 (91) 상태

[우리 말에 마음쓰기 842] '상태가 좋지 않아', '지쳐 있는 상태', '그 상태'

등록 2010.01.20 13:00수정 2010.01.2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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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상태가 좋지 않아

 

.. "난 별로 상태가 좋지 않아. 그러니 그렇게 잡고 흔들지 말아 주렴." ..  <벤슨 뎅,알폰시온 뎅,벤자민 아작/조유진 옮김-잃어버린 소년들>(현암사,2008) 346쪽

 

 '별(別)로'는 '그다지'나 '썩'으로 고쳐 줍니다. '그리'나 '아무래도'나 '어쩐지'로 고쳐써도 됩니다. '오늘은'이나 '요사이'나 '꽤나'로 손질해도 잘 어울립니다.

 

 ┌ 별로 상태가 좋지 않아

 │

 │→ 그다지 몸이 좋지 않아

 │→ 몸이 매우 나빠

 │→ 몸이 무척 힘들어

 │→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

 │→ 몸이 거의 부서질 듯해

 └ …

 

 운동경기를 할 때면, "상태가 좋지 않아서 뛰지 못하는 선수"가 있습니다. "상태가 좋아서 내보내는 선수"도 있습니다. 학교를 다니던 때, "몸 상태가 나쁘면 양호실에 가 있으라"고들 이야기했습니다. "몸 상태가 나아질 때까지 조심해야 한다"는 소리를 곧잘 들었습니다.

 

 ┌ 상태가 좋지 않아서 → 몸이 좋지 않아서

 ├ 상태가 좋아서 → 몸이 좋아서

 ├ 몸 상태가 나쁘면 → 몸이 나쁘면

 └ 몸 상태가 나아질 때까지 → 몸이 나아질 때까지

 

 한 마디 '몸'이면 넉넉할 텐데, 왜 '몸 상태'처럼 말했을까요. 또 이런 말을 들으면서 어이하여 '어딘가 좀 얄딱구리한데?' 하고 느끼지 못했을까요. 이런 말이 얄딱구리한 줄을, 저든 동무든 교사들이든 아무도 못 느끼고 있던 셈일까요. 쓰기에 알맞다고 느끼거나, 쓰기에 괜찮다고 느끼거나, 쓸 만하다고 느끼고 있을는지요.

 

 

ㄴ. 지쳐 있는 상태

 

.. 언니들은, 엄마가 일을 많이 하고 있었고, 지쳐 있는 상태였고, 세 아이를 키우는 데에도 돈이 많이 들어 힘들어 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넷이나 되면 오죽하겠느냐고 대답했어 ..  <리지아 누네스/길우경 옮김-노랑 가방>(민음사,1991) 14쪽

 

 '대답(對答)했어'는 '얘기했어'나 '말했어'로 다듬어 줍니다. '피곤(疲困)해'라 안 하고 '지쳐'라 적은 대목이 반갑고, '양육(養育)하고'라 안 하면서 '키우는'이라 적은 대목이 고맙습니다.

 

 ┌ 지쳐 있는 상태였고 (x)

 ├ 지쳐 있었고 (o)

 ├ 지친 몸이었고 (o)

 ├ 지쳤고 (o)

 └ …

 

 보기글을 살피니, 둘째 글월에서 "지쳐 있는 상태"라고 적습니다. 그러나 첫째 글월과 셋째 글월 들에서는 '상태'라는 낱말을 넣지 않습니다.

 

 ┌ 일을 많이 하고 있었고 (o)

 ├ 일을 많이 한 상태였고 (x)

 │

 ├ 힘들어 하고 있었는데 (o)

 ├ 힘들어 하는 상태였는데 (x)

 │

 ├ 오죽하겠느냐고 (o)

 └ 오죽한 상태이겠느냐고 (x)

 

 보기글 앞과 가운데와 뒤에서 조금씩 다르게 적고 싶었다면, 한자말 '상태'가 아닌 다른 낱말을 여러모로 넣어 줍니다. "엄마가 일을 많이 하고 있었고, 지쳐 있는 데다가, …… 힘들어 하는 판인데, …… 오죽하겠느냐고 했어."처럼. 또는, "엄마가 일을 많이 하고 있었고, 지쳐 있는 몸인데다가, …… 힘들어 하는 가운데, …… 오죽하겠느냐고 말했어."처럼.

 

 

ㄷ. 그 상태를 유지하고자

 

.. 남자들의 정치 사회는 가톨릭교회와 같다. 사내들은 프로 권력가로서, 그 상태를 유지하고자 한다 ..  <우어줄라 쇼이 엮음/전옥례 옮김-여자로 살기, 여성으로 말하기>(현실문화연구,2003) 380쪽

 

 "남자들의 정치 사회"는 "남자들 정치 사회"나 "남자들이 이끄는 정치 사회"로 다듬습니다. "프로(professional) 권력가(權力家)"는 "빼어난 권력가"나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면서"로 손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유지(維持)하고자'는 '지키고자'나 '이어가고자'로 손질합니다.

 

 ┌ 그 상태를 유지하고자

 │

 │→ 그 정치 사회를 이어가고자

 │→ 그대로 이어가고자

 │→ 그 틀대로 지키고자

 │→ 그 모습대로 지키고자

 │→ 그저 그대로 흘러가고자

 └ …

 

 무엇이든지 '가진 쪽'은 '앞으로도 혼자서 가지려는' 마음을 이어나가곤 합니다. 가지지 못한 사람과 나눈다든가, 가지지 못한 사람한테 내어준다는 마음을 거의 못 품습니다. 그저 '가진 사람만 가지고 있을 수 있는 틀거리'를 고스란히 지켜나가려는 마음이기 일쑤입니다. 한 번 손을 놓아 버리면 다시 움켜쥐기 힘들기 때문에, 선뜻 나눔으로 나아가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자리에서도, 좀더 손쉽게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수월하게 글월을 적을 수 있을 텐데, 손쉬운 말과 수월한 글 찾기가 퍽 어렵습니다. 정치도 힘으로, 사회도 힘으로, 말과 글 또한 힘으로 굴러가게 되는가요.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1.20 13:00 ⓒ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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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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