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겉표지
작가정신
와카타케 나나미의 1999년 작품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이 바로 이런 코지 미스터리다. 작품의 무대는 '하자키'라는 가상의 해안도시다. 이 도시의 해안가에 '빌라 하자키 매그놀리아'라는 이름의 빌라가 열 채 들어서 있다. 이 빌라들은 모두 크기와 내부구조가 동일하다.
뒤쪽의 산을 배경으로 이 열 채의 빌라는 다섯 채씩 두 줄로 바다를 향해서 세워져 있다. 그야말로 배산임수(背山臨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빌라다. 이 열 채의 빌라 중에서 3호 빌라만 비어있고 나머지 집에는 모두 사람들이 살고 있다. 빌라 위쪽의 대저택에는 하드보일드 추리작가가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빌라에는 성별과 나이가 다양한 사람들이 입주해 있다. 이혼한 젊은 여자가 혼자서 사는가 하면, '호모'라는 놀림을 받으며 미혼 남성 두 명이 한 빌라에 같이 살기도 한다. 어떤 빌라에는 은퇴한 늙은 부부가 여생을 보내고 있고 또 다른 빌라에는 남편을 잃은 여자가 쌍둥이 자매를 키우면서 지낸다.
도심에서 뚝 떨어진 해안가에 위치한 빌라인 만큼, 이들은 모두 서로 안면을 트고 만날 때마다 인사하면서 지낸다. 겉으로는 평온하고 사이 좋아보이지만 빌라의 구성원들 사이에도 알게 모르게 알력과 갈등이 있다. 그중에는 구성원의 리더가 되지 못해서 안달인 사람도 있고 어딜가나 말썽을 일으키는 트러블메이커도 있다. 부인 몰래 바람을 피우는 남편, 친구 관계 이상으로 발전되어가는 젊은 남녀 커플도 있다.
사건이 발생한 때는 10월 초, 비어있는 3호 빌라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젊은 남성의 시체라는 것은 분명한데 얼굴과 손가락이 모두 짓이겨져 있어서 신원 확인이 어렵다. 시체가 발견되자 빌라의 주민들은 우왕좌왕한다. 가위바위보를 통해서 누가 경찰서에 연락할지 정하고, 신고를 한 사람은 우스꽝스럽게 횡설수설을 해서 전화 받은 순경을 곤혹스럽게 한다.
형사들이 파견되고 사건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도 마찬가지다. 일단 시체의 신원을 알아야 수사의 첫걸음을 뗄텐데, 그 신원파악이 좀처럼 안 된다. 탐문수사도 별 성과가 없다. 주민들은 협조하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를 한두 가지씩 숨기고 있다. 나이 어린 쌍둥이 자매는 형사가 질문을 하자 자기들끼리 선문답 같은 대화를 주고 받는다. 시체가 발견된 경위를 묻는 자리에서 한 여자는 정어리와 고등어자반 얘기를 꺼내서 형사를 멍하게 만든다.
코지 미스터리가 던져주는 매력연달아 터지는 심각한 사건에도, 코지 미스터리에 걸맞게 작품 전체에는 가벼운 분위기가 흐른다.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대화하면서 사건의 진상을 추측하지만 그러다가도 남의 험담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막판에 벌어지는 추격전도 긴장감이 넘치기보다는 웃으며 바라보게 만든다.
그래도 살인사건은 살인사건이다. 형사의 심문에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비밀을 하나둘씩 털어놓게 되고 그 비밀은 주민들의 생활 전체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그동안 주민들 사이에, 그리고 가족들 간에 감춰져 있던 갈등이, 곪을대로 곪아왔던 상처가 이번 일을 계기로 터져버릴 것만 같다.
실제로 자신의 주변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면 이 작품 속의 모습처럼 되지 않을까. 자신은 사건의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니지만 수사가 진행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형사의 거듭되는 심문 속에서 자신의 과거와 내면이 밝혀지고 그것을 견디다 못해서 주위 사람에게 터무니없는 누명을 씌울지도 모른다.
치밀하고 논리적인 추리보다는 통통 튀는 등장인물들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작품이다. 마지막에 대저택에 살고 있는 하드보일드 작가의 정체가 밝혀지는 부분도 흥미롭다. 잔혹한 연쇄살인과 심각한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도 권하고 싶다. 가볍게 읽혀지지만 읽고나서 남는 여운은 결코 가볍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