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만원으로 살던 내가 100만원을 쓰다니

[새터 찾아 삼만리 16] 새집 다 지어갈수록 생활은 망가져갔다

등록 2010.05.15 19:03수정 2010.05.1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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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턱 막혀 결국 한의원을 찾아가 침을 맞고 뜸을 떴다. ⓒ 송성영


이른 아침, 몸을 일으키는데 숨이 턱 하니 막혀왔습니다. 전날 마당에서 넘어지는 순간, 가슴 쪽 어딘가의 혈자리가 막힌 것 같습니다. 목수들은 집 짓는 현장으로 떠나고 인효와 단둘이 남아 몸을 추스르고 있는데 사글셋방 할머니가 방문을 불쑥 열고 들어왔습니다.


"이것 드셔."
"아이구, 참 괜찮은디 지금 마악 나가려던 참인디요…."
"아적 아침도 안 먹었잖소이, 찬은 없지만 그냥 드시구 가셔."

이틀 전에 건네 주신 파래무침을 맛있게 잘 먹었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파래무침뿐만 아니라 파래국에 구운 갈치까지 챙겨 오셨습니다. 할머니 성의를 봐서 먹어야 하는 데 통 밥맛이 없었습니다. 몇 숟가락 뜨고 사글셋방을 나서는데 다시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아빠 아프면 좀 더 누워 있다가 가지."
"지금 가서 점심 준비해야 돼."

목수들에게 점심으로 김치찌개를 해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사글셋방에서 나와 골목길을 나서는데 허름한 농가에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다 쓰러져가는 슬레이트 집이지만 볕 좋은 남향집 마루에 걸터앉아 있는 모습이 보기가 좋아 재빨리 카메라를 꺼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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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좀 찍을께유" "뭘라구 찍어요이" ⓒ 송성영


"사진 좀 찍어두 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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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효 녀석은 할머니들이 귀여운 고양이들 같다고 합니다. 오른쪽 끝이 사글세방 할머니. ⓒ 송성영




"뭘라구 찍어요이."
"그냥요 보기 좋아서유."
"아따 뭐시가 보기 좋아, 다 늙은 것들인디."
"마루에 앉아 계시는 모습들이 하두 이뻐서요."

"아따 참말로 뭐시가 이쁘다구", "그려, 찍어, 찍어." 다들 한마디씩 하면서 바른 자세로 고쳐 앉습니다. 마루 가득한 햇살만큼이나 남도의 환한 웃음 빛깔이 사진기에 가득 잡혀 옵니다. 주름 잡힌 시골 할머니들의 웃음은 짙은 화장발로 늙지 않으려 애쓰지 않는 건강한 웃음입니다. 순수한 간난 아기의 미소와 닮았습니다.


사진을 찍고 돌아 나오는데 인효 녀석이 방그레 웃으며 할머니들이 따사로운 볕에 앉아 있는 귀여운 고양이들 같다고 합니다.

"그려 그러기도 하네, 아빠는 할머니들이 간난 아기들 같고 또 뭐시냐, 고목 나무에 핀 이쁜 꽃 같던디."

집은 다 지어가는데, 가슴이 왜 답답할까요

돼지고기를 사 들고 집 짓는 현장에 돌아와 막힌 가슴팍을 어루만져가며 전기밥솥에 쌀을 안치고 김치찌개를 끓였습니다. 사글셋방 할머니가 주신 파래 반찬에 김과 김치를 꺼내놓고 보니 그런대로 상차림이 근사했습니다.

"밥이 맛있네요. 밥만 먹어도 되겠네요."

다들 맛있게 김치찌개 한 냄비를 거의 다 비웠습니다. 밥도 두 공기씩이나 먹었습니다.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웠습니다. 점심을 다 먹을 무렵 바닥 미장 일을 준비하기 위해 모래와 시멘트를 가득 실은 트럭이 들어왔는데 윤구씨 말로는 모래가 적게 실려왔다고 합니다.

