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왕과 같은 존재
.. 시타델산은 다른 산과 비교가 되지 않는, 왕과 같은 존재였다 .. <제임스 램지 울만/김민석 옮김-시타델의 소년>(양철북,2009) 74쪽
"비교(比較)가 되지 않는"은 "견줄 수 없는"이나 "댈 수 없는"으로 다듬습니다. "한 자리에 놓을 수 없는"이나 "나란히 놓을 수 없는"으로 다듬어도 어울리고, "사뭇 다른"이나 "-보다 훨씬 거룩한"이나 "-보다 몹시 우람한"으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왕(王)'은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임금'이라는 토박이말이 있습니다.
┌ 왕과 같은 존재였다
│
│→ 임금과 같은 산이었다
│→ 임금과 같은 봉우리였다
│→ 임금과 같은 곳이었다
│→ 임금님과 같았다
│→ 임금님과 다를 바 없었다
└ …
산이면 다 같은 산이지, 더 높거나 거칠거나 오르기 힘들다고 해서 한결 우뚝 솟았다든지 임금과 같은 산이라든지 일컬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산은 스스로 내가 임금이요 네가 임금이라는 금긋기를 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낮은 산도 산이요 높은 산도 산이며, 낮거나 높거나를 떠나 뭇 목숨을 고이 껴안으며 보듬는 너른 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들은 산높이를 잽니다. 무슨무슨 산이 가장 높다고 차례를 매기고, 높거나 거친 산 꼭대기까지 하나둘 밟아야 비로소 대단한 일을 한 듯 여깁니다. 높은 산 꼭대기에서 뿌리를 내리며 살아갈 마음이 아니면서 그예 오르고 다시 오릅니다. 삶을 꾸리는 곳이 아니라 올랐다가 내려와야 하는 곳으로 산을 바라봅니다. 이렇기 때문에 산에 굴을 내고 한켠을 깎아 길을 닦으며 아파트까지 때려지을 테지요. 산을 산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니 산을 산 그대로 아낄 줄 모르고, 산을 산 그대로 아낄 줄 모르는 우리들 매무새인 탓에 사람을 사람 그대로 마주하며 아낄 줄 모릅니다. 이리하여 우리들 서로서로 나누는 말마디를 말마디 그대로 헤아리면서 아낄 줄 모릅니다.
자연을 아낄 줄 모르며 사람을 아낄 줄 모르고, 사람을 아낄 줄 모르면서 삶을 아낄 줄 모르다가는, 삶을 아낄 줄 모르는 이음고리는 말을 아낄 줄 모르는 데로 이어집니다.
┌ 가장 우뚝 솟은 산이었다
├ 가장 거룩한 산이었다
├ 더없이 우뚝 솟은 곳이었다
├ 더없이 거룩한 곳이었다
└ …
보기글을 생각해 봅니다. "시타델 산은 다른 산과 견줄 수 없는 임금님 같은 곳이었다"는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시타델 산은 다른 산들과 견주어 더없이 거룩한 곳이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자말 '존재'를 빌어 가리키는 셈이고, 이렇게 풀어 적는 말마디로 시타델이라고 하는 산이 얼마나 거룩한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합니다. 이 보기글은 영어를 우리 말로 옮겼는데, 한글로 적힌 "왕과 같은 존재였다"를 영어로 옮기거나 "임금과 같았다"나 "임금과 같은 산이었다"를 영어로 옮긴다면 어떻게 될는지 궁금합니다. '사람'을 영어로 옮길 때하고 '인간'을 영어로 옮길 때는 어떻게 될는지 궁금합니다. '하나'와 '일'은 달리 옮길는지요? '일'과 '노동'과 '근로'는 어떻게 옮길는지요? '책'과 '서적'은 어떻게 옮길까요? '사다'와 '구입하다-구매하다'는 다르게 옮길까요? '책읽기'와 '독서'는 어떻게 옮기려는지요?
오늘 우리가 쓰는 말을 곰곰이 돌아본다면, 우리는 껍데기는 한글이지만 속알맹이로는 참다운 우리 말을 한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겉으로야 다 우리 말과 우리 글이라지만, 속으로는 거짓스러운 우리 말이거나 뚱딴지 같은 우리 글이라 할 만하다고 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빛을 뽐내지 못하고, 우리 스스로 우리 글빛을 살리지 못한다고 봅니다. 우리는 겉모습으로는 한국사람이라 하여도 속삶으로는 한국사람이 아니며, 이제는 우리 겉모습조차 뜯어고쳐서 한국사람 아닌 서양사람이나 미국사람으로 바꾸고 있는 가운데 우리들 주고받는 말과 글 또한 우리 말글이 아닌 어설프고 엉뚱한 말글로 팔아치우고 있습니다.
ㄴ. 다소 두려운 존재
.. 당시 걔 아버지는 군산 경찰서장으로, 우리 아버지 같은 농사꾼에게는 다소 두려운 존재였다 .. <김수미-그리운 것은 말하지 않겠다>(샘터,1987) 22쪽
'당시(當時)'는 '그때에'나 '그무렵에'로 다듬습니다. '다소(多少)'는 '적잖이'나 '적이'나 '무척'이나 '제법'이나 '몹시'나 '대단히'로 손질해 줍니다. "우리 아버지" 같은 말투는 참으로 잘 적었습니다.
┌ 다소 두려운 존재였다
│
│→ 적잖이 두려운 사람이었다
│→ 적이(저으기) 두려운 권력자였다
│→ 무척 두려운 분이었다
└ …
농사꾼이 두렵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농사꾼하고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농사꾼을 밟고 서 있는 사람이거나 농사꾼을 누르고 있는 사람이거나 농사꾼을 괴롭히는 사람이거나 농사꾼을 못살게 구는 사람입니다.
농사꾼한테 살갑게 구는 사람이 아니기에 두렵습니다. 농사꾼을 따스하게 어루만지거나 스스럼없이 어깨동무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두렵습니다. 농사꾼과 기꺼이 손을 맞잡는 사람이 아니라면 두렵습니다.
농사꾼을 얕본다든지 깔본다든지 한다면 두렵습니다. 농사꾼을 하찮게 본다든지 농사꾼을 같잖게 본다면 두렵습니다. 이리하여, 이토록 두려운 사람들은 '권력자'이기 일쑤요, '기득권'이기 마련입니다.
┌ 몹시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 아주 두려울밖에 없었다
├ 꽤나 두려웠다
└ …
사람과 사람 사이를 헤아릴 때에, 내가 너한테 남들이 나한테 막하거나 함부로 할 까닭이란 없습니다. 잘난 사람 없고 못난 사람 없는 만큼 서로서로 사이좋게 지낼 노릇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사람을 사람으로 마주하지 못합니다. 사람 아닌 돈을 먼저 보고 얼굴을 먼저 보며 이름값을 먼저 봅니다. 사람 마음결과 사람 생각밭과 사람 넋이나 얼을 보지 못합니다. 착한 마음과 고운 넋을 보면서 기쁘게 마주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울 텐데, 따순 사랑과 맑은 얼을 보면서 즐거이 어깨를 겯는다면 그지없이 빛날 텐데, 자꾸자꾸 좋은 길하고는 멀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좋은 길하고는 멀어지기 때문인지, 우리 스스로 좋은 삶하고 가까워지지 못하고, 좋은 삶하고 가까워지지 못하는 동안 좋은 말하고 가까워지지 못합니다. 아니, 사람들 스스로 좋은 길 삶 말을 가까이 하려고 마음쓰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8.04 10:24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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