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져 죽는단 의미가 아니면 물 수 자가 쓰일 리 없다는 점에 그 뜻이 미묘했다. 대청에 들린 관원이 '대비전이 동북간에 있다'는 말에 정약용은 손바닥을 치며 갖바치 노인이 손에 쥔 글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녹두패 글씨는 갖바치 노인이 쓴 것으로, 자신이 위급에 처한 걸 '수'자로써 알린 것이라 생각했다.
'흐음, 수(水)는 오행으로 동북간(東北間)이다. 조정에선 대비전이 있으므로 그쪽 사업은 금지시켰지 않은가. 그런데 수(水) 자와 함께 쓰인 배년붕반(配年朋半)은 뭔가?'
곰곰이 생각에 잠기던 정약용이 튕기듯 사헌부 문서 보관실로 달려갔다. 지난해 비변사에서 과금사목(科禁事目)을 올릴 무렵의 두루마리를 찾아 펼치자 '배년붕반(配年朋半)'은 '기유년(己酉年) 2월 15일(朋半)'의 내명부 역모 사건을 기록하고 있었다.
안개가 자주 끼는 계절은 아니었지만 선화문(宣化門) 주위는 으스스 소름 돋고 연무가 내린 체 찬바람이 깔려 있었다. 궁으로 향하는 입구엔 농사꾼 차림의 사내와 시골 아낙 냄새를 풍기는 여인이 광주리 하나를 머리에 이고 들어서는 참이었다. 문을 지키는 장졸 하나가 선하품을 쏟아내며 앞으로 나섰다.
"날씨도 안 좋은 데 무슨 일이오. 안에 든 건 뭔가?"
"떡이우."
"떡? 먹는 떡?"
"그렇다우. 박소의 님이 워낙 드시고 싶어 하셔서···."
그때 궐 안에서 무수리 하나가 달려 나왔다. 그녀는 광주리를 이고 온 아낙에게 가볍게 퉁을 주며 반색했다.
"이제 오면 어떡허우? 박소의 마마님이 그토록 드시고 싶어 하시는데. 입 안의 침이 모두 말랐겠수. 자, 어서 들어와요."
아낙이 광주리를 머리에 이자 그와 동시에 무수리 품에서 노리개 등속이 한 움큼 장졸의 옆구리에 찔러졌다. 예전 같으면 말없이 챙겼을 것이지만 장졸은 한 걸음 물러서며 아낙을 가리켰다.
"광주릴 내려놓으시오!"
"예에?"
"내 말 안 들리는가! 어서 내려놓으래도!"
엉겁결에 광주리를 내려놓자 이번엔 뚜껑을 벗겼다. 곱게 싼 비단이 눈부셨다. 그걸 만지려 하자 무수리가 질겁했다.
"무엄하다! 어디에 손 대는가! 이것은 박소의 마마님이 드실 떡이다. 한갓 궁문을 지키는 천한 놈이 함부로 손댄다는 게 말이 되느냐! 물러서라!"
무수리와는 달리 시골 아낙은 사시나무마냥 몸을 떨었다. 문지기 사내는 별안간 칼을 뽑아 어깨 위로 치켜올렸다.
"아니? 무얼 하려는 게야. 저, 저!"
수직으로 바람 가르는 칼날이 광주리를 내려치자 퍽 소리와 함께 두 동강 났다.
"아악!"
여인의 앙칼진 비명 소리가 아침 공기를 흔들었다. 다시 한 번 장졸의 칼이 광주리를 내려치자 네 조각으로 벌어졌다. 박소의를 섬기던 무수리는 넘어지고 곤두박질치며 안갯속으로 사라지고, 시골 아낙 역시 한쪽 신발이 벗겨진 것도 모르고 궁장(宮墻)을 끼고 허겁지겁 도망쳤다. 장졸은 흥건히 젖은 붉은 비단을 젖히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앗!···, 갓 빠진 핏덩이다!"
영아에게 무참히 칼을 댄 장졸은 얼이 빠진 낯으로 광주리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귀엔 도제조 대감의 지엄한 분부도 들려오지 않는 듯했다.
