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이 한국사람을 사진으로 안 담으면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3] 김은국, <소련과 중국, 그리고 잃어버린 동족들>

등록 2010.05.27 12:55수정 2010.05.27 12:55
0
원고료로 응원

a

겉그림. ⓒ 최종규

겉그림. ⓒ 최종규

― 소련과 중국, 그리고 잃어버린 동족들 (김은국 글ㆍ사진,을유문화사,1989.4.25./판 끊어짐)

 

소설을 쓰는 김은국님은 1932년에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고 2009년에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분이 1964년에 쓴 소설 <순교자>는 널리 알려져 있고, <죄 없는 사람>(1968)이나 <잃어버린 이름>(1979) 같은 소설 또한 제법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소설쓰는 김은국님이 1989년에 한국땅 을유문화사에서 <소련과 중국, 그리고 잃어버린 동족들>이라는 사진책 하나 펴낸 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없습니다.

 

가만히 보면, 김은국님처럼 나라밖에서 한글이 아닌 말로 문학을 했던 분들 작품은 아직까지 '한국문학'으로 섬기지 않는 이 나라 문학밭입니다. 한국땅에서 한국사람으로서 사진책을 내고 사진을 찍는 사람을 놓고 '사진만 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프로'나 '작가'로 여기지 않을 뿐더러 '한국사진'으로 다루지 않는 이 나라 사진밭이기도 합니다. 이런 판이기에 <소련과 중국, 그리고 잃어버린 동족들> 같은 사진책이 눈에 뜨이지 않을 뿐더러 이야기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데다가 찬찬히 돌아보며 이 사진책 하나에 깃든 값과 뜻과 넋과 숨을 읽으려는 움직임조차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대학교 문예창작과를 나오거나 누군가 이름난 글쟁이한테서 추천을 받아야 글을 쓰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 터이나, 이 나라에서는 문학을 할 때에도 어김없이 졸업장을 묻습니다. 대학교 사진학과를 나오거나 누군가 이름난 사진쟁이한테서 소개를 받아야 사진을 찍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 텐데, 이 땅에서는 사진을 할 때에도 어쩔 수 없이 연줄을 따집니다.

 

a

속 사진. ⓒ 최종규

속 사진. ⓒ 최종규

a

속 사진. ⓒ 최종규

속 사진. ⓒ 최종규

김은국님이 "교회 주변의 사람이 사는 집들은 교회 건물에 비해 너무 초라했다(111쪽)."고 이야기하던 때는 1980년대입니다. 이무렵이나 요즈음이나 중국땅에는 예배당이 몇 없습니다만 여느 사람 여느 살림집과 대면 무척 크고 정갈합니다. 이무렵이나 요즈음이나 한국땅에는 예배당이 수두룩하게 많을 뿐 아니라 여느 사람 여느 살림집하고 견줄 수 없이 우람하며 돈이 넘칩니다.

 

김은국님은 "나 자신도 처음에는 이들에게 '고향'이 어디냐는 그런 무식한 질문을 불손하게 하고 나서 많은 자책과 반성을 했는데 이들의 '고향'은 소련땅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196쪽)."고 밝히며 뉘우칩니다. 그런데 이렇게 뉘우칠 만한 가슴이 있는 글쟁이나 사진쟁이는 퍽 드물고, 이렇게 뉘우칠 가슴을 헤아리고자 중국조선족을 끌어안거나 마주하는 글쟁이나 사진쟁이 또한 꽤 드뭅니다. 한국땅 글쟁이는 한국땅 이야기를 글로 담지 않고, 한국땅 사진쟁이는 한국땅 삶자락을 사진으로 싣지 않기 일쑤입니다.

 

a

속 사진. ⓒ 최종규

속 사진. ⓒ 최종규

한겨레붙이가 뿌리내리고 있는 중국이나 일본이나 러시아나 미국이나 중남미나 유럽 곳곳으로 찾아다니면서 내 나라 내 겨레 수수한 삶 가장자리와 한복판을 두루 살피는 눈썰미를 나누려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똑같은 비행기삯을 들여도 인도로 가고 티벳으로 가고 네팔로 갑니다. 이러면서 정작 한국으로 들어오는 인도 이주노동자나 티벳 이주노동자나 네팔 이주노동자 권리와 삶에는 눈을 두지 않습니다. 똑같은 다리품을 팔아도 나라안 곳곳을 골고루 다녀 본 사람은 드물지만 파리 뒷골목과 런던 앞골목을 두루 누빈 사람은 꽤나 많습니다. 서울 옆골목이라도 구석구석 돌아본 사람은 몇이나 될는지요. 돈 쓰고 옷 사입고 밥 사먹고 술 사마시는 불빛 번득이는 거리거리에는 사람들로 미어터지는데, 조용하면서 조촐하게 꽃그릇 하나 돌보고 '재개발 때문에 헐린 작은 집터'에 텃밭을 일구는 햇볕 따사로운 깨끔한 골목 안쪽에는 골목고양이와 골목새들만 오가며 고즈넉합니다.

