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찢고 자기 사진 찢는 어머니

치매는 우연히 찾아오는 불청객이 아닐 수도...

등록 2010.02.02 18:32수정 2010.02.0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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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눈에 돈이 보이면 갈갈이 아주 잔인할 정도로 찢어놓곤 하신다. 집에 돈이 많지는 않다. 많지는 않지만 가끔 방바닥에 돈이 뒹굴 때가 있다. 밖에서 돈과 관련된 어떤 일을 하고 들어왔을 때나, 빨래를 한다고 주머니를 털어놓았을 때,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돈을 방바닥에 던져놓곤 한다. 그렇게 던져놓은 채로 깜빡 잊어버린다.


사람은 모름지기 돈을 사랑해야 한다는데, 나는 아무래도 돈을 그리 깊이 사랑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던져놓은 채로 깜빡 잊었던 돈을 다시 생각해 내는 것은 대개 던져놓은 그 돈을 방 안 어디에서 발견했을 때거나, 며칠이나 지나서 그 돈을 써야 할 일이 생겼을 때, 방구석이나 혹은 화장실 수채 구멍에 찢어진 채로 뒹구는 돈 조각을 발견했을 때이다.

"엄마 또 돈 찢었구나? 왜 이걸 자꾸 찢어. 미치겠네 정말로."
"믓어얼. 나 안 찢었어어."
"엄마가 아니면, 그럼 뭐, 귀신이 왔다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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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이렇게 찢고 구겨서 버리는 어머니의 심층심리를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돈이 원수라는, 그래서 그러시나, 하는 추측이나 해볼 뿐. ⓒ 김수복


사실은 나도 어머니가 돈을 찢어서 버렸다는 증거를 갖고 있지는 못하다. 한 번도 내 눈으로 목격한 적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어머니 외에 달리 사람이 집에 있지 않고 보니 나로서는 부득이 어머니를 '범인'으로 지목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내 손으로 찢은 것은 아니니까.

한동안은 그저 뭐 그런 것이려니,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할 과정이려니 여기고 말았었다. 아이들이 값비싼 그림책을 찢어 딱지를 만들 듯이, 돈을 모르는 젖먹이 꼬마들이 손에 잡혔으니까 먹을 것이라 여기고 입안에 집어넣듯이, 치매 상태의 어머니도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눈에 띄니까, 돈이 손에 잡히니까 당신 나름의 어떤 놀이를 하시는 거려니 여기고 가능한 한 돈을 방에 던져두지 않으려고나 애를 썼다.

아무리 맞춰보려 해도 맞지 않는 돈 조각


그런데 아무리 추리를 해봐도 풀리지 않는 대목이 하나 있었다. 찢어진 채로 버려진 돈 조각을 하나하나 주워서 이리 맞춰보고 저리 맞춰보고 아무리 맞춰봐도 짝이 안 맞는 것이었다. 적어도 삼분의 일 이상, 어떤 때는 절반 이상이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나머지 돈 조각을 어머니가 먹을 것으로 알고 잡수신 것인지, 화장실 수채 구멍을 따라서 흘러가 버린 것인지, 아직도 이 문제는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지만, 어쨌든 이즈음에 이르러서야 겨우 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돈을 찢는 것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우발적인 사건이 아닐 것이라는, 무엇인가 연속성이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근거가 없는 상상은 아니었다. 어머니에게는 이미 전력이 있었다.


어머니의 기억력이 아직 총명하던 시절, 그러니까 복분자 열매를 수확한다든가 하는 정도의 노동은 할 수 있었던 독거노인 시절의 일이었다. 혼자 사는 큰아들은 아들도 아니라고, 꼴도 보기 싫다고 외면하곤 하는 어머니를 한 달여 만에 찾아갔는데 밖에서 무엇인가를 태우고 있었다. 마당에 들어서기도 전에 목이 컬컬하고 재채기가 나올 정도로 지독한 악취를 풍기며 사진들이 불에 타고 있었다. 사진들은 이미 갈갈이 찢어져 있었고, 커다란 바구니로 한가득이나 되었다.

"뭐야, 이거? 뭐하는 거예요, 지금?"
"꼴 보기 싫응게. 미워서."
"꼴 보기 싫다니, 무슨 소리예요?"
"내가, 내가 눈도 안 이쁘고 꼴보기 싫어서."

