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언어적 자산
.. 우리가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써 온 탯말의 가치를 복원하고, 또한 전통문화의 귀한 언어적 자산이며,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어 온 영혼의 말이라는 인식 하에서 .. <한새암,최병두,조희범,박원석,문틈-전라도 우리 탯말>(소금나무,2006) 5쪽
"수백 년(年), 수천 년(年)"은 "수백 해, 수천 해"로 다듬어 봅니다. "탯말의 가치(價値)를 복원(復元)하고"는 "탯말 값어치를 되살리고"나 "탯말에 담긴 뜻을 되살리고"로 손보고, "전통문화의 귀(貴)한 언어적 자산(資産)이며"는 "전통문화에서 보배와 같은 말이며"로 손보며, "우리의 정체성(正體性)"은 "우리 뿌리"나 "우리 밑바탕"으로 손봅니다. "영혼(靈魂)이 말이라는 인식(認識) 하(下)에서"는 "넋이 담긴 말이라는 생각을 하며"나 "얼을 담은 말임을 생각하며"로 손질해 줍니다.
┌ 언어적(言語的) : 말로 하는
│ - 언어적 능력 / 언어적 상호 작용 / 언어적 표현 / 언어적인 유희 /
│ 언어적인 기법 /
│ 이민을 간 사람들은 대체로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 언어(言語) : 생각, 느낌 따위를 나타내거나 전달하는 데에 쓰는 음성,
│ 문자 따위의 수단
│ - 언어 감각/언어 구사/언어 습관/언어 규범
│
├ 전통문화의 귀한 언어적 자산이며
│→ 전통문화에서 보배와 같은 말이며
│→ 전통문화를 빛내는 훌륭한 말이며
│→ 전통문화를 이루어 온 아름다운 말이며
└ …
보기글은 너무 어렵게 비비 꼬지 않았나 싶습니다. 있는 그대로 썼다면 그지없이 좋았을 테고, 좀더 손쉽게 쓴다면 한결 좋을 텐데요. 글을 쓰는 사람은 당신만 아는 글줄로 이야기를 풀어내기보다는 읽는 사람을 헤아려 주면 좋겠습니다. 말을 하는 사람은 당신만 아는 말마디로 이야기를 펼치기보다는 듣는 사람을 살펴 주면 좋겠습니다.
이 보기글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고장말이나 사투리라고 할 '탯말'이 얼마나 뜻이 깊고 알차고 훌륭한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치를 복원한다"고 하면서 제대로 값어치를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털어내고 제값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답니다. 그러니까 제뜻을 살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탯말이란 지식인들이 읊조리던 말이 아니라 여느 농사꾼들이 제 고장에서 서로서로 살가이 나누던 말입니다. 그러니까 탯말을 써 오던 옛 문화란 여느 사람들 수수한 삶이 바로 아름다운 문화유산이라는 이야기요, 이 느낌 그대로 "아름다운 말 문화"나 "훌륭한 말 문화"나 "거룩한 말 문화"를 살찌우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리하여 우리 넋과 얼을 이루는 밑줄기나 뼈대나 밑바탕이나 뿌리가 된다고 하는 탯말이라 하겠지요.
탯말은 '언어'가 아닌 '말'이니, 이 모습 그대로 "언어적 자산"이라고 가리킬 까닭이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배 같은 말"이라 하면 됩니다. "아름다운 말"이라 해도 되고, "훌륭한 말"이나 "고마운 말"이나 "참 좋은 말"이라 하면 돼요.
그런데 말을 다루는 학자를 일컬어 왜 '말학자'라 하는 법이 없이 모조리 '언어학자'라고만 할까 궁금합니다. 말을 가르치고 배우는 대학교 학과 이름은 왜 '말과'나 '말글과'가 아닌 '언어학과'이기만 해야 할까 궁금합니다. 말을 다루는 이야기를 놓고 '말이야기'라 하는 일은 없고 오로지 '언어론'이라고만 합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언어적 상호 작용"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같은 말을 읊고 있습니다. 말이 서로한테 무엇을 불러일으키기에 "언어적 상호 작용"이라고 이야기를 하는지요. 말과 문화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서 왜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이야기를 하는가요.