레미콘에 방통차(콘크리트를 부어 바닥 미장일을 하는 차)를 부르게 되면 140만 원 정도의 경비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것도 고흥에서 구할 수 없어 순천이나 광주에서 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방통차를 이용하면 이른 시간 내에 매끈하게 바닥 미장을 할 수 있는데 사람의 손으로 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미장일이 매끄럽지 않게 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 저기 수소문하여 미장일하는 사람들을 부르기로 했습니다. 미장 기술자 2명에 뒷일을 봐주는 두 사람, 모두 4명이 일하는데, 100만 원 정도면 할 수 있다고 하니 방통차를 부르는 것보다 40만 원을 절감할 수 있고 또 지역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줄 수 있어 일석이조였습니다. 사람 손을 빌리게 되면 일은 좀 더디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급할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윤구씨는 늦은 오후까지 손님방 문짝을 만들어 큰 유리문을 끼워넣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숨 막히는 가슴을 부둥켜안고 차 안에 누워 있다가 밖으로 나와 서성거리기를 반복했습니다.

자동차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에서는 서울에 눈이 많이 오고 있다고 합니다. 기상 관측이래 최대랍니다. 아침나절 잠시 눈이 내리는가 싶더니 이내 녹아 버린 고흥은 찬바람이 불어댈 뿐이었습니다. 서울시가 염화나트륨을 뿌려 시민들을 편하게 하느니 어쩌니 호들갑을 떨고 있는 모양입니다. 중국이나 스위스 등도 폭설로 정신이 없다고 합니다. 지구촌이 꽁꽁 얼어붙고 있다며 난리를 치고 있지만 고흥은 영하 3℃. 멀쩡하기만 했습니다.

가슴팍이 답답해서 함께 웃을 수 없었습니다

날씨와는 상관없이 하루해가 지고 또다시 먹어야 할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도화면에 있는 창민이네 식당을 찾았습니다. 온돌방에 들어서자 막혀 오던 가슴팍이 조금 잠잠해졌습니다. 해물이 대부분인 상차림을 보면서 생선을 전혀 입에 대지 않는 인효 녀석이 양미간을 찡그립니다. 

인효 녀석이 식당에서 나오자마자 호떡이 먹고 싶다며 분식집에 들어갔다가 닭 꼬치 한 개를 들고 나옵니다.

"호떡은?"
"호떡이 없어서 닭 꼬치 샀어. 아빠 내가 웃기는 얘기 해줄게. 분식집에 서너 사람이 난로 불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거든, 근디 어떤 사람이 '말세여 말세' 그라더라구."
"왜 말세라는 겨?"
"올겨울처럼 추운 적이 없었다는 겨, 겨우 영하 3℃밖에 안 됐는데."
"고흥이 그만큼 따뜻하다는 얘기지."
"여기는 인심이 참 좋은 거 같어. 어떤 아저씨가 어묵을 먹고 나서 5백 원이 부족했는데 분식집 아줌마가 나중에 갚으라며 그냥 가래."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닭 꼬치를 다 먹은 녀석이 아쉬운 듯 입을 쩝쩝거립니다. 식당에서 마땅히 먹을거리가 없어 젓가락만 깔짝거리던 녀석이었기에 뭔가를 더 먹고 싶은 모양입니다.

슈퍼마켓에서 빵이라도 사 먹이려 했는데 목수들의 자동차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목수들이 떠난 줄 알고 서둘러 사글셋방에 도착해 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뒤늦게 도착한 윤구씨가 방바닥에 큼직한 과자 봉다리를 턱 하니 내려놓습니다.

"사는 게 뭐 있어, 다 먹자고 하는 것인데 공부도 먹자고 하는 거지, 까까 먹자 인효야."

