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71) 세분화

[우리 말에 마음쓰기 936] '기능별로 세분화된 하위 기구' 다듬기

등록 2010.07.05 16:41수정 2010.07.05 16:41
0
원고료로 응원
- 세분화되다

.. 공동체의 관리 업무를 총괄하는 본부나 전문성을 갖춘 집행부가 없으며, 기능별로 세분화된 하위 기구나 조직도 없다 ..  <임세근-단순하고 소박한 삶, 아미쉬로부터 배운다>(리수,2009) 104쪽


"공동체의 관리 업무(業武)를 총괄(總括)하는 본부(本部)"는 "공동체 관리를 도맡는 곳"이나 "공동체를 다스리는 곳"으로 다듬어 봅니다. '기능별(-別)'은 '기능에 따라'나 '기능에 맞게'나 '구실에 따라'로 손보고, '하위(下位)'는 '작은'이나 '자잘한'이나 '또 다른'으로 손봅니다.

 ┌ 세분화(細分化) : 사물이 여러 갈래로 자세히 갈라짐
 │   - 업무의 세분화가 이루어지다 / 교육 목적의 세분화가 필수적이다
 │     사회 계층이 세분화되다 / 업무 영역이 세분화되다
 │     사람들의 욕구가 갈수록 세분화하고 다양해져 간다 / 등급을 세분화하다
 │
 ├ 기능별로 세분화된
 │→ 기능에 따라 나뉜
 │→ 기능에 따라 낱낱이 나뉜
 │→ 하는 일에 따라 나누어 놓은
 │→ 맡은 일에 따라 짠
 │→ 일거리에 따라 엮은
 └ …

"자세(仔細)히 갈라"진다는 뜻으로 쓰는 '-化'붙이 말마디 '세분화'입니다. 그래서 '자세하다'가 무엇을 뜻하는가 궁금하기에 국어사전을 다시 뒤적입니다. '자세하다'란 "사소한 부분까지 아주 구체적(具體的)이고 분명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국어사전을 다시 뒤적여 '구체적' 말뜻을 알아보니 "실제적이고 세밀(細密)한 부분까지 담고 있는"이라 합니다. 그래, 이번에는 '세밀'이 무엇인지를 헤아려야 하므로 또다시 국어사전을 뒤적이는데, '세밀하다' 뜻풀이는 "자세하고 꼼꼼하다"로 되어 있습니다.

'세분화'에서 비롯한 국어사전 뒤적이기는 '자세'를 거치고 '구체적'을 돈 다음 '세밀'을 지나 '자세'로 돌아옵니다. 이런 국어사전 말풀이라 한다면 '세분(세분화)-자세-구체적-세밀' 모두 제대로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아니, 이러한 한자말들은 쓰임새이며 뜻풀이이며 옳게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런 한자말이건 저런 한자말이건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습니다. 뜻풀이가 두루뭉술할 뿐 아니라 돌림풀이로 되어 있어도 그다지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며 널리 쓰고 있습니다.


 ┌ 업무의 세분화가 이루어지다
 │→ 일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놓다
 │→ 일을 낱낱이 나누어 놓다
 │→ 일이 하나하나 나누어지다
 ├ 교육 목적의 세분화가 필수적이다
 │→ 교육 목적을 잘게 나누어야 한다
 │→ 교육 목적을 낱낱이 나누어야 한다
 │→ 교육 목적을 갈래에 따라 나누어야 한다
 ├ 사회 계층이 세분화되다
 │→ 사회 계층이 나누어지다
 │→ 사회 계층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다
 │→ 사회 계층이 여럿으로 갈라지다
 └ …

국어사전에 실린 다른 보기글을 돌아봅니다. '세분화'라는 말마디가 쓰인 자리를 살피면서 이 말마디가 어떤 뜻 어떤 느낌 어떤 이야기를 가리키는 자리에 들어갔는가를 헤아립니다.


