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추적의 명탐정 정약용(9회)

죽은 자도 말한다 <6>

등록 2010.02.02 09:15수정 2010.02.02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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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비는 언제 하산했습니까?"
"닷새인가, 엿새인가···. 대충 그 무렵이었지요. 그런데 무슨 일인지 빈손으로 돌아왔어요. 어찌 탕약을 가져오지 않았느냐 물었지요. 그런데도 웃기만 할 뿐 대답이 없어요. 얼굴 기색이 좋지 않아 더는 묻지 않았습니다."

"그 후 최선비가 산을 내려간 건 언제였습니까?"
"부인의 부음(訃音)을 들은 직후니 한 열흘 쯤 지나서였나요. 가만···."


수명 스님은 찢어진 쥘부채를 집어들었다. 이리 저리 매만지다 부챗살을 단단히 조이는 철끈이 없다는 걸 발견했다. 그것은 삼화루 기녀들이 쓰는 어떤 악기의 쇠줄인데 부채를 만들 때 소용될 것으로 보여 가져갔다는 것이다. 정약용이 부인의 무덤에서 나온 검고 칙칙한 물건을 보여 주었을 때 스님은 질겁하여 소리쳤다.

"이게 왜 시꺼멓게 변색됐습니까?"

스님은 모를 일이라는 듯 몇 번이나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돌아갔다. 흩어졌던 생각들이 몰려들었다. 수명 스님이 돌아간 후 검시기록을 다시 살피고 나서 결론을 내렸다. 오의원을 살해한 범인에 대한 확증은 있었지만 그 전에 한 가지 확인해 둘 게 있었다. 그것은 최 참판 댁 며느리 윤씨의 죽음이 이루어진 과정이었다.

사람의 정신을 미혼시키는 약재가 무엇인가? 의원으로서 쉬 구할 수 있는 약재. 침술의 명인 화타가 사용했다는 마비산(麻痺散)이다. 송화가 의원의 입을 통해 가져온 정보 역시 마비산이었다. 마비산은 여섯 종류의 식물로 조제해 환자를 전신마취 시키는 약재였다. 주성분인 양금화(洋金花)는 '민 독말풀'이다. 삭과(削科)의 꽃을 피우는 이 식물은 조선의 환경에서 탈없이 잘 자랐다. 어느 곳에심어도 스스로 종자를 떨어뜨려 이듬해에 꽃을 피웠다. 일반 사람들이야 이 꽃의 효험을 모르지만 의원인 오태석은 환히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오의원은 어떤 이유로든 최 참판 댁 며느리 윤씨 방에 황촉을 켜게 했을 것이다. 황촉의 심지에 양금화 뿌리 가루를 다량으로 묻혀 혼절시키고 배꼽에 침을 꽂아 절명시킨 후 목 매달았을 것이다.'


그런데 오의원이 죽었다. 그를 죽일 만한 사람은 누군가? 윤씨의 오라비와 남편 최석원뿐이다. 일단 두 사람을 잡아들여 사건 당시의 정황을 들어 볼 생각이었다. 관아의 사령들이 그들의 집으로 출발하려는 데 삼화루에서 일하는 노속(奴屬) 하나가 한 통의 서찰을 디밀었다.

"이걸 정수찬 어른께 드리라 해서 왔습니다."


펼쳐보니 최석원의 서찰이었다. 사건에 대해 알고 싶으면 지금 삼화루로 혼자 오라는 내용이었다. 그곳엔 최석원이 술을 마시며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부인의 무덤이 갈라질 때부터 영원히 묻힐 사건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최석원은 혼자 마시는 술자리였지만 건너편에 빈 잔을 놓아두었었다. 그곳에 술을 따룬 후 다시 자신의 잔에 술을 채워 입안을 적셨다. 정약용도 가볍게 입안을 적신 후 물었다.

"오의원을 오래 전부터 알았습니까?"
"그 자는 중국을 오가는 사람들과 손을 잡고 인삼을 밀반출한 대신 중국 황실에서 은밀히 사용돼 오던 비전 처방을 받아 챙겼습니다. 시생은 그 무렵 오랫동안 기관지에 염증이 있어 오의원의 처방을 받았는데 그것은 탕약이 아니라 말환(蜜丸)이었지요."