윤구씨는 늘 그래 왔듯이 텔레비전을 켜놓고 말 많은 할머니들처럼 드라마 속의 인물들과 한통속이 되어 이것저것 참견해 가며 신나게 웃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가슴팍이 답답해 함께 웃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아픈 가슴 부여잡고 한의원으로 향했습니다

따듯한 방바닥에 숨이 턱턱 막혀 오는 가슴팍을 녹이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작은아들 인상이 녀석의 과잉 치아를 뽑기 위해 대전 대화 공단에서 살림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인술을 베풀고 있는 푸른 치과 신명식 원장을 만나고 왔다고 합니다.

신 원장은 인상이가 과잉치아를 뽑고 나면 치료를 받고 보철을 해야 하는데 그 돈이 만만치 않다며 우리보다 더 걱정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치료를 해주면 될 것인데 고흥으로 이사를 가 타지에서 보철을 하여 치료를 받게 될 경우  500만 원 이상이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큰일이네 공사비가 바닥을 치고 있는디, 그래서 어떻게 했어?"
"일단 과잉치아부터 뽑고 나서 상의 하자셔. 이사 가서도 돈 들지 않고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시겠데."(훗날 우리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신명식 원장이 돈 한 푼 받지 않고 치료며 그 가격이 엄청나다는 보철까지 해 주었습니다.)


다음날 내부 바닥 미장일을 시작했습니다. 헌데 미장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이 모래가 부족하다며 한 차 더 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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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미장일을 시작했지만 애초 약속과는 달리 한 트럭 분의 모래를 더 원했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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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미장공사 ⓒ 송성영


"어제 모래를 적게 실어오더니, 공사 시작하고 나서 그러시면 어떻게 합니까? 처음 약속하고 다르잖습니까?"
"지금 얼른 주문해야 하는디요."
"거참, 너무하시네…."
"……"
"모래가 부족하다니 할 수 없죠, 주문하세요."

화를 꾹꾹 눌러 참았더니 또다시 가슴팍이 꽉 막혀 왔습니다. 이미 시작한 일이었기에 실랑이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애초의 약속과 달리 20만 원의 경비를 추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그 대신 신경 써서 잘 해주세요. 방바닥이라서 울퉁불퉁 하믄 잠자리가 힘드니께요."

집 짓다 보면 종종 이런 일이 생기기 마련이라고는 하지만 고흥에 와서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맥이 쏙 빠졌습니다.

미장일을 지켜보고 있는데 지리산에서 전통차를 만드는 이준호씨가 찾아와 점심을 사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점심을 먹으면서 반주로 소주 한잔을 했는데 또 다시 가슴팍이 막혀 왔습니다. 이 선생의 차를 타고 집 짓는 현장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잠시 해변을 둘러보기로 했는데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한참을 자갈밭에 엎드려 심호흡을 했습니다. 견딜 수 없을 지경으로 숨이 막혀 왔습니다.

이 선생을 보내고 나서 겨우 운전대를 잡고 한의원을 찾아갔습니다. 인효 녀석이 보호자가 되어 불안스럽게 따라나섰습니다.

"인효야 일루 와봐, 아빠 침 맞고 있는 거 찍어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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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효 녀석이 불안해 할까봐 짐짓 별거 아니라며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 송성영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뜸까지 떴습니다. 한데 왼쪽 팔목 부위에 침을 잘못 맞아 힘줄 부위가 퉁퉁 부어올랐습니다. 침을 놓기 전에 한의사가 사혈을 하기 위해 볼펜처럼 생긴 침구로 딱 딱 딱 딱 찔러 대는 기계적인 동작이 너무나 우스꽝스러워 그만 웃고 말았는데 그 웃음이 비웃음처럼 보여 일부러 정맥 부위에 침을 꽂았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설마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아무튼 그 침 하나로 손목 부위가 마비될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사혈과 침 뜸으로 큰 효과를 보았습니다(한의원에서는 사나흘을 더 치료받아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더 이상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막힌 가슴이 한결 좋아졌습니다.

"인효야 일루 와봐, 아빠 침 맞고 있는 거 찍어놔라."

