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간식거리는 챙겨 줘야 되잖어"

[새 터 찾아 삼만리 36] 아이들 '간식거리에 목숨 거는' 아내

등록 2011.01.08 14:37수정 2011.01.0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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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그림을 배우는 아이들이 작은 도서관에 놀러왔습니다. ⓒ 송성영


아내가 작은 도서관에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방학을 이용해 학교에서 그림을 배우는 아이들입니다. 바닷가로 야외 스케치를 갔다가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잠깐 들렀다고 합니다.

"그려, 잘 왔다. 도서관에서 책 보면서 놀다가라이."
"예~"

녀석들은 대답을 시원스럽게 해놓고 산도적처럼 생긴 털보아저씨가 누구일까 싶어 멀뚱멀뚱 올려다봅니다. 할아버지처럼 수염이 허연 저 사람이 설마 미술 선생님 남편은 아니겠지, 그런 표정들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아내는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작은 도서관이 우리가 만든 공간이며 털보아저씨와 부부 사이라고도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냥 작은 도서관에 한번 놀러가보자 했답니다.

아내는 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아이들 간식거리부터 챙깁니다. 아이들은 작은 도서관에서 간식거리 앞에 둘러 앉았습니다. 간식거리라 해봤자 빵과 크림 수프가 전부입니다. 하지만 추운 날씨에 볼때기가 벌겋게 달아오른 녀석들은 머리를 맞대고 앉아 제빵기에서 금방 나온 빵과 따끈한 수프를 아주 맛있게 먹습니다. 수프를 떠먹으면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 녀석도 있습니다.

작은 도서관 찾는 아이들 간식 꼭 챙기는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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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이 생기기 전, 아내는 지난 봄 우리 집에 놀러 온 동네 아이들에게 간식거리를 마련해 줬습니다. ⓒ 송성영


아내는 습관처럼 작은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에게 뭔가를 먹이려고 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에게도 그렇고 남편인 내게도 그렇습니다. 뭔가 간식거리가 있어야 맘이 놓이는 모양입니다. 한마디로 '간식거리에 목숨 거는 아내'입니다.

이곳 전남 고흥으로 이사 오기 전에 어떤 교육연구소를 겸하고 있는 지역아동센터에 두어 달 정도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이런 저런 후원금과 대기업의 지원을 받아 운영한다고 합니다. 아내는 거기에서 한 달에 80만 원의 정부지원금을 받아가며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교육 프로그램을 짜내는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두 달도 채 다니지 못하고 운영자와 갈등을 빚었습니다.


다름 아닌 아이들 간식 때문이었습니다. 아내는 학교를 마치고 곧장 몰려와 늦은 저녁까지 공부를 하는 아이들에게 간식거리를 마련해 주자 제안을 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 제안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질 않자 아내는 직접 아이들 간식거리를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후원금을 받으면서 간식거리 하나 못해 줘."
"거기도 형편이 어려우니까 그렇겠지."
"애들도 몇 명 안 되는데, 그게 몇 푼이나 된다고…"


충남 공주 시골집에서 외양간을 고쳐 화실을 만들어 놓고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칠 때도 종종 부침개 등의 간식거리를 마련해 줬던 아내였기에 쉽게 용납이 가질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 사람들 나름대로 애로사항이 있었던 모양인데 성질이 불같은 아내의 불만은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결국 간식문제를 비롯한 교육 운영 방침 등에 불만을 품고 운영자와 대판 싸움을 벌였습니다. 때마침 이사 가는 문제까지 겹쳐 결국 3개월 만에 사표를 던졌습니다.

작은 도서관에 아이들이 몰려오면 아내가 가장 먼저 걱정하는 것은 간식거리며 반찬거리입니다. 최소한 집안에 라면이며 빵재료, 수프 정도가 있어야 안심을 합니다. 작은 도서관에서 어쩌다 늦은 밤까지 영화를 보다가 잠을 자고 가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자신의 몸이 몹시 피곤하거나 간식거리들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매정하게 돌변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애들 자고 가는 거 안 돼."
"그냥 자고 가라고 하지?"
"그래도 오늘은 안 돼, 반찬거리도 별로 없고."
"그냥 우리 먹는 대로 먹으면 되잖어."
"그래도 애들 간식거리는 챙겨 줘야 되잖아."