 

김은국님이 "한국에서 중국인이 경영하는 중국 음식점을 우리는 '되놈집'이니 '짱꼴라집'이니 하고 부르며 그들을 천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일들로 비추어 볼 때 이곳 중국사람들이 '조선족 반점'을 뭐라 부르고, 어떻게 대해 주고 있을까 생각하니 좀 불안하기도 했다(55쪽)."고 말한 지 스물 몇 해가 지난 오늘날, 인천이나 부산에 깃든 중국사람거리는 관광특구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허울은 관광특구이지 정작 중국사람거리에서 뿌리내리며 지내온 토박이 중국사람 삶을 북돋우거나 아끼면서 오순도순 가꾸는 터전이 되지는 않습니다. 더 많은 관광객을 끌여들여 더 많은 돈을 벌도록 하는 관광지로 중국사람거리를 바라볼 뿐입니다. 사진기를 들고 중국사람거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중국옷 입은 사람과 중국 내음 배어 있는 중국집을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하하호호 깔깔낄낄 들여다보고 사진기 단추를 눌러댑니다. 중국사람 삶이나 문화를 한국사람 삶이나 문화처럼 돌아보거나 아끼려는 매무새란 없습니다. 아니, 우리는 우리네 한겨레붙이 삶이나 문화부터 제대로 아낀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아낄 생각이 없고 아끼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a

속 사진. ⓒ 최종규

속 사진. ⓒ 최종규

a

오른쪽이 김은국 님 모습. 왼쪽은 '루드밀라 남'이라는 성악가입니다. ⓒ 최종규

오른쪽이 김은국 님 모습. 왼쪽은 '루드밀라 남'이라는 성악가입니다. ⓒ 최종규

김은국님은 "중국땅에서 그들을 '조선족'이라 불렀고, 소련에서는 '카레스키'라고 불렀지만 그들은 역시 우리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들이었다(244쪽)."고 읊으면서 책을 맺습니다. 민족주의를 외치자는 한겨레붙이 찾아나서기가 아니라 서로서로 곱고 좋은 목숨을 건사하고 있는 살가운 이웃임을 느끼자고 하는 한겨레붙이 만남을 꿈꾸며 책을 마무리합니다. 이 같은 넋과 얼을 이 땅 우리들이 1989년에 깊디깊이 헤아리면서 넓디넓디 끌어안기란 참 버거웠겠다 싶습니다. 1989년이라는 해는 이제 막 군부독재를 몰아내며 민주주의 싹을 살짝 바라보는 때였고, 참다운 민주주의를 뿌리내리지 못한 채 어지러운 흐름이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때부터 스무 해 흐른 2010년 오늘날 우리들은 얼마나 민주주의 싹을 보듬으면서 돌보고 있을는지요. 슬기로운 넋과 아름다운 얼로 우리 삶을 사랑하고 있는지요. 빛나는 눈빛과 따스란 눈길로 우리 문화를 즐기고 있는지요. 따스한 마음과 넉넉한 가슴으로 우리 이웃하고 어깨동무하고 있는지요.

 

우리한테 이웃이란 누구일까요. 우리들 동무는 어디에 살고 있을까요. 숙제 공책 하나를 챙겨 주려고 밤새도록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하고 헤매던 여덟 살박이 아이와 같은 마음결을 추스르는 한겨레붙이는 얼마나 있는가요.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결을 곱고 맑고 푸르게 다스리고 있는가요.

 

올 2010년 5월에 <컬러로 보는 한국전쟁>(서울셀력션)이라는 사진책이 하나 태어났습니다. 한국전쟁 때 한국땅 숱한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낸 발자취가 예순 해 만에 빛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사람이 한국사람을 담은 사진책은 좀처럼 새로 나오지 않습니다. 앞으로 2070년을 맞이한다 할지라도 '2010년 한국사람 터전'을 되새기거나 돌아볼 만한 사진책이 한국사람 손에서 태어날 듯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2010.05.27 12:55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사진책 #사진읽기 #책읽기 #삶읽기 #사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서양에선 없어서 못 먹는 한국 간식, 바로 이것
  2. 2 생생하게 부활한 노무현의 진면모... 이런 대통령은 없었다
  3. 3 2030년, 한국도 국토의 5.8% 잠긴다... 과연 과장일까?
  4. 4 최저임금도 못 준다? 편의점 일이 만만합니까
  5. 5 일본인 1100만명이 시청한 한국 대통령의 TV토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