┌ 언어적 능력 → 말힘 / 말재주 / 말솜씨
├ 언어적 표현 → 말로 나타냄 / 말로 하기
├ 언어적인 유희 → 말놀이
└ 언어적인 기법 → 말 기법 / 말법 / 말놀림법
보기글을 통째로 손질해서 "우리가 오랫동안 써 온 탯말에 담긴 뜻을 살리고, 또한 우리 문화에 보배와 같은 말이며, 우리 뿌리를 이루어 온 얼이 스민 말이라는 생각으로"쯤으로 다시 적어 봅니다. 말을 말로 여길 수 있는 우리 삶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꿈꾸고, 글을 글로 받아들이는 우리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언어적인 기법"을 "말 기법"이라 고쳐쓰기는 어렵겠으나'말법'이나 '말하는 법'이나 '말을 다루는 법' 같은 여러 가지를 돌아보면서 차츰차츰 말길을 풀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어적 표현"이란 곰곰이 따지고 보면 '말투'나 '말씨'나 '말결'이나 '말씀씀이'를 가리키지 않나 싶습니다. 말치레와 말꾸밈에 매이기보다 말사랑과 말믿음으로 우리 생각과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안으면 좋겠습니다.
ㄴ. 언어적인 수단
.. 언어를 초월한 소통이지요. 언어적인 수단을 사용하면서요 .. <박태희 옮김-필립 퍼키스와의 대화>(안목,2009) 38쪽
"언어(言語)를 초월(超越)한 소통(疏通)이지요"는 "말을 뛰어넘는 소통이지요"나 "말을 뛰어넘는 이야기이지요"나 "말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요"나 "말로 할 수 없는 이야기까지 나누고 있지요"로 손질해 봅니다. 이렇게만 적어 놓으면 어느 쪽으로 어떤 이야기를 펼치려 했는지를 알기가 몹시 힘듭니다. 뜻과 느낌을 제대로 살려서 알맞고 올바르게 나타내야겠습니다. '사용(使用)하면서요'는 '쓰면서요'로 다듬거나 앞말과 이어 "수단으로요"로 다듬어 줍니다.
┌ 언어적인 수단을 사용하면서요
│
│→ 말이라는 수단을 쓰면서요
│→ 말이라는 수단으로요
│→ 말로 하면서요
│→ 말로 이루어지면서요
│→ 말로 나누면서요
└ …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면서, 사진은 '말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말이라는 수단을 쓰면서 나눈다'고 서로서로 생각을 주고받는 대목입니다. '말로 하는 생각 나눔'이 아닌 '말이라는 수단을 사용하는 소통'이라고 해도 좀처럼 알아듣기 어렵습니다만, 아예 '언어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소통'이라고 하면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겠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저 같은 사람이나 알아듣지 못하겠다고 느끼리라 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야 비로소 알아듣고,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외려 알쏭달쏭하게 여기리라 봅니다. 저는 검정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며 '검정' 옷을 입었다고 말하지만, 검정 옷을 입은 분은 '블랙' 쟈킷이니 셔츠니 스커트니 스웨터니 하고 말을 합니다. 저는 참 '기쁜' 소식이 있다고 말하지만, 거의 모든 분들은 '희'소식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저는 제가 사는 동네에 생긴 조그마한 책쉼터를 가리켜 '동네책쉼터'라는 이름을 붙여 가리키지만, 문화예술을 한다는 분들이나 지식인이나 기자는 모두 '다원문화공간'이라고 말을 합니다. 저는 '환경사랑'이나 '자연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생태환경 일을 하는 분들은 하루가 다르게 '에코'라는 말만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녹색'이라는 일본 한자말조차 잘 안 씁니다. '에코스러운' 일을 벌이고 '에코페미니즘'을 외치기까지 합니다.
모두 똑같이 이 땅에서 어울리는 사람들이지만, 이 땅에 걸맞을 말이 무엇인가를 나누기란 더없이 힘듭니다. 다들 한결같이 이 땅에 서 있는 사람들이지만, 이 땅에 알맞을 말이 어떠하면 좋은가를 주고받기란 그지없이 어렵습니다.
우리 삶터 흐름을 돌아본다면 저 같은 어리보기가 두 손을 들고 영어 물결에 휩쓸려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삶자락 매무새를 헤아린다면 저 같은 바보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지식자랑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려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2.17 17:43 | ⓒ 2010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