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밝히는 권력자

[역사소설 민회빈강18]돈 앞에 작아지는 최고 권력자의 아들과 동생

등록 2010.04.17 12:04수정 2010.04.1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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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평대군 신도비 당대의 부귀영화를 말해주듯 화려하다. 인조의 셌째아들 인평대군은 심양에서 볼모살이 하던 소현세자가 일시 귀국할 때 원손과 함께 대타로 인질이 되었던 인물이며 형(효종)이 등극하자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 이정근


나라에서 금지하는 채석장을 운영하여 재미를 본 인평대군 반인(泮人)들이 돼지고기 사업에 진출하여 풍광 좋은 저자도가 돼지마을이 되었다. 양평과 여주 일대에서 길러진 돼지들이 뱃길을 이용하여 저자도에 집하되었고 도살된 지육은 마장동으로 운반되었다.

반인은 소를 도살하는 백정과 같은 천민이 아니다. 그렇다고 마름도 아니고 상인(商人)도 아니다. 스스로 양반과 상민(常民) 사이에 위치를 만들어 신분을 과시했다. 성균관의 반인과 흡사했다.


공적으로는 대군의 노복이었지만 가노(家奴)처럼 부림을 당하지 않았다. 백정을 부려 소를 잡고 그 고기를 공급하여 창출된 이익금에서 일정부분을 자신들이 갖고 나머지는 상납했다. 원시적인 독립채산제였다.

한반도를 유린한 청나라 군대는 눈에 보이는 대로 소를 잡아먹었다. 철군할 때는 소를 도축하여 바리바리 싸가지고 압록강을 건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우역(牛疫)이 팔도에 번져 농사에 없어서는 아니 될 소가 멸종 위기에 이르렀다. 이에 인조는 소의 도살을 엄금하고 만일 이를 위배했을 때는 살인과 같은 율을 적용하여 처벌하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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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갈이 단원 김홍도 풍속화 ⓒ 이정근


고기 장사에 재미를 붙인 왕족

누르면 삐져 나가고 금하면 이익이 커지는 것이 세상살이다. 인평대군 비호 하에 돼지고기 장사로 재미를 본 반인들이 인평의 숙부이며 임금의 동생인 능원대군에게 소를 잡아 도성에 공급하자고 접근했다. 아무리 왕족이지만 재물 앞에 작아지기 때문일까. 쾌하게 승낙을 받은 반인들은 공공연하게 쇠고기 장사에 나섰다.

원주와 횡성 목초지에서 길러진 소들이 남한강 뱃길을 이용하여 덕소에 도착하면 능원대군 반인들에 의해 도축되어 지육으로 마장동에 수송되었다. 관가에서는 농사용 소를 제외한 육우용 소의 덕소 이상 한양 진입을 불허했다. 덕소는 육우용 소의 마지막 종착지이며 검문소였다.


마장동에 도착한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반인들의 조직을 타고 도성에 유통되었다. 마장동은 왕실목장으로 수말이 길러지던 곳이다. 목장 한켠에 씨수말로 수명을 다한 말과 용도폐기 된 말을 도살하던 곳이 있었다. 소규모 도축장이 집하장이 된 것이다.

쇠고기는 먹거리 이상의 의미를 지닌 존재


조선 개국과 함께 개성에서 한양으로 도읍지를 옮겨오면서 종루 주변에 가가(假家)가 생겨났다. 생활필수품을 팔던 가게들이 전문화하면서 운종가가 활성화되었고 시전(市廛)이 정착되었다. 붓과 종이, 갓, 비단을 파는 대시(大市)는 장통방, 미곡은 배오개, 닭전과 계란전은 광통교, 생치전(生雉廛)과 건치전(乾雉廛)은 시구문 병문안. 생선전은 서소문 병문밖에 있었으며 저육전(豬肉廛)은 여러 군데 있었으나 쇠고기를 파는 상설 전(廛)은 없었다. 그만큼 쇠고기는 먹거리 이상의 의미를 지닌 존재였다.

문묘제향에는 쇠고기가 꼭 필요하다. 제수용품이라는 명분아래 한성부의 허락을 받아 소를 도살한 성균관 도사(屠肆)들이 잉여 쇠고기를 시중에 유통시켰고 그 이익금으로 전복(典僕)들의 생계를 도왔다.

그들은 목판에서 쓱쓱 썰어 파는 저육전과 차별화하기 위하여 소의 네 다리를 갈고리에 걸어놓고 서민들의 눈을 유혹했다.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사는 백성들이 이를 현방(懸房)이라 명명했다. 이들의 전성시대도 잠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그들의 조직은 와해되었고 그 자리를 대군(大君) 반인들이 꿰차고 들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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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왕릉을 수호하는 소나무. 조선 왕실은 소나무를 신성시했다 ⓒ 이정근


금송(禁松). 금주(禁酒), 금도(禁屠)는 조선 왕조 통치목록이다. 왕실의 상징 목 소나무를 베지 말라. 술을 빚거나 파는 것을 금지한다. 소를 잡지 말라. 삼금(三禁)정책은 불변의 법칙이 아니다. 조였다 풀리기를 반복했다.

