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용 위장전입'은 봐주자고요?

[取중眞담] 실제 거주자에 대한 권리침해, 후보자 사퇴가 도리

등록 2010.08.19 09:36수정 2010.08.19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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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를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서울대 합격자를 많이 배출하는 학교 바로 옆에 이사를 왔는데도 자녀가 엉뚱한 학교에 배정받은 학부모들은 이제 그 이유를 이해할 것이다. 위장전입이란 편리한 방법으로 같은 목적을 이룬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말이다.

위장전입이란 전입신고하는 지역에 실제로 살지도 않으면서 허위로 전입신고를 해 서류상으로는 그 곳에 거주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것을 말한다. 목적은 해당 주소지에 거주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혜택이나 자격을 얻기 위한 경우가 많다.

주민등록법을 엄연히 위반한 불법행위이지만, 위장전입 행위로 얻을 수 있는 혜택은 다양하다. 농지법의 '농사 짓는 자가 논밭을 소유한다'는 원칙을 피해 농지를 살 수도 있고, 해당 지역 거주자에게 우선권이 주어지는 아파트 분양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물질적 이득이 생기는 혜택보다 더 광범위하게 위장전입이 실행에 옮겨지는 분야가 있으니, 바로 '자녀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이다.

좋은 학교가 있는 지역에 살지 않는 사람이라도 해당 지역으로 전입신고만 하면 좋은 학교 배정을 노려볼 수 있다. 집을 사거나 임대해서 이사할 필요가 없는 참 편리한 방법이다. 

실제 이런 방법이 광범위하게 쓰였다는 것은 새 내각 장관들에 대한 인사청문회 때마다 '자녀교육을 위한 위장전입' 사실이 줄줄이 드러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977년부터 1991년까지 세 자녀의 초·중학교 배정을 위해 5번의 위장전입을 했다. 이만의 환경부 장관, 현인택 통일부 장관, 이귀남 법무부장관, 김준규 검찰총장이 '자녀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이 드러났지만 묵묵히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위장전입 의혹을 받고 있는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 이현동 국세청장 후보자(왼쪽부터). ⓒ 오마이뉴스·뉴시스


이번 개각에 이어지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는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 이현동 국세청장 후보자,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의 '자녀교육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나고도 직무를 계속 이어가고 있는 고위 공직자들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자녀교육 위장전입'에 대해서는 관대한 잣대가 적용되고 있는 듯하다. 청와대도 이번 개각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후보자들의 위장전입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대목에서는 청와대가 '자녀교육 위장전입'에 대해서만큼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여론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워낙 많은 공직 후보자들의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나 다소 둔감해진 탓도 있겠지만 특히 '자녀교육 위장전입'의 경우에 대해선 더 그렇다.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교육열과 '맹모삼천지교'를 부모의 당연한 도리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 탓에 '부모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쯤으로 여겨지고 있는 듯하다.

불법행위로 타인권리 가로챈 행위, 인정하고 물러나는 것이 도리

그러나 문제는 이런 '자녀교육 위장전입' 행위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자녀교육 위장전입'을 실행하는 이들이 많을수록, 좋은 학교에 배정받기 위해 실제 이사를 하거나 이미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서울대학교 합격자를 많이 배출하는 강남권(2008년 서울대 신입생 중 강남·서초·송파·강동구 출신자의 비율은 35.5%)으로 오면, 위장전입자가 실제 거주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도는 더욱 커진다.

강남권의 집값과 임대료가 높은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좋은 학군'이다. 자녀를 좋은 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해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데, 자신의 자녀는 좋은 학교에 배정 받지 못한 반면 '자녀교육 위장전입'을 통해 목적을 이룬 이가 있다면 좌절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높은 비용을 들여 잡으려 한 기회를, 불법 행위를 통해 가로채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이렇게 발생한 '피해'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잘 느껴지지도 않는다. 학교 배정이 결국은 추첨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에 집 근처 좋은 학교에 배정되지 않은 이유는 '운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으로 흘러가기 십상이다. 그러나 '집 근처 좋은 학교 추첨에 떨어진 학생'이 있고, '위장전입으로 좋은 학교에 배정받은 학생'이 분명히 존재하는 만큼 위장전입자에 의한 피해자도 반드시 존재한다. 

'자녀교육 위장전입'이 워낙 광범위하고도 공공연히 이뤄진 탓에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안하면 바보'라는 생각으로 불법행위란 점을 애써 외면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앞으로 법치주의를 수없이 외쳐대야할 한국 정부 고위 공직자가 될 사람이라면 '자녀교육 위장전입'이 타인에게 끼친 손해를 인정하면서 후보자직을 사양하는 게 도리 아닐까.
#위장전입 #자녀교육 #인사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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