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모 이사장고인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준희
이 준비위원회는 이후에 세계거석문화협회로 발전한다. 거석문화의 대표적인 유물인 고인돌이 우리나라에 가장 많고 다양하게 분포해있는 만큼, 우리나라에서 세계거석문화협회를 만드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세계거석문화협회를 만든 이후에는 여러 나라에서 관련 전문가들을 불러들였다. 일본, 인도네시아, 프랑스, 인도 등. 전문가들을 모아서 일년에 한 번씩 심포지엄을 가졌다. 한 번은 우리나라에서 한 번은 다른 나라에서,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그런 준비과정을 거쳐서 1999년, 고인돌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신청을 유네스코에 했다. 우리나라 문화재청에서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 신청하고, 한국위원회에서 유네스코 본부로 보내는 방식으로 신청이 이루어진다. 등재여부가 결정되는 세계유산위원회, WHC(World Heritage Committee)는 유네스코 내부에 속해있다.
신청이 접수된 이후에 유네스코에서는 관련 조사관을 한국으로 파견했다. 일본에서 한국고고학을 전공한 니시타니 교수가 오고, 프랑스에서는 거석문화 전문가인 장 피에르 모앙 박사가 와서 한국의 고인돌을 조사해보고 돌아갔다. 그리고 세계유산위원회 회의가 2000년 6월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렸다. 김 이사장도 긴장된 마음으로 이 회의에 참가했다.
"회의장에서 또 가슴이 철렁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회의 사회자가 영국의 제프리 루이스라는 고고학자인데 이 사람이 우리 고인돌 자료를 소개하면서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돌덩어리가 모여있을 뿐인데, 어떻게 세계유산이 될 수 있나?' 그리고나서 사회자가 다음처럼 부연설명을 하는 거예요. '조사를 담당한 니시타니 교수의 보고서 내용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을만큼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선사시대 기념물이라고 한다. 그러니 반대의견있으면 토론해보자.'"얼마 안 되는 그 시간 동안 김 이사장의 심정도 조마조마했을 것이다. 등재를 신청한 당사국에게는 발언권이 없다. 그러니 반대의견이 나오면 어떻게 해야할까. 여기서 한국의 손을 들어주는 발언이 다른 고고학자에게서 나온다.
"멕시코 마야 잉카문명을 전공한 여성 고고학자가 있었는데, 그 학자가 손을 들고 말하는 겁니다. '니시타니 교수가 권위있는 학자인데, 그 학자의 의견에 반대할 사람이 어디 있냐. 세계유산으로 등재해두고 앞으로 어떻게 유지 관리하는지 우리가 지켜봐야지, 전문가의 의견에 반대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편을 들어주는 거예요. 등재가 된 거지요."이 회의에서는 고인돌 다음 안건으로 티벳 라싸의 포탈라 궁전, 일본의 오키나와 성이 차례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 고인돌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경주역사유적지구도 이 회의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사적인 자리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3년 만에 결실을 보게된 것이다.
한반도에 고인돌문화가 전해진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