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매춘부의 죽음에 어떤 음모가 있었을까

[리뷰] 마이클 코넬리 <라스트 코요테>

등록 2011.02.18 10:09수정 2011.02.18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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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코요테> 겉표지 ⓒ 랜덤하우스

▲ <라스트 코요테> 겉표지 ⓒ 랜덤하우스

어린 시절의 어떤 기억은 평생 동안 사람을 따라다닌다. 그것이 어두운 기억이라면 더욱 그럴 가능성이 많다. 어린 시절에 받았던 상처는 치유되지 않은 채로 내면에 숨어있다가 불쑥 고개를 내밀곤 한다.

 

성인이 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도 마찬가지다. 그 상처가 자신의 생활을 직접적으로 파괴하지는 않겠지만, 성장하면서 형성되는 성격과 기질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어쩌면 안좋은 방향으로.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의 주인공인 형사 해리 보슈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린 시절의 안좋은 기억 한두 개씩은 가지고 살겠지만 해리 보슈의 경우는 좀 특별하다.

 

보슈가 11살 때 할리우드의 매춘부였던 어머니가 거리에서 살해당한 것이다. 그전에도 보슈는 고아원에서 살고 있었다. 국가에서 보슈의 어머니를 '부적격자'로 판정해서 양육권을 박탈한 것이다. 보슈와 그의 어머니는 정기적인 면회일에만 만날 수 있었고 그럴 때면 고아원은 울음바다로 변했다.

 

어머니가 살해당하면서 그런 만남조차도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을 때 보슈는 고아원의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형사가 찾아와서 보슈에게 그 소식을 전했고, 보슈는 다시 수영장으로 돌아가서 물 속에서 펑펑 울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이 일은 성장기의 보슈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해리 보슈 시리즈' 네 번째 작품 <라스트 코요테>

 

이후에 보슈는 베트남전에 참전하고 귀국해서 LA 경찰청의 형사가 된다. 어린시절부터 혼자였기 때문인지 보슈는 경찰서 내에서도 고독한 존재처럼 보인다. 보슈는 대인관계를 무시하고 사건수사에만 몰두하며, 사건해결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수사력은 뛰어나지만 '정치'에 능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관들은 그를 곱게 보지 않는다.

 

<라스트 코요테>의 도입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살인사건을 수사하던 보슈는 용의자를 심문하던 도중에 형사과장이 방해를 하자 그의 사무실로 쳐들어가서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다. 사무실의 유리창은 박살나고 형사과장은 코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한다. 이 일로 보슈는 정직처분을 받는다. 총과 배지도 반납해서 민간인과 다를 바 없는 신세가 된다.

 

그리고 경찰청 행동과학부의 심리학자에게 일주일에 세 차례씩 상담을 받으라는 처분도 함께 떨어진다. 이제 보슈에게는 시간이 남아돌게 생겼다. 그는 오래전에 해결됐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던 사건, 그대로 두면 죽을 때까지 자신에게 짐이 될 사건을 해결하자고 마음 먹는다. 바로 30여 년 전에 어머니를 살해한 범인을 찾는 일이다.

 

물론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살인사건은 발생한 지 48시간 이내에 해결하지 못할 경우 범인 검거율이 뚝 떨어진다. 그런데 1~2년도 아니고 무려 30년 전에 발생한 살인사건을 어떻게 수사할까. 보슈는 정직상태라서 일반형사처럼 사건 관련 자료를 마음대로 열람할 수도 없고 관련자들을 찾아가서 떳떳하게 심문하지도 못한다.

 

그래도 보슈는 특유의 저돌성으로 사건수사를 시작한다. 상관의 신분을 사칭해서 당시 사건의 증거물과 사건수사기록을 검토한다. 30년 전 어머니의 친구였던 사람을 찾아가서 관련 이야기를 들어보고,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형사를 만나기도 한다. 이들의 이야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보슈의 어머니가 살해당했을 때 제대로 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윗사람들의 압력이었다. 매춘부의 죽음에 어떤 음모가 감추어져 있었을까?

 

30년 전의 과거를 추적하는 해리 보슈

 

보슈를 상담하는 심리학자는 이 사건수사에 대해서 몹시 걱정한다. 보슈는 이 사건을 해결해서 어린시절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반면에 심리학자는 보슈가 이 수사에서 어떤 정서적 이익이나 치유도 얻기 어렵다고 본다. 치유는커녕 오히려 더 심한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보슈는 그래도 흔들리지 않는다. 어머니가 피살된 후로 보슈의 모든 것이 변했다. 어머니가 살아있을 때 늘 행복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가 죽으면서 보슈의 희망도 사라진 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다던 그 소박한 희망이.

 

그래서 보슈는 더욱 사건수사에 매달린다. 다른 사람들이 어머니의 죽음을 무시했듯이, 그동안 자신도 어머니의 죽음을 그냥 묻어두었던 것이다. 자신이 그것을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해두었던가를 생각하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어머니를 위해, 자신을 위해 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경찰이라는 사실이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과거를 캐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유쾌한 일도 아닐 가능성이 많다. 구린 냄새가 진동하는 살인사건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과거를 파헤치는 보슈의 모습은 교외 야산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야생 코요테와 닮았다. 슬프면서 동시에 위험해 보이기도 하는 야생 코요테, 해리 보슈가 바로 그 마지막 코요테다.

덧붙이는 글 <라스트 코요테> 마이클 코넬리 지음 / 이창식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라스트 코요테 #해리 보슈 #마이클 코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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