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가방을 내게 보여줘", 음란한 경찰 발상

[분석]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이 위험한 이유

등록 2010.06.04 11:56수정 2010.06.04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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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입니다. 지금 검문중인데 신분증 좀 보겠습니다."

길거리를 걸어가는데 경찰관이 다가와 이런 말을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십중팔구는 신분증을 꺼내어 경찰에게 보여줄 것이다. 어쩌면 경찰은 가방까지 보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경찰의 요구를 물리치고 제 갈 길을 계속 갔다고 치자. 경찰은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가까운 경찰서로 가서 말씀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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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경찰이 명동역 인근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돌아가는 시민을 불심검문하고 있다. ⓒ 최지용


경찰의 말투가 아무리 정중하다하더라도 부담스럽지 않을 사람, 없다. 이럴 땐 또 어떻게 해야 하나. 싫다며 거부해야 할까, 아니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으니 경찰의 말을 듣는 것이 나을까.

정답은 둘 다 "거절할 수 있다"이다. 불심검문은 대상자의 동의가 없다면 강제로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오해하지는 말라. 경찰의 협조 요청을 무조건 거부해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경찰이 "가까운 경찰서로 가자"고 한다면

정말로 그런가, 의심스럽다고? 그렇다면 법전을 한 번 들춰보자. 불심검문은 경찰관의 직무수행에 필요한 사항을 적어놓은 경찰관직무집행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법 3조(불심검문) 1항을 보자.


경찰관은 수상한 거동 기타 주위의 사정을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어떠한 죄를 범하였거나 범하려 하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 또는 이미 행하여진 범죄나 행하여지려고 하는 범죄행위에 관하여 그 사실을 안다고 인정되는 자를 정지시켜 질문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불심검문이란 수상한 사람을 정지시켜 질문하는 것을 말한다. 질문의 내용 중에는 흉기 소지 여부까지 포함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2가지, 불심검문의 방법은 정지시켜 질문하는 것뿐이고, 수상한 거동을 하지 않은 '선량한' 시민은 불심검문의 대상도 아니라는 사실.


물론, 질문을 하기 위해 경찰이 동행요구를 할 수는 있지만 그것도 "당해인(검문을 당하는 사람)에게 불리하거나 교통의 방해가 된다고 인정되는 때"에만 가능하며 그마저도 "동행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고 법에 나와 있다.  

만일 동의를 얻어 동행을 할 경우에도 6시간을 넘길 수 없고 가족에게 동행장소, 목적, 이유 등을 고지할 기회를 주어야 하며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점도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내용이 한 가지 더 있는데 이러한 불심검문 중에 "형사소송에 관한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신체를 구속당하지 아니하며, 그 의사에 반하여 답변을 강요당하지 않는다"(경찰관직무집행법 3조 7항)는 점이다.

불심검문은 강제처분이 아니므로 거절할 수 '있다'

결국 불심검문은 강제처분이 아니므로 경찰이 시민에게 협조 요청을 할 수는 있을지언정 강제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사람을 가두거나 물건을 뒤지는 등 물리력을 행사하려면 법원이 발부한 영장(체포, 구속, 압수, 수색영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이른바 영장주의이다.    

최근 인천지방법원(제3형사부)에서도 불심검문과 관련, 중요한 판결이 하나 있었다. 사건의 내막인즉 이렇다. 

A씨는 집 근처 술집에서 지인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다. 그후 자정을 조금 넘겨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집 근처에 다다랐을 무렵 길목을 지키고 검문을 하고 있던 경찰은 A씨에게 멈출 것을 요구했으나 그는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러자 또다른 경찰이 다시 다가와 경찰봉으로 A씨의 자전거를 가로막았다. 경찰은 "근처에서 자전거를 이용한 날치기 사건이 있었으니 검문에 협조해달라"고 재차 요구했으나 그는 "내가 늘 다니던 길이고 한 번도 검문을 받은 적이 없다"며 불응하였다.

경찰들은 또다시 A씨의 앞을 가로막았다. 더 이상 갈 수 없게 된 그는 범인 취급을 당한다고 느껴 거칠게 항의했다. 그 과정에서 경찰 1명과 실랑이가 벌어졌고 급기야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경찰은 공무집행방해죄 등의 현행범으로 A씨를 체포하기에 이르렀다.

A씨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벌금형의 약식명령을 받고 정식재판을 청구했으나 1심 법원도 공무집행방해, 상해 등의 죄를 인정, 벌금형을 선고했다. A씨는 또다시 항소하였다. 항소심에서 법원은 좀 더 신중하게 판단을 내렸다. 쟁점은 이날 경찰의 불심검문이 적법했느냐로 모아졌다.

