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일본영사관에서 첫 신문을 받다

[영웅 안중근 32] 넷째 마당 - 뤼순 앞바다를 물들인 장엄한 낙조

등록 2010.11.01 08:48수정 2010.11.17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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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과 경술국치 100년을 앞두고, 우리 근현대사에 가장 위대한 애국자 안중근 의사의 유적지인 러시아 크라스키노,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포브라니치나야, 중국 쑤이펀허, 하얼빈, 지야이지스고(채가구), 장춘, 다롄, 뤼순 등지를 지난해 10월 26일부터 11월 3일까지 아흐레간 답사하였습니다. 귀국한 뒤 안중근 의사 순국날인 2010년 3월 26일에 맞춰 눈빛출판사에서 <영웅 안중근>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습니다.

2010년 경술국치 100년에 즈음하여 <영웅 안중근>의 생애를 다시 조명하는 게 매우 의미 있는 일로 여겨져, 이미 출판된 원고를 다소 손보아 재편집하고, 한정된 책의 지면 사정상 미처 넣지 못한 숱한 자료사진을 다양하게 넣어 2010년 11월말까지 43회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 기자말


[제8일 2009년 11월 2일]

 창춘~다롄 열차표
창춘~다롄 열차표박도
02: 00, 잠이 설핏 깼다. 다롄 행 특급열차는 쾌속으로 요동반도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커튼을 젖히고 밖을 내다보았으나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아직도 지린성인지, 그새 랴오닝성으로 접어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웬만한 역들은 대부분 통과라 역 이름을 확인할 수가 없으니 지도도 무용지물이었다. 하기는 그 지명을 굳이 알아서 무엇 하겠는가.

무척이나 먼 여정이다. 비행기를 타면 몇 시간에 닿을 수 있는 길이지만 나는 나흘째 열차를 밤낮으로 타고 달리고 있다. 안중근 의사도 이 길을 이대로 달렸을 것이다. 100년 전 그때는 증기기관차로 열차의 속도가 지금보다 훨씬 느렸을 테지만 아마도 안 의사는 우국충정으로 지루한 줄도 몰랐으리라.

안중근 행장 (19)


1910년 10월 26일 저녁 8시 무렵, 일본 측의 강력한 요구로 러시아 검찰관이 안중근을 직접 호송하여 하얼빈 일본총영사관에 인도했다. 일본총영사관 측은 안중근을 인도 받아 곧 지하 감방에 유치했다.

 일본총영사관 지하감방, 지금은 화원소학교 부속실로 쓰고 있다는데 답사한 날이 토요일이라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에서 보는 걸로 만족해야했다. 지하감방을 증언하는 이는 하얼빈 역사학자 김우종 선생이다.
일본총영사관 지하감방, 지금은 화원소학교 부속실로 쓰고 있다는데 답사한 날이 토요일이라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에서 보는 걸로 만족해야했다. 지하감방을 증언하는 이는 하얼빈 역사학자 김우종 선생이다.박도

이튿날(10월 27일) 오후 4시 무렵, 하얼빈 김성백 집에 정대호 일행 아홉 명이 현관문을 두드렸다. 쑤이펀허의 청국세관주임 정대호는 1910년 10월 23일 진남포를 출발하여 4박5일의 긴 여로 끝에 하얼빈에 도착한 것이다. 그의 가족인 처와 어머니, 두 아들과 사촌 정시우 그리고 안중근에게 부탁받은 안중근의 처 김아려와 두 아들 등이었다. 곧 러시아 헌병이 나타났다.


안중근의 처 김아려와 두 아들

"무슨 일로 이 집을 찾아왔나?"
"나는 청국세관관리 정대호요. 휴가를 받아 한국에 가서 가족을 데리고 쑤이펀허로 가는 길에 여기를 들렀소."
"김성백과는 이전부터 아는 사이인가?"
"그렇소."
"그렇다면 안응칠과도 아는 사이인가?"
"도대체 무슨 일이오?"

"어제 하얼빈 역에서 안응칠이 일본에서 온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사살하고,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소."
"네!?"
"데리고 온 사람은 누고요?"
"나의 어머니와 처, 그리고 두 아들, 여동생, 여동생의 두 아들, 그리고 나의 사촌이오."
순간 정대호는 기지를 발휘하여 안중근의 처 김아려를 여동생으로 만들었다. 
"그러면 남자 두 명은 연행할 테니 여자와 아이들은 이 집에 남아도 좋소."

 안중근의 처 김아려와 두 아들(장남 분도와 차남 준생).
안중근의 처 김아려와 두 아들(장남 분도와 차남 준생).눈빛<대한국인 안중근>

러시아 관헌은 정대호와 정서우를 강제로 연행하였다.

1909년 10월 28일, 러시아 관헌은 안중근 외 연루자 14명도 이 날까지 일본총영사관에 인도하였다. 인도자는 안중근(31세), 우덕순(32세), 조도선(36세), 유동하(17세), 정대호(34세, 쑤이펀허 청국세관주임 안중근의 친구), 정서우(20세, 정대호 사촌), 김성화(19세, 김성백 셋째 여동생), 김성옥(48세, 하얼빈에서 약국경영), 탁공규(34세, 하얼빈에서 약국 경영), 김형재(20세, 하얼빈 동흥학교 교사 및 <대동공보> 통신원), 홍청준(37세, 하얼빈 한인회 회계원), 김려수(29세, 하얼빈 한인회 회계원), 장수명(32세, 하얼빈 한인회 회원), 김택신(42세, 하얼빈 한인회 회원), 이진옥(39세, 하얼빈 한인회 회원) 등이었다.

 안중근을 신문한 검찰관 미조부치 다카오
안중근을 신문한 검찰관 미조부치 다카오눈빛<대한국인 안중근>
1909년 10월 30일, 안중근은 관동도독부 고등법원검찰관 미조부치 다카오에게 신문을 받았다.

미조부치 다카오는 '이토 히로부미 사건'의 담당검사로서 뤼순에서 하얼빈에 급파되었다.

그는 1899년 동경제국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사법관 시보로서 동경지방재판소 검사국에 들어갔다가 1908년 9월 관동도독부 고등법원에 부임하여 뜻밖에 큰 사건을 맡게 되었다.

- 사키류조 <광야의 열사 안중근> 160쪽~168쪽 발췌 요약정리
#안중근 #미조부치 다카오 #일본영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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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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