그러니까 두 사람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그가 중국의 처방전을 근거로 고관대작들의 시들어진 기력을 회복시켜 인기를 얻으면서 일이 복잡하게 얽힌 것이다. 역시 최석원은 그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정구수 대감은 상감이 즉위한 후 벼슬길에서 쫓겨나 천안으로 낙향했는데 오의원이 그 자의 몸을 치료한 탓에 중앙 요로의 여러 대감들과도 친분을 갖게 됐습니다. 그 자가 어떤 이유인진 모르나 나를 관직에 천거하겠다는 약속을 얻어내자 가만이 있을 수 없어 삼봉산(三峰山) 아래 5백석지기 땅을 바쳤지요. 그런데 오의원 이 자는 정대감의 청상된 딸과 놀아나는 것도 부족해 금기(禁忌)로 알려진 처방의 원칙을 깨뜨려 약재를 과다 복용시킨 탓에 정대감을 죽음으로 몰았습니다."

"그게 오석산(五石散)입니까?"
"그렇습니다."

돌의 화합물인 오석산. 다른 이름으론 한식산(寒息散)이다. 한두 번은 괜찮지만 습관적으로 복용하면 돌이킬 수 없는 화를 초래한다.

중국의 의성(醫聖)으로 불리는 손사막(孫思邈)은 '천 가지 비방'이란 처방집에 오석산을 잘못 복용해 중국 황실이 망했다는 기록을 담고 있다. 중국이 아편으로 망했다기 보다 오석산으로 망한 것으로 분석한 것이다. 이러한 오석산에 의해 정대감이 세상을 떠나자 오의원은 생사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 인해 최석원이 건네 준 삼봉산 아래 5백석지기 옥답이 처방을 잘못한 비용으로 날아가 최석원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가져왔다. 최석원이 그의 목줄을 움켜쥐자 오의원은 자신이 피해나갈 길을 찾기에 여념 없었다.

"이보시게 내가 옥답(沃畓)을 정대감에게 준 것은 그 사람이 선대왕의 총애를 받았기 때문이네. 뒤이어 상감이 보위를 이었지만 조정엔 아직도 정대감을 따르는 자들이 요로(要路)에 웅크리고 있네. 때가 되면 정치일선에 다시 나갈 것이니 날 믿고 몇 해만 기다리면 좋은 길을 열어보겠네."

그러나 좋은 소리가 나올 리 없었다. 당장 갚지 못하겠거든 거처를 용인으로 옮기고 일을 해서라도 갚으라고 다그쳤다.

"내가 얼마나 그 자에 대해 상처가 깊었으면 그런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 자는 평생을 벌어도 내게서 가져간 돈의 이자도 못 낼 정도였어요. 그런데 놈은 수완이 좋았어요. 2년도 못돼 내게서 가져간 옥답의 반절이나 갚더니, 불쑥 공덕암을 찾아와 개성상인이 발행한 어음 한 장을 내미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거 하나면 남은 돈과 이자를 제하고도 남을 만큼 큰 액수였어요. 그날 암자에서 놈이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어떤 독사의 독은 계란의 노른자위로 풀린다'고요."

정약용은 씨익 웃었다. 술 한 모금으로 입안을 헹구고 나서 분위기를 바꾸었다.

"처음부터 부인의 살해범으로 오의원을 의심했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어머니 말씀이 한밤중에 별당에서 소리가 들리고 이른 새벽 그 방에서 사내 나오는 걸 본 사람이 있다 했어요. 반신반의했었지만 그 말은 저도 믿었지요. 그렇다 보니 아내가 목을 매 자진했다는 걸 믿을 수밖에 없었지요. 반 년인가 지났을 때 정향이 방에서 우연히 쥘부채를 발견했습니다. 정수찬께선 이미 아시겠지만 그 부채는 공덕암의 수명 스님이 저의 내자에게 준 것으로 살해되기 전 내가 별당 문 앞에 놓고 온 것입니다. 한밤중 집을 찾아갔으나 장독대에 정화수 떠놓고 오로지 나의 알성급제만을 비는 모습을 보고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그 부채가 정향이 방에 있자 누구거냐 묻자 오의원이 가져온 것이라 하여···, 아내 죽음에 그 자가 개입된 걸 알게 됐습니다."

