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잃은 딸아이가 아빠를 기다립니다

집도 팔고 고국도 떠나며 치료하려 했던 딸 두고 사라진 통가

등록 2010.09.01 14:25수정 2010.09.01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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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중순 수염을 깎지 않은 초췌한 얼굴에 쉰 목소리로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던 통가(가명)는 자식을 위해 목숨이라도 내던질 것 같은 아버지의 간절한 소망을 전하고 있었다. 당시 통가는 한국에 온 지 일 년이 조금 넘은 상태였는데, 고향 몽골에서 딸아이 치치게(가명)의 발이 썩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통가는 몽골에서 당장 다리를 잘라야 한다는 말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리를 절단하지 않고 치료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안고 지난 3월 말에 딸아이와 부인을 한국으로 데려왔다. 러시아에서 국비 유학생으로 3년을 살았다는 통가는 몽골에서는 중산층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딸 아이 치료를 위해 몽골 울란바토르에 있던 집까지 팔며 모든 삶의 기반을 포기해야 했다.

 

그렇게 하여 한국에서 병상 생활을 시작했던 통가의 딸 치치게는 입국한 지 다섯 달 만인 8월 31일 몽골로 돌아갔다. 유감스럽게도 완치된 다리를 갖고 간 것이 아니라, 절단된 다리와 항암치료 중 발생했던 심정지로 인한 뇌기능 손상을 안고 출국해야 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아이의 아빠 통가는 보이지 않았다.

 

집도 팔고 고국도 떠나면서 치료해 보려 했던 통가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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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에 누워있는 치치게 다섯 달 간의 한국에서의 병상생활을 마무리하고 31일 귀국했다. ⓒ 고기복

▲ 병상에 누워있는 치치게 다섯 달 간의 한국에서의 병상생활을 마무리하고 31일 귀국했다. ⓒ 고기복

 

아이가 앓고 있는 병은 골수육종이었다. 처음 병원에 입원할 때에는 열흘 정도의 항암치료 후, 주기적인 약물 치료를 위해 십여 개월 동안 입·퇴원을 반복하며 치료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입국 당시 너무 많이 진행된 암으로 인해 체력이 소진됐던 치치게의 암 세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절단 밖에는 방법이 없었고, 결국 한 쪽 다리를 절단했다.

 

그 후 치치게는 생사를 넘나들며 한동안 응급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해야 했다. 다리 절단 이후 한 달이 지나면서 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술 이후 심정지를 경험했던 치치게의 두 손은 오그라들어서 계속해서 물리치료를 해줘야 하고, 눈동자는 앞에서 누군가 손가락을 움직여도 따라오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다리를 절단한 이후, 치치게는 코로 식사를 하고, 매일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다. 집을 팔고, 안정적인 직장이 있는 고국을 떠나 어떻게든 치료해 보려 했던 통가의 그간 노력이 물거품이 됐지만, 그는 아이가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통가는 병원에서 만날 때마다, "많이 좋아졌어요. 조금만 더 있으면 괜찮아질 것 같아요"라며 사랑스런 눈길로 딸아이의 오그라든 손가락을 펴곤 했었다. 그러던 그가 3주 전에 사라졌다는 연락이 왔다. 연락이 끊긴 지 사흘이 넘었다고 했다. 전화를 아무리 하고 문자를 보내도 응답이 없었다.

 

마침 그때는 병원에서 아이의 퇴원 준비를 하라는 말이 나오고 있을 때였다. 환자의 퇴원을 앞두고 보호자가 사라져 버린 셈이었다. 병원에서는 입원 당시 보증을 섰다는 이유로 나에게 보호자의 행방을 물었지만,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어떤 이는 병원비 때문에 도망갔다고 말을 하지만, 내가 알기로 병원에서는 보증인인 나에게 그간 병원비가 얼마 나왔다고 말한 적은 있어도, 통가에게 직접 병원비를 요구한 적은 없었다.

 

한 쪽 다리를 잃은 아이가 아빠까지 잃지 않기를...

 

통가의 행불이 길어지자 치치게와 그 가족을 위해 모금 운동을 하고, 매일 같이 병상을 방문하던 사람들로부터 그에 대한 원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아이가 저 모양인데 제 자식 버려두고 도망가다니 말이 돼? 사람 참 성실하다고 봤는데, 사람 잘못 봤어."

 

통가와 연락이 끊기고 난 후 여러 가지 풍문이 돌기 시작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르지만, 그동안 봐 왔던 성실하고, 인자하며 책임감 있는 치치게의 아버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보아왔던 통가는 조창인의 <가시고기>에서 보았던 아이 아빠와 다를 바 없이 자식에게 헌신적이었기 때문이다.

 

퇴원 수속을 하기에 앞서 통가에게 핸드폰으로 전화하기를 수십 번을 반복하고, 문자를 보냈다지만 무슨 일 때문인지 몰라도 통가로부터 연락은 오지 않았다.

 

희망을 품고 한국에 왔던 치치게와 그 엄마는 이제 한 쪽 다리만 잃은 것이 아니라, 아빠까지 잃을지 모른다. 아니면 먼 길 떠나는데 잘 가라는 뽀뽀도 한 번 못하고 떠나보낸 아이를 생각하며, 아빠는 어디선가 눈물 흘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통가가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

2010.09.01 14:25 ⓒ 2010 OhmyNews
#몽골 #이주노동자 #소아암 #아빠 #가시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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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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