인효 녀석이 불안해할 것 같아 짐짓 태연한 척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습니다. 한의원에서 빠져나와 건강원 앞에 세워져 있는 포니 승용차를 만났습니다. 늘 그 자리에 세워져 있는 포니 승용차가 새삼스럽게 다가왔습니다. 문짝에 사용하는 경첩을 달아 놓은 연료 주입구며 고무로 감아 놓은 부러진 백미러를 비롯해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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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원 앞에 세워져 있는 다 낡은 포니 자동차.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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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짝에 사용하는 경첩을 달아 놓은 연료 주입구. 고무로 감아 놓은 부러진 백밀러. ⓒ 송성영


"저 자동차가 아주 오래전에 나온 포니라는 것인데 아주 건강하지 잉."
"다 낡았는데 뭐가 건강해."
"수십 년은 됐을 텐디 아직도 굴러다닌다고 하잖어. 저 차만큼 오래된 차는 쉽게 볼 수 없어. 사람으로 치면 백세가 넘었다고 할 수 있지."

"아빠 몸이 아까 본 낡은 포니 자동차를 닮았네"

집 짓는 현장에 돌아와 보니 윤구씨는 바닥 미장공사한 콘크리트가 밤사이에 얼어붙을까 봐 걱정이라며 온열기를 설치해 놓고 있었습니다. 일찌감치 보일러를 신청했는데 본사에서 보일러를 보내지 않아 하루 더 있다가 설치할 것이라고 합니다.

윤구씨는 제 집 짓듯 정성을 다해 밤늦게까지 온열기를 임시방편으로 설치해 놓고 보일러 배관에 온수를 공급했습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물은 쉽게 더워지지 않았습니다.

"몸도 좋지 않으신데 먼저 들어가세요."
"같이 들어갑시다. 침 맞고 뜸까지 떠서 그런지 한결 좋아졌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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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게 까지 동파 방지를 위해 온열기를 설치하고 있는 윤구씨. 그는 처음부터 집을 완성할때 까지 제 집 짓 듯 정성을 쏟았다. ⓒ 송성영


겨우 물이 데워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윤구씨와 함께 사글셋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늘 그래 왔듯이 돌아오자마자 노트북을 펼쳐놓고 일기를 쓰려는데 가슴팍이 다시 아파져 왔습니다.

인효 녀석이 내 손을 대신해 노트북 자판을 두드려 줬습니다. 오늘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다가 문득 건강원 앞에 세워져 있는 포니 자동차가 고장 난 내 몸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내 몸보다도 포니 자동차가 더 건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오십을 갓 넘긴 내 몸은 포니 차보다도 형편없이 낡아가고 있었습니다. 한 달 내내 찬바람에 시달렸다고는 하지만 어딘가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동시다발적으로 잇몸이 붓고 그나마 남아 있는 어금니까지 흔들립니다.

"아빠 몸이 아까 본 낡은 포니 자동차를 닮았네. 아, 그리고 또 다 쓰러져 가는 공주에 있는 우리 집을 닮았다잉. 그치?"

내 몸은 안방에 빗물이 줄줄 새는 다 낡은 공주 집을 닮았습니다. 새집을 짓는 동안 공주 시골집은 점점 기운을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 온기 잃은 사랑방은 다시 쥐새끼들 소굴로 변해가고 있을 것이었습니다.

"이 말도 쓸까?"
"뭘?"
"아빠 몸이 포니하고 공주 집 닮았다는 거."
"그려 아빠가 하고 있는 말은 다 적어놔. 재밌지?"

인효 녀석을 향해 애써 웃음을 던져 보려 했지만 유쾌한 웃음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고장 난 내 몸 상태는 어느 날 갑자기 빙판에 미끄러져 생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내 몸의 중심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생활의 리듬이 무너지면서부터인 것 같습니다. 의식주 전반에 걸쳐 최소한의 자본으로 해결해 가며 자급자족의 길을 걸어 보겠노라 했던 것이 하나둘씩 무너져 내리면서 몸의 중심 또한 무너지기 시작했는지도 모릅니다. 