어머니는 계면쩍다는 표정으로 잠깐 하늘을 보다가 외면하고 돌아섰다. 찢어진 채로 바구니에 들어 있는 사진들은 모두 어머니 당신 것이었다. 어디 소풍을 가서 단체로 찍었거나 둘이 찍었거나, 셋이 찍었거나 넷이 찍었거나 하나같이 어머니가 함께 찍은 사진들이었다. 그 중에는 물론 가족사진도 있었고, 자식들과 함께 혹은 손자들과 함께 찍은 것도 있었다.

자신의 얼굴이 보기 싫다며 사진을 태워버린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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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주민등록증을 꺾고 태우는 것으로써 당신의 존재 자체를 없었던 일로 돌리고 싶어 하셨던 것일까. 그러나 말이 없으니 다만 추측이나 할 뿐이다. ⓒ 김수복


그 모든 사진 속 어머니의 얼굴은 외모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짓이겨졌거나 어머니를 중심으로 찢어져 있었다. 짐작컨대 어머니는 꽤 여러 날에 걸쳐 사진을 골라내고 당신의 얼굴을 손톱으로 짓이겨대다가 결국은 짝짝 찢어내고, 그래도 뭔가가 마땅치 않아 마침내는 태워버리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사진뿐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 딱딱하고 단단한 주민등록마저도 꺾여져 있었다. 주민등록증은 코팅이 되어 있어서 찢어지지 않으니까 꺾다가 어느 순간 포기하고 그냥 태우기로 한 것 같았다.

꺾여진 주민등록증을 보는 내 가슴이 후둑후둑 뛰고, 손은 덜덜 떨리고, 다리는 마구 후들거렸다. 뭐라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벌써 방으로 숨듯이 들어가 버린 어머니의 뒤를 따라 마루에 앉았는데 후들거리던 가슴이 이번에는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싸늘하게 얼어붙는다는 느낌이었다.

벌써, 벌써 어머니는 이렇게 죽을 준비를 하신단 말인가? 그때 든 생각이 그것이었다. 코끼리가 죽을 때를 알고 스스로 '그곳'을 찾아가듯이, 우리 어머니가 벌써 그때가 되어 저러시나, 싶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어머니는 죽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으로 당신의 얼굴 사진을 찢고, 찢은 것만으로는 모자라서 아예 태우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에미가, 에미 노릇도 못하믄 그것이 먼 에미여. 그렁게, 그리서, 꼴 보기 싫응게, 꼴 보기 싫은 것을 곁에 두고 있으믄 꿈자리도 사납고…."

묻고, 또 묻고, 이런 방식 저런 방식 온갖 방식으로 묻고 또 묻기를 되풀이해서 얻어낸 어머니의 답변이 그것이었다. 그 말씀 앞에서 나는 아무 할 말이 없었다. 내가 가령 좀 더 잔정이 많은 딸 같은 존재였다면 그 순간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눈물이라도 몇 바가지 쏟았을 테지만, 나는 이미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울지 않는, 울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담금질해 온 사내 녀석일 뿐이었다. 하긴 운다 해도 어머니의 가슴에 박혀버린 어떤 것을 녹여낼 수는 없었으리라.

늦둥이로 얻은 막내아들 등록금만은 당신이 해결하겠다고 생각한 어머니였다. 그러나 막내는 결국 대학을 중도에서 포기하고 군대로 가서 직업군인을 선택했다. 이만 삼천원 품삯 일이 한 달 내내 있는 것도 아니고 잘해야 보름 남짓이었다. 그것을 한푼도 안 쓰고 모은다 해도 일 년 등록금은커녕 한 학기도 견뎌내기 어려웠다.

그런데다 집안의 대들보라고 여겨온 큰아들은 '이것도 저것도 아무것도 아닌 반거충이가 되어 여기저기 쏘다니고나 있'고, 도시에서 자리를 잡았다 싶었던 아들 하나는 카드빚에 몰려 이혼을 합네 어쩌네 날마다 간 떨어지는 노래를 불러대고, 그나마 유일하게 비닐하우스 농사로 사장 소리를 듣던 셋째 아들은 기름값 인상과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빚더미에 올라 버렸고, 고명처럼 하나 있는 '딸년'은 마누라 노릇을 어떻게 잘못 하는 것인지 날마다 얻어터지기를 취미처럼 하다가 종당에는 새끼들마저 팽개치고 집을 뛰쳐나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소식마저 끊겨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머니로서는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오직 절망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기는 했다. 그래서 당신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고 싶어진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하루 이틀 사이에 터진 벼락같은 일도 아닌데 왜 갑자기? 이런 의문이 든 것은 그 뒤로도 며칠이나 지나서였다.

