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강경 진압으로 돌아설 수도

이집트 시위 장기화·경제 상황악화 변수로 작용할 듯

등록 2011.02.11 10:26수정 2011.02.1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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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반정부 시위가 2월 10일로 17일째를 맞았다. 시위가 10일을 넘어서면서부터 외신들은 예상을 깨고 장기화되고 있는 시위의 날짜를 세고 있다. 시위 16일째였던 9일은 변화에 대한 이집트 국민들의 의지와 열망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전날까지 확산되지 않고 오히려 규모가 줄었던 시위는 이날 최대 규모를 기록했고 이집트의 장래는 다시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대통령, 당신은 신이 두렵지 않은가?" 1월 28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한 시위자가 '신이 말하길 잘못을 행하는 모든 자는 멸망한다' 라고 쓰인 천을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 연합뉴스

"대통령, 당신은 신이 두렵지 않은가?" 1월 28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한 시위자가 '신이 말하길 잘못을 행하는 모든 자는 멸망한다' 라고 쓰인 천을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 연합뉴스

지난 9일 시위는 그동안 시민 저항의 메카였던 타흐리르 광장을 넘어 정부 청사 주변 거리까지 확산됐다. 이날은 특별히 정부의 인권 유린과 폭력 사례가 자세히 알려지면서 무바라크 대통령에 대한 분노와 비난이 재점화돼 처음으로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경찰에게 납치돼 12일간 눈이 가려진 상태로 갇혀있다 풀려난 구글의 마케팅 책임자인 와엘 고님의 인터뷰에 자극을 받아 나오게 됐다고 외신 기자들에게 말했다. 고님은 풀려난 후 타흐리르 광장 시위대에 합류했고 시민들을 독려하는 연설을 하면서 시민 저항의 새로운 상징이 되고 있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한 제약회사 임원인 아메드 엘샤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전날 고님의 인터뷰를 보고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처음으로 시위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약 2만 명의 공장 노동자들도 계속 파업에 참여하면서 반정부 시위에 힘을 더했다. 이들은 정치적 요구보다는 급료 인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일부 노동자들은 무바라크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고 알 자지라(Al Jazeera)는 보도했다. 또한 인터넷 캠페인을 통해 무바라크 퇴진 운동 참여를 독려 받고 있는 해외 교포들이 실제로 귀국해 시위에 참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9일 이집트 카이로에서는 반 무바라크 시위 중에 사망한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촛불 시위가 열렸다. ⓒ EPA=연합뉴스

지난 9일 이집트 카이로에서는 반 무바라크 시위 중에 사망한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촛불 시위가 열렸다. ⓒ EPA=연합뉴스

시민들의 참여가 늘자 저항이 장기화되면서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힘든 상황을 견디고 있는 핵심 시민운동가들도 힘을 받고 있다. 무바라크 정권의 부패와 폭정에 지쳐 뜻을 같이하는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1월 25일 처음 시위를 시작한 지아드 엘레라이위도 그중 한 명이다.

 

"튜니지의 반정부 시위가 성공한 것을 보고 시위를 결심하게 됐다. 솔직히 우린 시위가 5분 안에 끝나고 금방 체포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예상 못한 현재의 상황에 스스로 놀라고 있다고 비비씨(BBC)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하루 하루 더 많은 사람들이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리고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시민 저항 운동은 수그러들지 않고 오히려 날마다 성장하고 있다."

 

시민운동가인 아마드 살라는 알 자지라(Al Jazeera)와의 인터뷰에서 강조했다.

 

한 달만에 완전히 새로운 나라가 된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 사진 찢는 시위자 지난 1월 25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한 시위자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포스터를 찢고 있다. 이날 이집트에선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과 정치ㆍ경제 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려 시위대와 경찰 등 3명이 숨졌다. ⓒ AP=연합뉴스

▲ 무바라크 대통령 사진 찢는 시위자 지난 1월 25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한 시위자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포스터를 찢고 있다. 이날 이집트에선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과 정치ㆍ경제 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려 시위대와 경찰 등 3명이 숨졌다. ⓒ AP=연합뉴스

이제 시민 저항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규모로 커졌고 무바라크 대통령은 퇴진을 거부하고 있지만 거의 종이호랑이가 되었다. 그는 차기 대선 출마를 포기했고 아들인 가말로의 정권 이양도 이제 옛 이야기가 되었다. 용기 있는 소수의 결단이 침묵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의 분노와 정의감을 깨웠고 한 달 만에 이집트는 완전히 새로운 나라가 되었다.  

 

시위가 수그러들지 않자 이집트 정부는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을 모함하고 있다. 정부는 광장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외국인들로 이들이 시위를 선동하고 있으며 시위자들에게 돈도 지불하고 있다고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 또한 시위가 장기화될 경우 아직 개입도 불개입도 아닌 방관자에 가까운 역할을 하고 있는 군이 개입할 가능성도 있다며 시위자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

 

지난 9일 미국 공영방송인 피비에스(P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메드 아불 게이트 이집트 외무장관은 경찰력이 공백인 상황에서 시위가 장기화되면 군이 개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군이 긴급조치를 발령하고 병력을 동원해 상황을 안정시켜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시위가 계속되면 군이 병력을 현장에 투입시켜 상황을 진압하는 위험한 상황이 될 가능성이 있다."  

