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지인이 설친다' 생각 바꿔야 지역의 미래

[바이크올레꾼 길 따라 남도마을여행 29] 태백산맥문학관 무료관람이 남긴 것

등록 2010.03.15 10:30수정 2010.03.1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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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군 벌교읍 회정리에 있는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 서정일

보성군 벌교읍 회정리에 있는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 서정일

'큰 나무는 10미터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늘을 제공해 주고 큰 사람은 10리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보성군 벌교읍에 있는 소설 <태백산맥문학관>은 큰 나무요 조정래는 큰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소설가 조정래가 제주에 살았었고 제주 4·3사건을 주제로 소설 <태백산맥>을 썼다면 내 세울 것이 부족한 벌교는 인근지역에 묻히고 차여 이미 몰락한 고장이 됐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벌교에서는 주먹자랑 하지 말라'는 부정적 이미지까지 합세하면 독자존립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모 개그프로그램에서 "오늘도 내가 봉숭아학당 살렸다"라고 하는 우스갯소리처럼 태백산맥문학관과 소설가 조정래는 '오늘도 내가 벌교 살렸다'라고 말하면서 퇴장해도 이견을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소설 <태백산맥>과 소설가 조정래가 전국에 '벌교'라는 브랜드를 크게 세워놓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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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태백산맥문학관 내부 ⓒ 서정일

조정래 태백산맥문학관 내부 ⓒ 서정일

그런데 좀 엄격히 잣대를 들이대보면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면서 벌교만이 수난의 거점도시가 되고 고초를 당한 것은 아니다. 인천, 군산, 목포 등 전국적으로도 여러 곳이 된다. 동학혁명이나 농민운동도 전라도 곳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났고 보성, 심지어 가까운 낙안이 벌교보다 심했을지도 모른다.

 

중심소재인 여순사건도 출발지가 벌교가 아닌 여수이며 중간지점인 순천도 장대다리 부근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수많은 사상자가 났는데도 사람들은 순천 장대다리 보다 벌교 소화다리를 더 많이 기억한다. 꼬막도 순천이나 고흥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지역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소설 <태백산맥>에서는 중심지가 '벌교'다. 계급간의 갈등이 용광로처럼 들끓고 억압과 수탈의 고통이 뼈마디까지 스며들며 새로운 이상향을 찾아 재를 넘는 개혁의 중심체로 그것에 알싸하고 비릿하고 쫄깃한 꼬막마저도 벌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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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태백산맥문학관 내부에서 필자, 뒤로 조정래씨의 브로마이드가 보인다 ⓒ 서정일

조정래 태백산맥문학관 내부에서 필자, 뒤로 조정래씨의 브로마이드가 보인다 ⓒ 서정일

왜 상처가 훨씬 깊을 수도 있고 갈등이 심했을지 모르는 지역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벌교를 중심점으로 잡아 소설을 풀어나간 것일까? 그것은 소설가 조정래가 어릴 적 2년여 벌교에서 살았고 당시 피부에 와 닿았던 아픔과 매서움이 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역시 조정래의 벌교 사랑이다.

 

그 지역사랑이 배어있는 소설과 소설가가 자칫 붕괴될지도 모를 벌교를 일으켜 세우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그로인해 벌교민 모두가 그 혜택을 입고 그 그늘아래서 쉬고 있다. 한 사람이 10리 안에 있는 사람들을 먹여 살렸고 한 나무가 10미터의 그늘을 만들어 지친 사람들의 휴식처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던 것이 몹시 씁쓸하다. 한마디로 '외지인이 설친다'는 시골만의 뒷소리가 있었다는 것에 묘한 감정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귀농한 사람들이 이구동성 현지인들의 텃새를 어렵다고 말하는 것처럼 소설가 조정래도 소설 <태백산맥>이 이적성 논란이 있을 때 그 시작점이 벌교며 먼저 꼬투리를 잡은 사람들이 벌교민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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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태백산맥문학관 내부 ⓒ 서정일

조정래 태백산맥문학관 내부 ⓒ 서정일

여느 귀농인들처럼 소설가 조정래 자신도 어릴 적 살던 곳을 돌아보면서 글로 밭을 일궜을 것이다. 그 열매가 이 지역과 지역민의 아픔을 달래기 위함이었겠지만 의미가 승화돼 지역의 미래를 밝게 밝혀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작가의 작은 바람처럼 소설 <태백산맥>은 벌교를 전국에 알리는 계기가 됐고, 쓰러져가던 벌교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지역경제가 되살아나 주민들이 그 혜택을 입고 벌교를 화색이 도는 곳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물론 대 작품인 소설 <태백산맥>이 이런 것이 끝이나 목적이겠는가마는 지역이나 지역민에게는 가장 큰 가치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지난 3월 11일, 보성군 벌교읍 회정리의 태백산맥문학관이 무료로 전환됐다. 이유야 어찌됐든 반가운 소식이며 이제는 누구나 자유롭게 찾아가 앉아 쉬면서 조정래의 생각을 보고 읽고 느껴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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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문학관은 3월 11일부터 무료개관됐다. ⓒ 서정일

태백산맥문학관은 3월 11일부터 무료개관됐다. ⓒ 서정일

그동안 소설가 조정래가 10리 안에 있는 벌교민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큰 인물'이었던 것에 반해 관람료라는 빗장으로 문을 걸어놓은 문학관은 누구나 그 그늘 아래서 쉴 수 있는 '큰 나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기에 이번 조치가 반갑기만 하다.

 

전라남도 동남부 갯가마을 벌교. 아직도 '외지인이 설친다'고 뒷말하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무료개방 조치로 큰 인물에 큰 나무까지 갖췄으니 가꾸고 보살펴야 하는 것은 벌교민들 자신들의 몫임은 기억해야 하고 전국의 문학관들이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마당에 각별한 의지를 발휘해야 할 듯하다. 행여 잘 못되면 이제는 '현지인들이 그러면 그렇지'라는 역풍으로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2010.03.15 10:30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바이크올레꾼 #조정래 #태백산맥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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