어른들의 무상급식 반대... 아이들 마음 헤아리지 않는 단편적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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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에서 영화를 보는 동네 아이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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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 다락에서 영화는 보는 동네 아이들. 밤늦게 영화를 보고 더러 잠을 자고 가는 경우가 있는데 아내는 몸이 몹시 피곤하거나 집에 간식거리며 반찬거리가 없으면 집으로 돌려 보내기도 한다. ⓒ 송성영


작은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 중에는 부잣집 아이들도 있고 가난한 집 아이들도 있습니다. 한데 어울려 간식을 먹고 있는 아이들 중에 누가 부잣집 아이인지 가난한 집 아이인지 알 수 없습니다. 맛있는 간식거리가 나오면 부잣집 아이이건 가난한 집 아이이건 좀 더 먹으려고 아우성입니다. 아이들에게는 부자와 가난의 차별이 없습니다. 빈부는 아이들이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어른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학교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아이들에게만 무료로 급식을 제공해야 한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생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아이들과 차별을 두어 급식을 제공 받는 아이들의 심정을 전혀 헤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단세포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무상급식이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그걸 반대하는 것은 빈부격차가 심한 대한민국에서 아이들에게까지 차별을 가중시키는 일입니다. 아이들에게 빈부를 경험하게 만들어 또 다른 경쟁심을 부추기는 추잡한 짓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무상급식을 절대 반대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전쟁에 광분하는 사람들, 가난한 이들을 외면하고 국가 예산을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폭탄 쏘아대듯 펑펑 날리는 그런 사람들이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무상급식을 제한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단지 생색내기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아주 오래전 여동생이 중학교에 다닐 때였습니다. 여동생이 학교에서 설탕 한 포대를 가져왔습니다. 불우이웃 돕기를 통해 받아온 설탕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불우이웃 돕기를 하는데 친구들이 여동생을 추천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며칠 후 학교 게시판에 교장 선생이 여동생에게 설탕 한 포대를 건네주는 사진이 올라와 있더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여학교였는데 교장선생은 베풀고 있다는 것을 널리 자랑하려 했던 모양입니다. 거기에 예수님의 이름까지 팔았겠지요. 학교 게시판에 올라온 불우이웃 돕기 기념사진을 본 여동생의 심적 고통을 전혀 헤아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중학교 1학년인 그 어린 여자 아이의 심정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입니다.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 시절, 불우이웃 돕기 기념사진이 걸려 있는 게시판 앞에 서 있었을 어린 여동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분노가 치밀어 옵니다. 교장 선생이 모든 아이들에게 조금씩이나마 설탕을 나눠주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겠습니까?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그들은 '무상급식 반대'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철면피들입니다. 불우이웃 돕기라는 명목으로 설탕 한 포대 건네주고 기념사진을 찍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게시판에 올려놓은 파렴치한 교장선생처럼 말입니다.

베품을 받아 본 사람이 베풀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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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놀러온 큰 아이 학교 친구들. 학교에서 무료급식이며 무료 간식을 제공받고 있다. ⓒ 송성영


우리 집 아이들이 충남 공주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꼬박꼬박 급식비를 내야 했는데 전남 고흥으로 이사 와서는 단 한 푼도 내지 않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무상급식을 제공받고 있습니다. 보충 수업을 할 때도 간식거리가 나온다고 합니다. 이것도 무료로 제공된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간식거리며 밥을 챙겨주는 데 '목숨 거는 아내'. 무상급식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반대하는 사람이 우리집에 찾아오면 아내에게 문전박대는 물론이고 욕을 바가지로 먹어야 할 것입니다.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자는데 죽어라 반대하는 사람들도 다 있다네" 그랬더니 대번에 "뭐 그런 정신 나간 사람들이 다 있어" 그럽니다.

부잣집 아이들도 베품을 받아야 합니다. 세상이 베풀어 주는 밥을 먹어봐야 합니다. 베품을 받아 본 사람이 베풀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는 우리 아이들보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 아이들은 그 아이들과 똑같이 무상급식을 받고 있습니다. 모두가 무상급식을 받고 있기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덜 미안합니다. 차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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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은 아내가 만들어 주는 따끈한 수프 한사발에도 좋아라 한다. 수프를 처음 먹어 보는 녀석들도 있다고 한다. ⓒ 송성영


우리집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어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게 밥 한 끼라도 베풀 수 있는 마음자리를 갖게 되는 것은 녀석들의 몫입니다. 하지만 나는 믿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공평한 베품을 받게 되면 훗날 어른이 되어서도 공평하게 베풀 줄 알게 될 것임을 믿고 있습니다.

아내에게 그림을 배우는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아이들은 빵이며 수프를 말끔하게 비웠습니다. 녀석들의 손에는 집에서 보고 가져 오겠다는 몇 권의 작은 도서관 책들이 들려져 있습니다.

"책 재밌게 읽고 다시 놀러 와라이."
"예~"

녀석들이 합창 하듯이 동시에 대답합니다. 나는 어떤 녀석이 부잣집 아이고 어떤 녀석이 가난한 집 아이인지를 모릅니다. 누가 부잣집 아이인지 가난한 집 아이인지 분간할 필요도 없습니다. 녀석들 모두는 차별 없이 대우 받아야 할 순수한 아이들입니다. 훗날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 나갈 아이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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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늦가을 순천 평화학교 아이들이 작은 도서관에 놀러왔다가 아내와 함께 만든 꽃관을 창틀에 진열해 놓았다. ⓒ 송성영


#간식거리 #무료급식 #생색내기 #빈부 #차별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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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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