 

게이트 장관은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집트의 안위와 국익을 보호하고 아랍 세계에서 이집트의 영향력을 유지시켜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요구가 있더라도 퇴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집트 국민들이 "합리적 판단" 하에 논리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바라크 대통령 통치 이후 처음 설치된 부통령직을 맡아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이른바 "질서 있는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술레이만 부통령 또한 현재 상황이 계속되면 군사 쿠데타 밖에 대안이 없을 것이라고 국영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시위자들에게 경고했다.

 

"쿠데타는 비합리적인 상황을 만들 것이므로 피해야 한다. 그러므로 정권의 종말도 쿠데타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혼란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적인 시민 불복종 저항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정부는 그런 상황을 간과할 수 없다."

 

씨엔엔(CNN)은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시위가 장기화되고 타흐리르 광장이 격리되고 있는 상황을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군이 타흐리르 광장을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사회와 외신들의 관심이 수그러들면 경찰과 군이 진압작전을 개시하거나 시위자들이 저항을 끝내고 광장을 빠져나갈 때 일제히 체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또는 변장을 하고 비밀리에 잠입한 보안군에 의해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시위자들이 몰래 끌려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무바라크 정권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시위자들이 이런 이유 때문에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광장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집트 시위자, 자신들의 안전과 향후 방향 고려할 때

 

반정부 시위 참여자가 늘었지만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시위자들은 전체 인구에 비하면 많지 않은 숫자이고 시위는 여전히 타흐리르 광장과 주요 대도시들에 국한돼 있다. 군은 타흐리르 광장 출입을 통제하고 외신 기자들의 출입도 막으면서 효율적으로 시위자들을 격리시키고 있다. 이제 시위자들은 자신들의 안전은 물론 시민저항 운동의 향후 방향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다다랐다고 볼 수 있다.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대두되고 있는 경제 상황 악화도 큰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애초 반정부 시위의 발단 중 하나가 경제 문제였고 시위가 계속되면서 실제로 생계의 유지가 중요한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별히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관광객이 모두 이집트를 떠난 가운데 생계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CNN은 지난 2일 말과 낙타를 타고 폭력을 휘두른 무바라크 정권 찬성 시위대 중에는 실업자가 된 관광가이드들도 섞여 있었다고 보도했다.

 

여전히 무바라크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다. 찬-반 시위대가 충돌했던 지난 2일 이집트 국영방송은 무바라크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방영했다. 그들은 여전히 독재자를 신뢰하고 존경하고 있었다.

 

"30년간 우리는 평화롭게 살았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미국과 같은 외부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줬다. 미국은 우리를 이라크처럼 만들려고 하지만 이집트는 그렇게 되진 않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울지 않았는데 어제 무바라크 대통령 연설을 들을 때는 눈물이 났다. 나는 무바라크 대통령을 이 나라와 나의 지도자로 보면서 성장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우리의 아버지다. 자신의 부모를 모욕하고 비웃으면 안 된다. 그것은 결국 우리를 경멸하는 것이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이다."

 

이집트 국민들, 역사상 처음으로 공정한 선거 경험할 것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이 무바라크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유가 자신의 이익 때문인지, 잘못된 판단 때문인지, 또는 지도자에 대한 존경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다. 아마 세 가지 모두일 가능성이 더 높다. 많은 사람들이 반정부 시위에 참여해 무바라크 퇴진을 외치는 반면 여전히 많은 이집트 사람들이 무바라크 퇴진을 반대하거나 또는 점진적인 변화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 이집트가 당면한 현실이다.

 

이집트가 이제 새로운 나라가 되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 여부와 상관없이 9월에 있을 대선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민들은 이집트 역사상 처음으로 공정한 선거를 통해 민주사회로의 변화에 의미 있는 참여를 하게 될 것이다.

 

선거를 통한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현재의 시민 저항의 동력이 지속돼야 하는데 과연 그 역할을 누가 할 수 있을지 현재로선 분명치 않다. 또한 선거를 통한 변화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정부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사람들과 침묵하거나 방관했던 사람들 모두가 협력해야 한다. 그런 통합과 협력의 과정을 주도할 세력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집트 상황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주된 요인이다.

 

현재 상황에서 통합과 협력을 주도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 있고 역량을 갖춘 집단은 타흐리르 광장을 지키고 있는 시민들과 운동가들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직접 저항과 동시에 내부적으로 전략적인 선택과 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이 그들에게 닥친 가장 현실적인 고민이 될 가능성이 높다.  

2011.02.11 10:26 ⓒ 2011 OhmyNews
#이집트 #아랍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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