먼저, "업무의 세분화"를 들여다보면 "갈래에 따라 나눔"이나 "갈래에 따라 낱낱이 나눔"이나 "갈래에 따라 하나씩 나눔"이나 "갈래에 따라 여러모로 나눔"을 가리킵니다. 다음으로, "교육 목적의 세분화"를 살펴보면 "교육 목적을 낱낱이 나눔"이나 "교육 목적을 갈래에 따라 나눔"이나 "교육 목적을 꼼꼼히 나눔"을 가리킵니다. 이 다음으로 "사회 계층이 세분화"를 곱씹으면 "사회 계층이 나누어짐"이나 "사회 계층이 여러 갈래로 나누어짐"이나 "사회 계층이 여럿으로 갈림"이나 "사회 계층이 따로 나누어짐"이나 "사회 계층이 이모저모 나누어짐"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굳이 '세분 + 화' 같은 말마디를 쓰지 않아도 우리 뜻과 느낌과 이야기를 알맞게 나타내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예부터 우리 뜻을 북돋우는 알맞춤한 말마디를 이어왔고, 우리 느낌을 슬기롭게 담아내는 말틀을 갈고닦았으며, 우리 이야기를 살뜰히 주고받는 말결을 보듬고 있던 셈입니다. 다만, 이러한 우리 말마디와 말틀과 말결을 제대로 어루만지거나 붙잡는 사람이 드물었다고 해야 할까요. 우리 스스로 우리 말삶을 가꾸지 못했다고 할까요. 우리 손으로 우리 말힘을 키우지 않았다고 할까요.

 ┌ 업무 영역이 세분화되다
 │→ 맡은 일이 잘게 나뉘다
 │→ 맡는 일이 낱낱이 갈리다
 ├ 사람들의 욕구가 갈수록 세분화하고 다양해져 간다
 │→ 사람들 욕구가 갈수록 늘어나고 넓어져 간다
 │→ 사람들은 갈수록 더 많이 더 넓게 바라고 있다
 ├ 등급을 세분화하다
 │→ 등급을 잘게 나누다
 │→ 등급을 촘촘히 가르다
 └ …

우리 말이라고 더 뛰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말이기에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우리 말만 남다르거나 빼어나지 않습니다. 프랑스 사람한테는 프랑스 말이 가장 아름다우며 좋습니다. 콩고사람한테는 콩고말이 가장 멋스러우며 즐겁습니다. 일본사람한테는 일본말이 가장 고우며 빛납니다. 미얀마사람한테는 미얀마말이 가장 알차며 반갑습니다.

우리가 쓰는 우리 말은 우리 터전에 발판을 두며 우리 삶에서 비롯합니다. 이 땅에서 어깨동무하는 서로서로 즐거이 나눌 만한 말이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누구나 오붓하게 주고받을 만한 말입니다. 두루뭉술할 수 없는 우리 말이며, 돌림풀이를 하며 엉성하게 말풀이를 달 수 없는 우리 말입니다.

이 땅 누구한테나 가장 손쉬우며 살가울 우리 말입니다. 우리 겨레붙이 모두한테 가장 어여쁘며 기쁠 우리 말입니다. 지식을 담거나 다루는 우리 말은 아닙니다. 지식을 보여줄 수는 있으나 지식을 뽐내지 않을 우리 말입니다. 사랑을 담고 믿음을 싣는 우리 말입니다. 눈물이 깃들고 웃음이 서린 우리 말입니다. 학벌이나 권력이나 명예가 들러붙을 수 없는 우리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쓰는 말을 옳고 바르게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나누는 글을 참되고 착하게 보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껍데기 말이 아닌 속 알맹이 말을 찾을 노릇입니다. 겉치레 글이 아닌 속가꿈 글을 즐길 일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화 #외마디 한자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 문자, 여론조작 의혹으로 불똥? 이준석 "댓글팀 용어 신기"
  2. 2 섭지코지 한가운데 들어선 건물... 주민들이 잃어버린 풍경
  3. 3 '급발진'처럼 보였던 아버지의 교통사고, 알고 보니
  4. 4 '우천시' '중식' '심심한 사과' 논란, 문해력만 문제일까요?
  5. 5 월급 37만원, 이게 감사한 일이 되는 대한민국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