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꾸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한판 승부

[역사소설 민회빈강9] 물줄기를 돌려라

등록 2010.03.25 14:45수정 2010.03.25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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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상. 차기 구도를 놓고 바꾸려는 임금과 지키려는 신하 사이에 한판 승부가 벌어졌다. ⓒ 이정근


"이 일은 오로지 영상에게 달려 있으니 경이 결단하라."

임금의 시선이 영의정 김류에게 꽂혔다.


"신이 비록 수상의 자리에 있으나 어찌 혼자 결단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종사의 존망이 이 일에서 결판난다면 뭇 신하들 가운데 감히 다르게 의논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일이 국가존망에 관계된다고 볼 수 없는데도 비상조치를 행하려고 하시니 이것이 바로 신들이 함부로 의논하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천자의 명으로 제후가 된 아들을 바꾸지 말라는 것이 법입니다."
이조판서 이경석이 원칙론을 강조했다.

"서생의 소견은 상도(常道)만을 지킬 뿐이니 어찌 임기응변을 알겠습니까."
예조판서 이식이 동조했다.

"서생이 평소에 글을 읽었어도 때에 맞추어 쓰는 도리를 모른다면 비록 머리속에 시서(詩書)가 들어 있은들 어디에 쓰겠는가? 오늘날 임금을 정하는 계책이 소인배들의 권모술수와 같은 것이겠는가?"
임금이 노기를 드러냈다.

상식을 벗어나면 국가가 편안하지 못할 것입니다


"상도만 지키다가는 종사가 반드시 위태롭게 되고 권도(權道)를 행하여야 국가가 편안해질 수 있다면 이 거조가 불가하지 않겠으나 신의 생각에는 상도를 지키지 않으면 도리어 국가가 편안하지 못할 듯합니다."
예조판서가 되받았다.

"세조 조에는 국가가 평온하였기 때문에 상도에 위배되는 처사를 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의 형세는 그 당시와 다르니 가벼이 행해서는 안 될 듯합니다."
우참찬 김육이 거듭 부당함을 주장했다.


"신의 뜻은 우참찬과 같습니다."
호조판서 정태화가 거들었다.

"양사의 장관들도 각각 자신의 뜻을 말하라."
궁지에 몰린 임금이 원군을 청했다.

"삼대(三代) 이후 왕통을 이은 것이 정연하니 만일 권도를 행한다면 반드시 큰 걱정이 있게 될 것입니다."
부제학 이목이 도와주지 않았다.

"종사의 계책은 모름지기 대신과 의논하여 결정해야 하는데 꼭 신에게 물으시고자 한다면 신에게는 상도를 지키는 것만이 있을 뿐입니다."
대사간 여이징 역시 임금의 생각과 달리했다.

멍석을 깔아주는 날렵한 처신

"양녕대군이 동궁에 있을 적에 백관들이 그를 폐할 것을 청하였으니 이는 모두 나라를 중히 여겨 후환을 돌아보지 않은 것이다. 그때 만일 태종께서 윤허하시지 않았더라면 후일의 화가 불을 보듯 하였는데 당시 대신들은 자기 몸을 생각하지 않고 개진했다. 지금 경들은 옳은 줄을 알면서도 말하려 하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양녕대군은 덕망을 잃고 법도에 어긋난 일이 많았기 때문에 조신들 간에 폐립(廢立)의 청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원손이 어려서 아직 덕망을 잃은 것이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오늘의 하교가 있으므로 신하들의 의논이 귀일되지 않은 것입니다."

노회한 영의정이다. 임금이 양녕대군을 거론할 때는 원손의 불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헌데 김류는 양녕대군 폐출의 변을 늘어놓으며 임금으로 하여금 원손의 불초함을 말하게 하는 멍석을 깐 것이다.

"원손의 사부가 모두 이 좌중에 있으니 어찌 원손이 현명한지 불초한지를 모르겠는가?"
입시한 신하 중에는 김육, 이식, 이목, 이경석이 세자시강원 사부(師傅)를 겸하고 있었다.

"어린 소년을 두고 어찌 장래의 성취를 미리 점칠 수 있겠습니까?"
이경석이 제동을 걸었다.

"원손이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그 기질을 본다면 어찌 장래에 성취할 바를 모르겠는가?"

"원손이 아직 어려서 덕망을 잃은 것이 없습니다."
김육이 쐐기를 박았다.

"원손은 자질이 밝지 못하여 결코 나라를 감당할 만한 재목이 아니다."

"진강(進講)할 때에 원손의 재기(才氣)가 드러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식이 반론을 제기했다. 이때 부제학 이목은 해소기침이 발작하여 밖으로 나갔다. 세자를 갈아치우는 것은 국가대사다. 찬반에 따라 가문의 영광이 될 수도 있고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다. 난처한 입장에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인지 알 수 없다.
#소현세자 #원손 #민회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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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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