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289) 이율배반적

― '이율배반적으로 보일', '이율배반적인 존재' 다듬기

등록 2010.01.25 17:05수정 2010.01.2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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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이율배반적으로 보일

.. 내 자전거는 보통 자동차 트렁크에 들어가 있다. 자동차와 자전거를 함께 타는 게 이율배반적으로 보일 것 같다 ..  <윤준호,반이정,지음,차우진,임익종,박지훈,서도은,조약골,김하림-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지성사,2009) 150쪽


'보통(普通)'은 '으레'로 다듬고, '트렁크(trunk)'는 '짐칸'으로 다듬습니다. "보일 것 같다"는 "보일 듯하다"로 손봅니다.

 ┌ 이율배반적 : x
 ├ 이율배반(二律背反) : [논리] 서로 모순되어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명제
 │
 ├ 이율배반적으로 보일 것 같다
 │→ 앞뒤가 안 맞는다고 볼 듯하다
 │→ 말과 삶이 다르다고 볼 듯하다
 │→ 서로 안 맞는다고 볼 듯하다
 │→ 사뭇 엇갈린다고 볼 듯하다
 │→ 어울리지 않는다고 볼 듯하다
 └ …

논리학에서 쓴다고 하는 말마디 '이율배반'이란 "두 가지 이야기가 등을 돌리고 있음"을 뜻하는구나 싶습니다. 두 가지 이야기가 등을 돌린다 하면, 서로 안 맞는다는 소리이며, 이는 앞뒤가 어긋난다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말과 몸짓이 다르다든지, 생각과 삶이 다르다든지 하다는 소리입니다. 말과 몸짓이 다르다면 겉만 번지르르한 모습입니다. 생각과 삶이 하나되지 않으면 스스로 입으로만 떠드는 모습입니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이 같은 모습을 두고 얄궂다고 여기고, 어이없다고 생각하며, 얼토당토않은 짓이라 하며 손가락질을 할 만합니다. 입만 살아 있는 놈이라 꾸짖을 테고, 말만 잘한다고 나무랄 테지요.


 ┌ 얄궂다고 볼 듯하다
 ├ 어이없다고 볼 듯하다
 ├ 어처구니없다고 볼 듯하다
 ├ 얼토당토않다고 볼 듯하다
 └ …

우리는 으레 우리네 정치꾼을 꾸짖습니다. 겉으로는 이렇게 할 듯 주절주절 떠들지만, 정작 속으로는 이렇게 할 마음이 하나도 없으니까요. 앞에서는 이처럼 하겠다며 큰소리로 외치지만, 막상 닥치면 몸을 사린다면서 발을 빼 버리니까요.


그런데, 우리 삶터에서 정치꾼만 이렇게 엇갈린 삶자락을 꾸리고 있겠습니까. 쇠밥그릇 소리를 듣는 분들만 이렇게 앞뒤 어긋나는 삶매무새를 간수하고 있겠습니까. 우리들 여느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우리들 여느 사람들은 무슨 마음과 생각으로 어떤 말과 글을 쏟아내고 있는가요.

