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갈이단원 김홍도 풍속화
이정근
고기 장사에 재미를 붙인 왕족누르면 삐져 나가고 금하면 이익이 커지는 것이 세상살이다. 인평대군 비호 하에 돼지고기 장사로 재미를 본 반인들이 인평의 숙부이며 임금의 동생인 능원대군에게 소를 잡아 도성에 공급하자고 접근했다. 아무리 왕족이지만 재물 앞에 작아지기 때문일까. 쾌하게 승낙을 받은 반인들은 공공연하게 쇠고기 장사에 나섰다.
원주와 횡성 목초지에서 길러진 소들이 남한강 뱃길을 이용하여 덕소에 도착하면 능원대군 반인들에 의해 도축되어 지육으로 마장동에 수송되었다. 관가에서는 농사용 소를 제외한 육우용 소의 덕소 이상 한양 진입을 불허했다. 덕소는 육우용 소의 마지막 종착지이며 검문소였다.
마장동에 도착한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반인들의 조직을 타고 도성에 유통되었다. 마장동은 왕실목장으로 수말이 길러지던 곳이다. 목장 한켠에 씨수말로 수명을 다한 말과 용도폐기 된 말을 도살하던 곳이 있었다. 소규모 도축장이 집하장이 된 것이다.
쇠고기는 먹거리 이상의 의미를 지닌 존재
조선 개국과 함께 개성에서 한양으로 도읍지를 옮겨오면서 종루 주변에 가가(假家)가 생겨났다. 생활필수품을 팔던 가게들이 전문화하면서 운종가가 활성화되었고 시전(市廛)이 정착되었다. 붓과 종이, 갓, 비단을 파는 대시(大市)는 장통방, 미곡은 배오개, 닭전과 계란전은 광통교, 생치전(生雉廛)과 건치전(乾雉廛)은 시구문 병문안. 생선전은 서소문 병문밖에 있었으며 저육전(豬肉廛)은 여러 군데 있었으나 쇠고기를 파는 상설 전(廛)은 없었다. 그만큼 쇠고기는 먹거리 이상의 의미를 지닌 존재였다.
문묘제향에는 쇠고기가 꼭 필요하다. 제수용품이라는 명분아래 한성부의 허락을 받아 소를 도살한 성균관 도사(屠肆)들이 잉여 쇠고기를 시중에 유통시켰고 그 이익금으로 전복(典僕)들의 생계를 도왔다.
그들은 목판에서 쓱쓱 썰어 파는 저육전과 차별화하기 위하여 소의 네 다리를 갈고리에 걸어놓고 서민들의 눈을 유혹했다.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사는 백성들이 이를 현방(懸房)이라 명명했다. 이들의 전성시대도 잠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그들의 조직은 와해되었고 그 자리를 대군(大君) 반인들이 꿰차고 들어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