법원 "불심검문 설득은 가능, 강요는 위법"

항소심 재판부는 "경찰들에게는 A씨가 날치기의 범인일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가능성을 제기할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인정된다"며 A씨를 불심검문의 대상으로 본 경찰의 행동에는 문제가 없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A씨가 불심검문에 응하지 않으려는 의사를 분명히 하였음에도, 가지 못하게 하면서 계속 검문에 응할 것을 요구한 행위는 언어적 설득을 넘어선 유형력의 행사로 답변을 강요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결국 "이날 경찰의 행위는 불심검문의 방법적 한계를 일탈한 것이고 A씨는 위법한 불심검문으로 인한 신체에 대한 부당한 침해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저항하는 과정에서 상해를 입혔으므로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결론지었다.

이 판결을 통해 법원은 불심검문의 한계를 분명히 짚었다. 즉, 불심검문 과정에서 답변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시민에게 협조하여 줄 것을 설득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수갑을 채우거나 △신체를 잡거나, △자동차·자전거 등이 진행할 수 없도록 강제력을 사용하여 막거나 △소지품을 돌려주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상대방이 그 장소를 떠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사실상 답변을 강요하는 것이 되므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A씨는 지난 4월 30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현재까지 재판 진행을 볼 때 법원은 불심 검문 과정에서 수사의 편의보다는 시민의 권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사건은 또다시 검사가 상고하여 현재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앞두고 있다.

트렁크 열고, 신분증 보고...개정안, 경찰 권한만 강화?

그런데, 최근 국회에서 경찰관직무집행법을 개정하여 불심검문을 정비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얼마전 행정안전위에서 의결된 법 개정안은 불심검문이란 용어를 '직무질문'이란 용어로 순화한 것을 빼면 경찰의 검문 권한이 대폭 강화된 인상을 준다.

새로 신설된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개정안은 △불심검문을 절차에 따라 직무질문, 신원확인, 동행요구로 세분화하고 대상자의 신분증 제시 요구를 명문화했다. 또한 △대상자의 신원확인이 곤란한 경우 연고자에게 연락을 하거나 지문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도 새로 마련했다.

또한 개정안은 △질문시 흉기 소지 여부만를 조사할 수 있었던 것을 무기, 흉기, 그밖의 위험한 물건의 소지여부까지 조사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뿐 아니라 경찰이 범인 검거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차량·선박 등을 정지시켜 운전자나 탑승자에게 질문할 수 있고, 무기, 흉기, 마약 등 공공의 안전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물건의 적재 여부를 조사할 수 있게 했다.

개정안대로 한다면 경찰의 신분증 제시를 거절할 경우, 가족에게 연락할 수 있고 심지어는 지문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도 있게 된다. 또한 경찰은 압수수색 영장 없이도 위험한 물건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시민의 가방을 열어달라고 할 수도 있고, 범인을 검거한다는 명목으로 지나가는 자동차를 붙잡고 트렁크를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합법적으로 가능하다. 단적인 예로, 앞에서 소개한 A씨의 경우도 개정안을 적용한다면 무죄가 나올 수 있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인권위도 "영장없는 압수수색, 강제 신원확인...보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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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인권위는 평택 일대 무차별 불심검문과 외지인 출입금지는 인권침해라며 경기지방경찰청장에게 개선을 권고했다. 사진은 브리핑 중인 손심길 인권위 침해구제 본부장. ⓒ 이철우


이런 문제점 때문에 국가인권위원회도 이번 개정안이 "영장주의,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인권침해 소지가 많으므로 (불심검문이) 강제절차가 아니라 임의절차임을 명백히 하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국회의장에게 표명한 상태다. 개정안이 사실상 영장없는 압수수색과 강제적인 신원확인 절차를 허용하므로 시민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인권위의 입장이다.   

일부에서는 갈수록 흉악범죄가 늘어나는 판국에 경찰이 수사에 어려움을 겪어선 안 된다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범인을 잡는다는 이유로 일상적으로 사생활 침해를 남발하고 헌법이 보장하는 '영장주의'를 거스른다는 비판을 받는 법을 만들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경찰의 수사 편의가 우선이냐, 시민의 권리 보호가 우선이냐를 놓고 생각해보자. 일반 시민들이 법 개정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회는 법 개정안이 경찰을 위한 법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경찰관의 직권은 직무수행에 필요한 최소한도내에서 행사되어야 하며 이를 남용하여서는 아니된다"는 법의 취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불심검문 #영장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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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법원공무원(각종 강의, 출간, 기고) 책<생활법률상식사전> <판결 vs 판결> 등/ 강의(인권위, 도서관, 구청, 도청, 대학에서 생활법률 정보인권 강의) / 방송 (KBS 라디오 경제로통일로 고정출연 등) /2009년,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jundorap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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