 ┌ 밥맛이라고 볼 듯하다
 ├ 웃긴다고 볼 듯하다
 ├ 손가락질받을 일일 듯하다
 └ …

안타까운 노릇이지만, 우리 삶터 구석구석 많이 뒤틀려 있습니다. 슬픈 노릇이지만, 우리 터전 곳곳이 많이 비꼬여 있습니다. 사회 틀거리이든 교육 얼거리이든 정치판이든 경제 흐름이든, 알맞고 바르고 튼튼하게 뿌리내리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어느 한 가지를 꼬집기 힘들고, 어느 하나만 살리기 버겁습니다. 그렇다고 끈을 놓거나 손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사회며 정치며 교육이며 문화며 엇박자라 하더라도, 우리 스스로 좀 더 바르고 알맞게 말을 하고 글을 쓰는 매무새를 지켜야지 싶습니다. 내 힘으로 우리 삶터를 뜯어고칠 수 없다지만, 우리 삶터를 뜯어고치려는 뜻보다는 나 스스로 내 삶을 살뜰히 보듬겠다는 마음이라면 넉넉하지 않을까 헤아려 봅니다. 내가 나한테 하는 말, 내가 내 사랑하는 이한테 들려주는 말, 내가 내 가까운 벗과 식구하고 나누는 말을 알차게 어루만지겠다는 뜻이라면 너끈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한꺼번에 즈믄 걸음이 아닌 한 번에 한 걸음씩 걸어 나가면 되리라 봅니다. 하루아침에 이루는 벼락일이 아닌 하루에 한 가지씩 이루는 논일 밭일로 일구어 가면 좋으리라 봅니다.

ㄴ. 이율배반적인 존재

..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면서도, 그런 자신의 출신 자체를 깡그리 다 지워 없애버리고 싶다며 끊임없이 고민하는 청년만큼 이율배반적인 존재는 없을지 모른다 ..  <강상중/이목 옮김-청춘을 읽는다>(돌베개,2009) 6쪽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면서도"는 "어머니한테서 사랑을 듬뿍 받았으면서도"로 다듬고, "자신(自身)의 출신(出身) 자체(自體)를"은 "자신이 어디에서 태어났는가를"이나 "스스로가 어느 나라 사람인가를"로 다듬습니다. '고민(苦悶)하는'은 '아파하는'이나 '괴로워하는'으로 손보고, '청년(靑年)'은 '젊은이'로 손봅니다. '존재(存在)'는 '사람'으로 손질해 줍니다.

 ┌ 이율배반적인 존재는 없을지
 │
 │→ 이율배반을 보여주는 사람은 없을지
 │→ 엉뚱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는 없을지
 │→ 어처구니없는 모습은 없을지
 │→ 터무니없는 모습은 없을지
 └ …

겉 다르고 속 다른 삶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아름답지 않을 뿐더러 반갑지 않고 기쁘지 않으며 웃음뿐 아니라 눈물 또한 없습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삶이라 할 때에는 무슨 보람이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돈을 버는 보람? 이름값 높이는 보람? 권력을 움켜쥐는 보람?

조금 덜 벌더라도 겉과 속이 하나되면서 거리낌이 없는 삶일 때 한결 홀가분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이름값이 없다 할지라도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고 아낄 수 있으면 넉넉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알음알이할 힘이 없고 주먹힘이 세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내 살림을 튼튼하고 알차게 꾸릴 수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1등이 되어야 할 까닭은 따로 없습니다. 2등이 아닌 20등이나 200등이라 할지라도 못날 까닭이 없습니다. 1등이든 꼴등이든 아무런 뜻이 없습니다. 가장 비싼 집이라 해서 가장 살기 좋은 집이겠습니까. 가장 훌륭하다는 책이라 해서 우리 모두한테 가장 넉넉하고 알찬 이야기를 베풀겠습니까. 가장 예쁘다는 얼굴과 몸매라 해서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가장 오래 산다고 해야 가장 멋진 삶이겠습니까.

늘 주고받는 말마디와 글줄은 꼭 아름답지 않아도 됩니다. 반드시 곱고 싱그럽고 알차야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나 스스로 내 삶과 생각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내 모든 사랑과 믿음을 살포시 실을 수 있으면 됩니다. 나와 내 이웃이 살가이 어깨동무하면서 따뜻하게 나눌 수 있으면 됩니다.

껍데기는 대단해 보여도 서로 어긋나는 말이라면 아무런 값이 없다고 느낍니다. 허울은 어마어마하더라도 다 함께 즐길 수 없는 글이란 그다지 뜻이 없다고 느낍니다. 작고 수수하더라도 나란히 어울릴 수 있는 말일 때에 반갑습니다. 낮고 가난하더라도 어깨동무하며 두 손 맞잡을 글일 때에 즐겁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적 #적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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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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