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손길이 내미는 고운 빛깔

[골목길 사진찍기 9] 사진기를 쥐는 손으로 먼저

등록 2010.05.24 13:46수정 2010.05.24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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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면서 조촐하게 살아가는 터전인 골목길입니다. ⓒ 최종규

조용하면서 조촐하게 살아가는 터전인 골목길입니다. ⓒ 최종규

 

손길을 내미는 만큼 사랑을 건넬 수 있습니다. 마음길을 함께하는 만큼 믿음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혼자만 좋을 사랑이라면 언제나 혼자만 좋고 그칩니다. 서로 좋을 사랑이라면 나와 네가 나란히 좋을 길을 찾으려고 바지런히 애씁니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는 자리라면 언제나 마찬가지입니다. 애틋한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을 나누는 사이에서만 사랑과 믿음이 오가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쥔 사람과 사진기 앞에 설 사람 사이에서도 사랑과 믿음이 오갈 노릇입니다. 아끼는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듯, 아끼는 마음으로 내 사진기 앞에 선 사람을 바라보며 사진으로 담고, 따스한 눈길로 믿음을 보내듯, 따스한 눈길로 내 사진기 앞에 선 사람을 헤아리며 사진으로 옮깁니다.

 

사진찍기란 차갑거나 딱딱한 기계 단추를 누르는 일이 아닙니다. 사진찍기란 내 따스한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을 실어 넉넉한 사랑과 믿음을 꽃피우는 일입니다. 나부터 나 스스로 고운 손길을 내밀지 않는데, 맞은편에서 내 앞에 고운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고운 목소리를 들려주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나부터 나 스스로 고운 사람이 되어 우뚝 서 있지 않은데, 맞은편 사람들이 곱고 맑은 몸짓으로 사진에 담기기를 꿈꿀 수 없습니다.

 

내 앞에 보여지는 모습이 곱기 때문에 고운 빛깔을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내가 걷는 길이 고운 빛깔로 차곡차곡 그려져 있을 때에 비로소 고운 빛깔 어우러진 사진을 하나 낳습니다. 내가 찾아간 곳이 아름답기 때문에 고운 빛깔을 선보일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내가 걷는 이 길을 그동안 걸었던 사람들이 숱한 빛깔을 아로새기며 나한테 물려주었기 때문에 고운 빛깔 감도는 사진을 하나 얻습니다.

 

좋은 사진기를 갖추기 앞서 좋은 마음을 갖출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좋은 사진을 생각하기 앞서 좋은 삶을 생각할 수 있으면 반갑겠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바라기 앞서 좋은 일과 놀이를 알차게 즐기는 사람이라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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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하나. ⓒ 최종규

골목길 사진 하나. ⓒ 최종규

 

41. 인천 중구 송월동3가. 2010.5.21.14:12 + F16, 1/100초

집 안쪽이 넓다면 굳이 빨래를 집 바깥에 널어 놓을 까닭이 없습니다. 햇볕을 좋아하며 집 바깥에 애써 빨래를 널 수 있겠지만요. 집 안쪽이 넓으면 마당을 마련할 테고 마당에 빨래를 널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골목에서 집 바깥에 빨래를 내놓는 집은 자그마한 살림살이라는 소리인데, 자그마한 살림살이이기 때문에 빨래는 하나같이 햇살을 머금고, 햇살을 머금을 뿐 아니라 자그마한 살림집 이야기를 수수하게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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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둘.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둘. ⓒ 최종규

 

42. 인천 중구 송월동3가. 2010.5.21.14:15 + F16, 1/80초

한 뼘 땅뙈기조차 모자라다 싶은 골목집이 다닥다닥 모여 있는 동네 한켠에서 붓꽃이 자랍니다. 붓꽃을 보면 참 붓처럼 생겼구나 싶습니다. 이 고운 꽃 하나를 심어서 가꾸는 분들은 어떤 마음이요 가슴인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이 붓꽃 둘레 골목계단에 비죽비죽 고개를 내미는 들풀을 보고 들꽃을 만날 때면 싱숭생숭합니다. 골목사람 고운 손길로도 골목은 고운 빛인데, 골목사람 고운 손길이 따로 없어도 자연은 우리한테 고운 손길을 내밀어 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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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셋. ⓒ 최종규

골목길 사진 셋. ⓒ 최종규

 

43. 인천 중구 송학동2가. 2010.5.21.13:37 + F14, 1/80초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집이 서 있었을 테고, 더 앞서는 풀로 이은 집이 있었을 테며, 더 앞서는 그예 갖은 푸나무가 자라고 있었을 언덕배기 한켠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이란 하나같이 사람만 사는 터전이 아닌 갖가지 푸나무와 들짐승이 깃들던 터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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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넷.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넷. ⓒ 최종규

 

44. 인천 동구 송현2동. 2010.5.15.14:12 + F16, 1/80초

땅임자는 빈터에 푸성귀를 기르지 말라는 알림패를 박아 놓지만, 아파트숲 사람이 아닌 아파트숲 바로 앞에 있는 낮은 골목집 사람들은 꾸준히 푸성귀를 심어 기르는 텃밭입니다. 딱히 무슨 건물을 세우지 않고 놀리는 땅이라 할 때에는 누구든 꽃씨를 심거나 나물씨를 심거나 나무 한 그루 심어 좋은 마을쉼터 노릇을 하도록 마음을 써 준다면 참으로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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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시내버스 모습. ⓒ 최종규

인천 시내버스 모습. ⓒ 최종규

 

45. 인천 시내버스. 2010.5.13.14:52 + F4.5, 1/60초

많이 부드러워졌다고는 하나, 시내버스를 타 보면 예나 이제나 흔들흔들입니다. 뭘 그리 빨리 달려야 하는지 너무 거칠고 어지럽습니다. 아이들은 손잡이를 잡고 있어도 이리 미끌 저리 미끌 합니다. 저 또한 스물 몇 해 앞서 시내버스를 타던 국민학생일 때에는 이 아이처럼 고달프게 흔들렸습니다. 그런데 고달프게 흔들리는 주제에 하하호호 웃으며 흔들림을 즐겼어요.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2010.05.24 13:46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골목길 #사진찍기 #인천골목길 #골목마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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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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