거센 물살에 뚝방이 시나브로 무너져 내리듯 지난 1년 동안 주체할 수 없는 물질적인 홍수 속에서 내 몸이 하나하나 고장 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렸을 때 홍수가 나면 뚝방을 집어삼킬 듯 쿨렁거리며 내를 휘감아 흐르던 황토물살 앞에 서 있듯이 물질의 홍수 속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물질의 홍수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적게 벌어 행복하게 살고자 했던 우리 식구에게 생활의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따지고 보면 수입이 늘어나고부터였습니다. 이전에 30~40만 원의 벌이를 했던 아내의 수입이 배로 늘어났던 것입니다. 그래 봤자 우리 부부가 한 달 동안 벌어들이고 있는 수입을 다 합쳐야 200만 원도 채 안 되지만 이전에 비하면 큰 변화였습니다.

버는 만큼 소비도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먹고 자고 입고 생활하는데 우리 네 식구의 한 달 평균 생활비가 60만 원도 채 안 됐는데 그 두 배에 가까운 100만 원 대로 늘어났던 것입니다. 물가상승이 가장 큰 원인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교통비며 식비 등을 비롯해 도시로 나서면서 그 씀씀이가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부부 또한 예전보다 씀씀이가 커졌습니다. 저가의 생활필수품이라고는 하지만 아내는 인터넷 쇼핑에 조금씩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인스턴트식품이 하나둘씩 밥상 위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보니 나 또한 술자리가 늘었습니다. 이전에는 집에서 담근 술을 마셨는데 밖으로 나가 마시는 날이 늘어났습니다.

아이들의 몸집이 시시때때로 커지면서 그동안 그 누군가에게 물려받아 입던 옷이나 신발은 점차 줄어들고 새 신발과 새 옷을 사 입는 일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지출은 자동차 유지비였습니다. 10여 년 된 중고 자동차가 한 군데 두 군데 망가져 가면서 돈 달라고 입을 쩍쩍 벌렸고 새 터를 구하러 전국을 헤매고 다니면서 엄청난 연료비를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프로젝터까지 사들였습니다. 텔레비전을 없애는 대신 아이들에게 질 좋은 영상을 선별해 보여 보기 위해 값비싼 프로젝터를 구입했습니다. 당시 대학에서 영상강의를 하고 있었기에 학생들과 동영상을 제작하여 공부할 도구로 사용하고자 했었는데 아직까지 그런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낚시 장비까지 구입했습니다. 어느 날 사촌 동생이 릴 뭉치를 선물하는 바람에 거기에 구색을 맞추겠다며 릴 대를 사들이고 하나둘씩 필요한 소품들을 샀습니다. 나중에 바닷가로 이사 가면 찬거리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럴듯한 변명을 덧붙이긴 했지만 내가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 20~30만 원에 해당하는 고가의 장비를 구입한 것은 결혼 후 처음 있었던 일이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 우리 가족에게 그동안 없었던 핸드폰까지 생긴 것입니다. 가족회의를 거쳐 일반 전화 요금보다 싸게 먹힌다 하여 장만한 핸드폰이었지만 결국 일반 전화를 쓸 때보다 3배에 가까운 전화비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거기다가 새 터를 구하고 전 재산을 털어 분수에 넘치는 새집까지 짓고 있었으니 물질의 홍수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물과 기름처럼 물질과 마음은 어울릴 수 없습니다. 물질에 얽매이다 보면 그만큼 마음자리를 잃게 되고 마음자리를 잃게 되면 몸의 건강 또한 잃게 되는 법, 그렇게 내 몸은 새집이 완성되어 가면서 시나브로 망가져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집을 다 짓고 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이전의 소박한 생활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래저래 혹사해온 내 몸의 건강 상태를 되돌려 놓을 수 있을까? 그날 밤 내내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건강 #할머니들의 미소 #뜸뜨기 #낡은 포니자동차 #낡은 집과 새집 #픽업형 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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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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