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부르는 골목함박꽃

[골목길 사진찍기 11] 파란하늘을 먹는 골목꽃과 골목빨래

등록 2010.05.27 14:11수정 2010.05.2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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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집 아주머니가 곱게 키우는 골목함박꽃. ⓒ 최종규

골목집 아주머니가 곱게 키우는 골목함박꽃. ⓒ 최종규

 

"꽃이 예쁘지요? 작약꽃이라고 해요. 어제까지만 해도 몽우리였는데, 어느새 이렇게 피었네."

 

아이를 데리고 골목마실을 하다가 우뚝 멈추어 섭니다. 하야말간 꽃봉우리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며 아이한테, "꽃이다, 아이 예뻐라"하고 말을 건넵니다. 아이도 하야말간 꽃봉우리를 들여다 봅니다. 이윽고, 꽃밭을 돌보는 아주머니가 우리 식구를 보았고, 꽃 이야기를 살짝 들려줍니다. 오늘부터 꽃이 핀다면 내일은 옆에 있는 다른 봉우리도 살살 속살을 내보이겠군요.

 

아주머니들한테 꾸벅 인사를 하고 골목마실을 잇습니다. '작약'이라는 이름이 머리에 아로새겨지는 가운데, 작약하고 엇비슷해 보이는 '모란'은 한번에 알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 꽃을 곱씹으면서 다른 작약꽃을 알아볼 수 있다면, 나중에는 차근차근 모란꽃송이도 알아챌 수 있겠지요.

 

그런데 어릴 때부터 '작약'이라는 꽃이름은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얼마 앞서 '작약'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이 꽃이름을 처음으로 들으면서 '내가 모르는 꽃이 한두 가지가 아닐 테지만, 이 나이가 되어 처음 듣는 꽃이 있다니 참 부끄럽고 놀랍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작약(芍藥)'이란 한자로 붙인 이름이요, 우리들은 으레 '함박꽃'이라 일컬어 왔음을 알아냅니다.

 

작약 아닌 함박꽃이라는 이름을 들으면서 '그래, 함박꽃은 어릴 때부터 동네에 퍽 흔한 꽃이었고, 어른들이 꽃이 참 예쁘다며 좋아하던 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잘 웃고 어여쁜 계집아이들을 가리켜 함박꽃을 닮았다고들 했지'하고 떠올립니다. 함박웃음과 함박눈에 나오는 '함박'은 '함지박'이라는 낱말에서 왔을 테지만, 막상 함박꽃을 마주하고 있다 보면 '크게 벌어진 모습'을 두고 함박웃음이라 불렀을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함박꽃처럼 소담스러우며 크고 맑으며 시원한 모습의 느낌을 살포시 담아 함박웃음이라 할 만하구나 싶었습니다. 그만큼 함박꽃은 여름 들머리에 걸맞는 고운 꽃입니다. 포근한 봄을 배웅하고 뜨거운 여름을 마중하는 길동무 같은 꽃입니다.

 

파란하늘을 맛나게 먹으며 활짝 피어난 골목 꽃이 시원스럽고, 곁에서 나란히 파란하늘을 먹으며 보송보송 마르는 골목의 빨래가 상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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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하나. ⓒ 최종규

골목길 사진 하나. ⓒ 최종규

 

51. 인천 중구 내동. 2010.5.26.13:06 + F14, 1/100초

 

스스로 꽃을 심어 가꾸지 않는다면 꽃이름을 제대로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꽃이 활짝 필 무렵이나 알아보지, 꽃이 아직 안 피었거나 꽃이 지고 난 다음에도 못 알아보기 일쑤입니다. 열매를 맺거나 씨를 품었을 때 모습이나 새잎이 돋을 때 모습을 헤아리지 못하면서 꽃 한 송이를 안다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꽃송이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꽃을 좋아한다 말하듯, 우리 이웃 우리 동네 우리 터전을 너무 모릅니다. 함박꽃(작약꽃) 키우는 분한테 말씀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 소담스러운 꽃이름을 머리에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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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둘.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둘. ⓒ 최종규

52. 인천 중구 전동. 2010.5.26.13:10 + F18, 1/100초

 

하늘이 시리도록 파란 날에는 온 동네가 곱습니다. 둘레가 온통 아파트 숲일지라도 곱고, 오래된 골목집이 펼치진 곳 어디든 곱습니다. 파란 하늘은 모든 삶자락에 눈부시고 맑은 기운을 베풀어 줍니다. 이런 날에는 파란하늘을 등에 지고 땀을 쏟으며 일하는 틈틈이 아이 손을 잡고 동네를 휘 둘러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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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셋. ⓒ 최종규

골목길 사진 셋. ⓒ 최종규

53. 인천 동구 화수1동. 2010.5.26.13:52 + F10, 1/80초

 

골목고양이가 낮잠을 즐길 무렵, 우리 아이도 낮잠을 즐겨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는 며칠 앓고 난 뒤로 처음 동네마실을 나왔기 때문인지 낮잠은 건너뛰려 합니다. 졸린 눈으로 잠을 안 자고 버티다가 아이가 먼저 골목고양이를 알아보고 '야옹야옹' 하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조용히 낮잠을 즐기던 골목고양이는 귀찮은 얼굴로 슬금슬금 조용한 자리를 찾아 장독 위로 올라가 앉습니다. 아이가 끝없이 '야옹야옹'하며 자꾸 저를 쳐다보고 있으니 1분쯤 뒤 아예 아이가 안 보이는 데로 가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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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넷.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넷. ⓒ 최종규

 

54. 인천 동구 화수1동. 2010.5.26.13:58 + F20, 1/80초

 

좋은 햇살과 맑은 바람과 싱그러운 하늘을 받아먹는 빨래에는 이 모든 기운이 골고루 깃듭니다. 빨래를 마치며 개운하고, 빨래를 널며 흐뭇하며, 빨래를 걷으며 즐거운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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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다섯.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다섯. ⓒ 최종규

 

55. 인천 동구 화평동. 2010.5.26.13:39 + F14, 1/100초

 

길에서 올려다보면 골목집 옥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이는 아파트 살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밖에서는 아파트 안살림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때때로 길에서 골목집 옥상 모습을 살며시 헤아려 봅니다. 살짝 고개를 내미며 살랑거리는 해맑은 꽃송이를 올려다보면서, 이 골목집 옥상에는 얼마나 놀라운 꽃밭이나 텃밭이 알뜰살뜰 아기자기하게 이루어져 있는지 그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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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 저 동네 함박꽃이 소담스레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 최종규

이 동네 저 동네 함박꽃이 소담스레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2010.05.27 14:11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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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골목길 #인천골목길 #골목꽃 #사진찍기 #골목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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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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