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73) 분화

[우리 말에 마음쓰기 961] '분화'와 '나뉘다-쪼개지다-갈리다'

등록 2010.12.04 11:54수정 2010.12.04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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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화 : 형태와 의미가 다르게 분화

.. 동물이나 식물의 진화처럼 말도 진화하면서 형태나 의미가 다르게 분화하는 것이 많아. 그런 점에서 말도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지 ..  <엄민용-건방진 우리말 달인(기초편)>(다산초당,2008) 29쪽


"동물이나 식물의 진화(進化)처럼"은 "동물이나 식물이 발돋움하듯"이나 "동물이나 식물이 거듭나듯"이나 "동물이나 식물이 달라지듯"으로 다듬고, "말도 진화하면서"는 "말도 발돋움하면서"나 "말도 거듭나면서"나 "말도 달라지듯"으로 다듬습니다. 또는 "동물이나 식물이 자라듯이 말도 자라면서"로 다듬어 봅니다. "형태(形態)나 의미(意味)가"는 "모양이나 뜻이"나 "생김새나 뜻이"나 "꼴이나 뜻이"로 손보고, "-하는 것이 많아"는 "많이 -해"로 손보며, "그런 점(點)에서"는 "그런 대목에서"나 "그렇기 때문에"나 "그래서"로 손봅니다.

'생명체(生命體)'는 "생명이 있는 물체", 곧 "살아 있는 물체"를 가리킵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 적으면 겹말입니다. 이 글월은 "말도 생명체와 같지"로 고치거나 "말도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지"처럼 고쳐야 올바릅니다.

 ┌ 분화(分化)
 │  (1) 단순하거나 등질인 것에서 복잡하거나 이질인 것으로 변함
 │   - 빈부의 차이에 따라 지역 분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
 │     사회 계층이 셋으로 분화되다 / 직업이 다양하게 분화하다 /
 │     사람들의 직업을 세밀하게 분화하는 역할을 했다
 │  (2) [생물] 생물체나 세포의 구조와 기능 따위가 특수화되는 현상
 │   - 종(種)의 분화 / 세포의 분화
 │
 ├ 형태가 의미가 다르게 분화하는 것이 많아
 │→ 모양이나 뜻이 다르게 많이 나누어져
 │→ 생김새나 뜻이 다르게 갈리곤 해
 │→ 꼴이나 뜻이 다르게 나뉘곤 해
 └ …

이 나라에서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든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든 한국말을 제대로 모르거나 올바로 안 살피곤 합니다. 이 보기글에서도 엿보는데, 우리가 쓰는 말이랑 글을 다루면서 썩 알맞지 못한 낱말과 말투가 곳곳에 깃듭니다. 그런데 글쓴이가 이와 같이 글을 썼어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느끼거나 깨닫지 못하곤 합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 같은 글월이 잘못된 줄 느끼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글을 어떻게 써야 알맞고, 말을 어떻게 해야 바른가를 살피지 못하고 맙니다.

말이 '진화'한다고 하는데, '진화'란 무엇일까요. 어떤 모습이려나요.


말꼴이나 말뜻이 '분화'한다면, 무엇이 '분화'요, 어떤 모습을 보여주기에 '분화'라는 낱말로 가리키려 했을까요.

 ┌ 빈부의 차이에 따라 지역 분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지역이 갈리고 있다
 │→ 돈에 따라 지역이 쪼개지고 있다
 ├ 사회 계층이 셋으로 분화되다
 │→ 사회 계층이 셋으로 갈리다
 │→ 사회 계층이 셋으로 나뉘다
 └ …


아이를 키우는 몸으로, 저는 제 아이한테 '분화'라는 낱말을 가르치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 앞에서 이런 낱말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제 아이한테 '쪼개지다'하고 '나뉘다'하고 '갈리다'를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이 낱말이 서로 어떻게 다르며, 어느 자리에 알맞게 쓰면 좋은가를 일러 주고 싶습니다. 아니, 저 스스로 이 세 낱말을 때와 곳에 따라 알맞춤하게 쓰면서, 제 아이가 시나브로 스스로 깨달아 받아들이도록 살아가고 싶습니다.

 ┌ 직업이 다양하게 분화하다
 │→ 직업이 여럿으로 가지를 치다
 │→ 일감이 숱하게 나누어지다
 ├ 사람들의 직업을 세밀하게 분화하는 역할을 했다
 │→ 사람들 직업을 낱낱이 나누는 노릇을 했다
 │→ 사람들이 하는 일을 촘촘히 가르는 몫을 맡았다
 └ …

말은 지식이 아닙니다. 말은 내 삶입니다. 지식을 더 많이 쌓아 놓았다 해서 말을 더 잘 하지 않습니다. 지식이 얼마 없다 해서 말을 잘 못하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가꾸는 삶에 따라 알맞게 말을 하는지, 또는 알맞지 못하게 말을 하고야 마는지 갈립니다. 내 손으로 일구는 삶에 걸맞게 말이 나뉩니다. 내 이웃하고 살가이 어깨동무하려는 매무새로 쓰는 말이랑 내 이웃보다 높직한 자리에 올라서서 우쭐거리듯 읊는 말이랑 사뭇 다릅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 사회가 쪼개져 있듯이 사람들이 쓰는 말이 쪼개져 있습니다. 수많은 잡지들 이름이 영어로 되었을 뿐 아니라, 아예 알파벳으로 적바림하기까지 합니다. 지난날에는 신문이든 방송이든 잡지이든 책이든 한자로 이름을 적바림했다면, 오늘날에는 신문이든 방송이든 잡지든 책이든 알파벳을 드러내어 이름을 적바림합니다. 이렇게 해야 멋이요 맛이며 지식이며 힘이라고 여깁니다.

수수하게 쓰는 손쉬운 말은 멋도 맛도 지식도 힘도 아니라 합니다. 이런 생각은 틀리지 않다고, 이런 생각은 참말 맞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수수하게 쓰는 손쉬운 말이란 바로 삶이니까요. 수수한 삶에 수수한 말이거든요. 수수한 이웃이랑 수수한 말을 나눕니다. 수수한 내 살붙이하고 수수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수수한 내 살붙이하고 영어로 수다를 떨거나 일본 한자말이나 중국 한문으로 수다를 떨 수 없습니다. 수수한 삶, 수수한 사람, 수수한 말, 수수한 넋, 수수한 사랑입니다.

삶을 사랑하는 매무새로 말을 사랑합니다. 삶을 아끼는 몸가짐으로 글을 아낍니다. 내 삶을 북돋우는 몸짓으로 내 말마디를 북돋웁니다. 이웃 삶과 어깨동무하는 손짓으로 서로서로 글빛을 나눕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사랑하는 글쓰기>(호미,2010)와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10)>(그물코,2007∼2010)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사랑하는 글쓰기>(호미,2010)와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10)>(그물코,2007∼2010)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화 #외마디 한자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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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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