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가족 레시피>겉그림
문학동네
이런 할머니에게 그래도 믿을 구석이 있는 내 아들과 하룻밤 눈이 맞아 세상에 나온 천한 나이트클럽 댄서의 딸인 나는 '예순 넘은 나이에 똥 기저귀 갈게 만든 년'이며, 가방 속에 쑤셔 넣은 코 푼 휴지처럼 껄끄러운 존재일 뿐이다. 게다가 오빠와 언니에게 나는 자신들과 격이 엄연하게 다른 '혼외자', 그러니까 '사생아'일 뿐이다. 그러니 사사건건 말 한마디조차 곱질 않다.
이들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은 어떤가? 40평대 아파트인지라 '꽤 사는 집이구나' 속 모르는 남들은 착각을 할 평수지만, 삼 년째 보증금 이천만원에 백만 원이라는 기형적인 월세를 살고 있는, 그러나 이젠 아버지의 능력부족으로 작년부터 월세가 밀려 '퐁당퐁당 월세'로 그나마 가진 보증금마저 까이고 있어 언제 거리로 나앉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콩가루 집안이다. 이런 가족들 사이를 부유하며 구박덩이로,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는 화자인 나 여울이는, 언제든 가족들로부터 탈출할 날만을 꿈꾸며 '완벽한 출가를 위한 지침서 10조항'까지 만들어두고 한 푼 두 푼 돈을 모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도덕시간 수행평가 과제로 자서전을 써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게다가 도덕 선생은 덧붙였다. "너희들 이야기야 얼마나 되겠냐!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써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아, 한 가지 보너스가 있는데, 대상으로 뽑힌 사람한테는 종업식 때 재단 이사장님의 장학금 수여가 있다…."고.
자서전 쓰기 과제를 계기로 여울이는 탈출을 꿈꾸던 집과 가족들을 돌아보게 된다. 여울이의 가족사는 세상에 풀어놓는 순간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위험하기만 한데….
책과 노트들을 정리하다가 은색 노트를 발견했다. 조금 끼적이다가 만 자서전이 있었다. 2학기가 끝나 가는데도 학교에 제출할 수 없는 미완성의 자서전이 되고 말았다. 열일곱 살이라는 나이는 아직 자서전을 완성할 나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당분간 학교를 다닐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가장이니까. …가난은 다른 사람들이 놓치지 않는 것들을 놓치게 한다. 나는 그걸 참을 수 없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뭐든지 참고 견뎌야 한다면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불 보듯 뻔한 상황에 끼여 아등바등하느니 다른 길을 가보고 틈도 엿보고 싶다. 언제든 상황은 바뀐다.…일 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 학원 갈 돈도 모으고 책도 사서보고 싶다. 다른 아이들과 같은 방법이 아닌 나만의 방법으로 내 미래를 준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가족마저 사라진 이 상황은 출가의 상황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어쩌면 엄마도 준비되지 못한 상황 때문에 나를 할매에게 보냈을지도 모른다. - 책에서가족들은 결국 하나씩 흩어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생각은 전혀 개의치 않고 가정 형편이 이러니 대학은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아빠의 무조건적인 생활방식과 무임금 노동 착취를 견디지 못한 언니는 급기야 가출하고 만다. 이어 혼자 몸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변변치 못한 오빠와 삼촌이 잇달아 가출하고 만다.
그리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아빠는 불법을 저질러 구치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결국 가장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떠안게 된 여울이는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가족을 이젠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묘한 감정에 빠지게 된다.
-청소년과 학교 교육을 바라보는 낡은 매트릭스를 가볍게 넘어서고 있다. 전반적으로 매트릭스를 벗어나고 있지 못한 청소년 문학에 충격을 줄만한, 새로운 흐름을 촉발하는 힘이 있다. - 김진경(동화작가, 시인)-문제적 가정의 이야기를 유쾌하면서 서글프고 신랄하면서 따뜻하게 풀어낸 문제적 소설이다. 어디 하나 잘난 곳 없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비장하지만 유머러스하고 처절하지만 사랑스럽다. - 김미월(소설가)<불량 가족 레시피>는 2010년에 제정된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제1회 대상 수상작으로 이런 심사평들이 붙었다. 이에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의 소감을 덧붙이면,
"날로 심각해지는 계급·계층 간의 불균형, 경제 불황 등으로 급속하게 늘고 있는 이혼과 그에 따른 가족해체, 어렵고 불안한 환경 속에 부유하는 청소년의 정체성이란 다소 무거운 주제를 화두로 삼고 있지만,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등지고 아무런 대책 없이 뛰쳐나가는 대신 도망칠 수 없는 자신의 현실을 통해 정체성을 찾는 여울이가 안쓰럽고 감동스러웠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의 마음 상태를 잘 헤아린 것 같다. 우리 아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