치매, 자녀들의 막말에 못이겨 선택하는 장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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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당신의 소원이었을지도 모르는, 자식들을 거의 알아보지 못하게 되어버린 어머니. ⓒ 김수복


열흘쯤 지난 뒤에 다시 어머니를 찾아갔다가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흐느낌 소리를 들었다. 어머니 혼자가 아니었다. 당숙모가 와 계셨다. 당숙모는 어머니를 꾸짖듯이 달래는 중이었고, 어머니는 그런 소리 듣기도 싫다는 듯 "아따 성님도 참, 속 편한 소리 그만 하시랑게요." 콧물을 훌쩍이며 목에서 금방 핏물이라도 넘어올 듯이 흐느끼는 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이게 뭔가. 뭔가? 금방이라도 방문을 열고 뛰어들 것 같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내 몸은 얼어붙은 듯이 꼼짝을 못하고 있었다. 늙으신 어머니의 울음소리는, 보라는 듯이 들으라는 듯이 소리를 지르는 울음도 아니고 울음을 참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참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서러워지는 그 흐느낌 소리는 내게 아무런 짓도 말라는 경고처럼 들렸다. 토방에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서 엿듣다가 슬그머니 빠져나가라는 호소처럼 들렸다.

돌아오는 길에 상황을 정리해 보니 아마 아들 내외가 어머니 앞에서 부부싸움을 했던 모양이었다. 싸우는 도중 며느리의 입에서 무슨 말인가가 나왔는데 그 말이 한 달, 두 달이 지나도록 잊혀지지 않고 머릿속에 송곳처럼 남아서 가슴을 벌렁벌렁거리게 한다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만일 오 년만 젊었어도, 재산이 조금만 있었어도 그런 정도의 이야기쯤 흘러가는 물처럼 보내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당신이 임의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고 보니 설움만 자꾸 증폭되는 것 같았다.

어쨌든 착잡했다. 착잡한 마음으로 아우 내외를 찾아가서 무엇이든 훈수를 좀 하고 싶었다. 부부싸움이든 뭐든 싸움이란 어떤 경우에든 하다 보면 흥분하기 마련이고, 흥분하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게 되는 막말을 자신도 모르게 쏟아내기 마련이다. 그러니 아예 어머니 앞에서는 부부싸움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싸울 일이 있다면 둘이서 남몰래 싸워라, 등등 이런 훈수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런 말을 하게 되면 다른 오해가 생길 것 같아서 할 수가 없었다. 이를테면 어머니가 자기들의 흠을 잡아서 큰아들에게 일러바치고 있다는, 여태 그래 왔었다는 오해가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생각다 못해 편지로라도 내 생각을 전할까 했지만 그것 또한 쉽지가 않았다. 편지로 하나 직접 만나서 하나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어쨌든 내정간섭으로 비쳐질 터이었다. 이제 상황이 모두 종료된 지금, 어머니가 기억을 거의 상실해 버린 오늘 내가 새삼스럽게 편지를 쓴다면 아마 이런 내용이 될 것이다.

'어머니는 당신이 자식들을 위해서 더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서부터 귀를 막고 싶어 하셨습니다. 눈을 가리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러나 들리고 보이는 것을 어떻게 해볼 수는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차츰 귀를 도려내고 싶어 하셨습니다. 눈알을 빼서 버리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일 뿐 실천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생각만 잔뜩 있을 뿐인 당신의 머릿속이 어머니는 원망스러웠습니다. 저주스러웠습니다. 아아 이놈의 생각, 이놈의 생각을 어찌하나. 어머니는 차츰 생각을 안 하려고 하셨습니다. 했던 생각도 버리고자 하셨습니다. 당신이 이날까지 살아온 생애 전체를 어머니는 그렇게 없었던 일로 되돌리고자 하셨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요. 바라고 또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요. 마침내 어머니의 생애는, 태어나서 오늘까지 걸어온 발자국은 하나씩 둘씩 지워져 갔습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들이, 자식들이 서로 제가 잘났다고 떠들어대던 그 무시무시한 목소리들이 사라져 갔습니다. 어머니의 기억들은 그렇게 허공중에 흩어지는 먼지처럼 사라져 갔습니다.

병원에서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어쩌면 자발적으로 기억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는 어머니의 상태를 중증치매라는 이름으로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치매라는 것은 어느 날 우연히 찾아오는 불청객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은 가족들이, 자식들이 오래 전부터 보여 온 불화와 막말을 더 이상은 감당하기 어렵다 싶어질 때 당신 스스로 선택해서 숨어 버리는 거대한 장막인지도 모릅니다.' 
#치매의 원인 #자발적 치매 #부부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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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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