최석원이 검시기록을 수없이 살폈지만 아내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것만 알아낸다면 아내의 원혼을 달래 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애타는 조바심에 시간만 흐를 뿐이었다. 날마다 술로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다보니 어머니의 간곡한 청이 머리에 들어올 리 만무였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가더니 세 해가 지났다. 이젠 죽은 아내가 가끔 생각날 뿐인데 느닷없이 격쟁(擊錚)이 일어난 것이다. 아내 무덤이 갈라지고 해괴한 물건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정약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의 무덤이 갈라지면서 어찌 살해됐는가를 알았을 것인데 왜 가만 있으셨습니까. 관아에 고변했다면 쉬 끝날 일이 아닙니까?"

"어머니가 개입돼 있었습니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놈은 정대감에게 건넸던 삼봉산(三峰山) 아래 5백석지기 옥답을 나라를 뒤엎을 거사자금으로 몰아가고 어머니와의 불륜을 이마에 붙이고 물고 늘어졌습니다. 놈은 실눈을 뜨고 조소했어요. '네놈이 나를 고변하면 네놈 집안도 끝난다'는 그런 눈빛 말입니다. 그래서 모든 걸 덮어두려 했는데 이젠 어머니를 협박하고 나선 겁니다. 두 사람의 불륜을 비롯해 나의 앞길까지 막겠다는 협박이었으니 그 아득한 절망감에 그 자가 원하는 대로 집안의 전답문서를 내주기로 결정할 밖에요."

벌컥 잔을 비운 최석원이 상대의 잔에 술을 따르더니 마시길 청했다. 그는 반쯤 잔을 비우고 내려놓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자의 집을 찾아가 작설차(雀舌茶)를 마시던 중 양금화(洋金花)를 정제한 가루약을 풀었습니다. 그것은 놈이 내게 준 것이었지요. 토지 문서를 꺼내자 그것을 받으려 반색했지만 놈은 그러질 못 했어요. 사지가 마비되기 시작했으니까요. 놈을 바라보면서 그랬습니다. '네 놈이 우리 집안을 거덜냈으니 내 아내를 죽인 방법으로 너를 죽이겠다' 했더니 놈의 눈은 공포에 휩싸이더군요. 그런 놈의 배꼽 깊숙이 침을 박고 밀납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욕심으로 인한 폐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불급(不及)이 유어태과(猷於太過)'라 했으니, 넘치는 것보다 부족한 것이 낫다는 말이다. 자신의 허물을 뒤로 하고 무리하게 꿈 꾸는 욕심은 결국 자신을 파멸시킨다. 그것이 진리다.

"상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사람이 죽었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소이다. 나라 법은 참으로 지엄하오. 오의원의 죄는 더 없이 간악하나 최선비가 저지른 행위 역시 없어지는 건 아니오. 범인이 누구···인지 알았···다면···."

정약용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상대를 바라보았다. 이미 그의 몸도 마비되는 걸 느낀 것이다. 그는 점점 멀어져 가는 정신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했지만 의식의 끈은 끊어져 버렸다. 그의 얼굴이 앞에 놓인 술상에 엎어지는 소리를 꿈길처럼 들었을 뿐이다.

정신이 든 것은 이틀이 지나서였다. 머릿골을 울리며 뜨거운 열기가 몰아치자 두어 번 가로저으며 한숨을 몰아쉬었다. 누군가 그의 입에 물 대접을 들이댔다. 두어 모금 마시고 밀어내자 낯익은 목소리가 다가왔다. 송화였다.

"나으리, 큰일 날 뻔 했어요. 그 사람이 떠나면서 서찰을 남겼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큰 화를 당할 뻔 했어요. 참, 최선비 집은 몽땅 타버렸어요. 내당 마님은 목을 매단 채 발견됐구요."

"최선비···는?"

"모르죠.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 분이 떠나면서 한 통의 서찰을 용인 관아에 보냈거든요. 그게 아니었으면 수찬 나으린, 약물에 중독돼 회생하질 못했을 거예요."

송화가 머리맡에 놓인 종이를 집어 정악용의 눈 가까이 들이댔다. 거기엔 둥그런 연판장을 탁본한 먹물 묻힌 종이에 일필휘지의 글 솜씨로 끼적여 있었다.

'어떤 독사의 독은 계란의 노른자위로 풀린다'
#추리, 명탐정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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