국상을 당하거나 가뭄이 들면 임금이 육선(肉饍)을 금했다. 국난을 당하여 백성들과 고통을 함께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임금의 금육(禁肉) 기간이 길어지면 신하들이 안절부절못했다. 고기를 먹고 싶어도 임금이 육선을 금하고 있으니 먹을 수 없었다. 현안이 빨리 해소되기를 바랄뿐이다. 민초들은 일 년에 한 번도 먹기 힘든 쇠고기를 힘 있고 권세 있는 자들은 상식했다.

쇠고기와 돼지고가 대군들 휘하에 독과점 되자 밀도살이 횡횡했다. 대군은 대군대로 업권 보호를 위하여 강수를 두었다. 휘하 반인들을 동원하여 밀도축자를 잡아 사형(私刑)을 가하거나 관가에 넘겼다. 여론이 부글부글 끓었다. '누구는 해먹고 누구는 잡혀 가냐?'는 것이다. 임금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히 다스리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래 말썽은 없었나?"

"우리 애들이 몇 놈 붙잡혀 갔지만 빼왔죠."

"어떻게?"

"한성부에서 마장동을 급습하여 우리 애들을 붙잡아 가고, 형조에서 저자도에 출동하여 칼잽이들을 잡아가고, 사헌부에서 머나먼 덕소까지 나가 우시장을 박살내고. 이렇게 힘 있는 관아가 총 출동하여 우리 애들을 데려갔으니 우리가 솥뚜껑이 열려부렀습죠?"

단속반원 집을 습격하여 가족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반인

"그래서 어떻게 했나?"

"출동한 놈들 집을 찾아가 마누라를 주워 패버리고 아새끼들을 밟아버렸죠. 흐흐흐"
점돌이가 득의의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괞찮았나?"

"이렇게 한 번 본때를 보여주었더니 다음에 단속명령이 떨어져도 지놈들이 꽁무니를 뺍디다."

"요새는 어떤가?"

"새로 부임한 형조판서가 아랫것들을 데리고 직접 조사하여 우리 대군 댁 소속 42명, 능원대군 댁 소속 38명 명단을 임금님에게 보고하지 않았겠습니까."

형조판서 민성휘가 특권층의 비리를 척결하겠다고 전면에 나섰다.

"그래서?"

"형판 댁을 쳐들어가 난리를 쳐버릴까 하다가 참았죠."

"그래, 도축장을 폐쇄하라는 명령이라도 내렸나?"

"뭘요. 능원 나리 댁에서 다섯 명, 우리 대군 댁에서 김철 외에 한 명 도합 일곱 명을 전가사변(全家徙邊)시키라는 명이 떨어졌습죠. 임금님도 난처했겠죠. 그래서 철이에게 그랬죠. 휴양 한다 셈치고 마누라 데리고 몇 달만 쉬다 오라고"

"세상 말세군."

"말세라니요. 세상은 힘 있는 대로 흘러가는 게 순리가 아닙니까?"

"그게 순리하면 자네들이 처분한 소가 웃겠네."

"오랑캐라 멸시하던 청나라 황제 앞에 우리 임금이 무릎 꿇는 것은 홍퇴시가 잘 생겨서가 아니라 힘이 달려서 그런 것 아닙니까? 힘 앞에 장사 없습니다."

점돌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렸다. 백성들은 조선을 짓밟은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를 붉은 돼지같이 생겼다 하여 홍퇴시라 불렀다. 저주의 악담이다.

점돌이와 작별한 꺽쇠가 주막을 나와 나루 마을을 벗어났다. 아름드리 닥나무 사이로 돼지우리가 줄지어 있고 돼지들이 '꽥, 꽥, 꽥!'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돼지 특유의 냄새와 분뇨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역겹다. 빨리 벗어나고 싶어 꺽쇠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덧붙이는 글 | 우역(牛疫)-소의 전염병
생치전(生雉廛)-살아있는 꿩을 파는 가게
건치전(乾雉廛)-죽은 꿩을 파는 가게
저육전(豬肉廛)-돼지고기 파는 가게
육선(肉饍)-고기와 생선반찬
도사(屠肆)-고기를 만지는 사람, 현방
전복(典僕)-말이나 가마를 담당하는 노비
전가사변(全家徙邊)-죄인과 그 가족을 변방으로 내쫓는 형벌


덧붙이는 글 우역(牛疫)-소의 전염병
생치전(生雉廛)-살아있는 꿩을 파는 가게
건치전(乾雉廛)-죽은 꿩을 파는 가게
저육전(豬肉廛)-돼지고기 파는 가게
육선(肉饍)-고기와 생선반찬
도사(屠肆)-고기를 만지는 사람, 현방
전복(典僕)-말이나 가마를 담당하는 노비
전가사변(全家徙邊)-죄인과 그 가족을 변방으로 내쫓는 형벌
#능원대군 #인평대군 #반인 #금송 #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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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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