"함지박이나 광주릴 궐에 들여오거든 불문곡직 토막을 내라! 명을 따르지 않으면 중벌로 다스릴 것이니 명심하라!"
하루 전, 밤이 늦은 시각 함지박이나 광주리를 가져오는 자가 있으면 네 토막 내라는 명을 대감으로부터 받았다. 저녁이나 아침일 거라는 귀띔도 있었다. 영아를 토막 낸 장졸은 얼이 빠진 채 사헌부로 끌려가 조사를 받고 다음날 방면됐다. 이내 사건 내막이 드러났다.
"···소의 박씨는 전하의 총애를 받은 다희(多喜)란 처녀가 받은 반지(環)에 연연해 자신이 회임했음을 궁인들에게 거짓으로 알리고, 액정서 내관을 회유해 다희에게서 반지를 얻으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하여 가짜 반지를 은장이 노인에게 만들게 한 후 총애를 받은 날짜에 맞춰 갓난아이를 궁에 들이려 한 것은 천하를 훔칠 계획이었다."
예로부터 여인들은 상감의 총애를 받으면 날짜가 새겨진 은반지를 받았다. 아이를 회임하지 못한 박소의는 삼개나루에 사는 또치 아낙에게 갓난 아이를 궁에 들이게 했으나 모든 일이 백일 하에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한 해가 지난 경술년 7월. 광나무 인근에 사는 갖바치 박노인이 죽기 전 남긴 글귀가 배년붕반(配年朋半)이었다. 이것은 기유년(己酉年) 2월 15일(朋半)을 뜻하는 것으로 한 해 전인 기유년의 역모사건이 재현되는 걸 나타낸 것인가? 더구나 수(水)는 전하가 계시는 인정전에서 보면 동북간이다.
'내금위 별감이 박소의 처소에 갔을 때 그녀는 독약을 마시고 절명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 해가 지난 경술년(庚戌年)에 또다시 배년붕반(配年朋半)이란 심상치 않은 글귀가 발견된 건 무슨 이윤가?'
사헌부 업무공간 대청에 있는 정약용에게 전하의 명이 하달됐다. 말을 전한 이는 규장각 서리 김의현이었다. 문예부흥을 꿈꾸던 정조는 규장각 검서(檢書)는 물론 서리까지도 우대해 대대로 문장 하는 집안에서 가려뽑았다.
어디 그뿐인가. 그들에게 쌀이나 돈을 내려 격려했다. 그것을 고풍(古風)이라 하는 데, 무예를 즐기는 상감은 창덕궁 내원에서 활쏘기를 하신 후 쌀과 돈을 곧잘 내렸다. 그런 이유로 규장각 서리는 다른 서리와 구분해 사호(司戶)라 부르고 그들이 근무하는 건물엔 사호헌(司戶軒)이란 현판을 붙였다.
"나으리, 전하께서 규장각에 드시라 하옵니다."
정약용이 찾아간 규장각엔 전하께서 위항인(委巷人) 마흔 두명을 엮은 전기를 읽고 있었다. 그것은 조희룡이 지은 <호산외기(壺山外記)>였다. 정약용을 발견한 상감은 서책을 한쪽으로 밀치며 미소를 머금었다.
"마마, 신을 찾으셨나이까?"
"어서 오세요, 사암. 요즘 궐 안엔 단원(檀園)이 그림 값으로 쌀 60섬을 받은 얘기가 흥겹습니다. 과인은 송석원 시사의 후배격인 직하시사(稷下詩社)의 동인 조희룡의 <호산외기>를 읽고 있습니다만, 단원의 그림 한 점이 3,000전에 이른다니 그 금액이면 쌀 60섬이 아닙니까."
사실이 그랬다. 상평통보 하나에 1푼, 10푼은 1전, 10전은 1냥이므로 3,000전은 300냥이다. 당시 쌀 한 섬의 평균 시세가 5냥이니 김홍도는 쌀 60섬을 받고 그림을 그려준 것이다.
김홍도의 그림값 자체로 위항문화의 수준을 알 수 있지만 그러한 그림값을 지불해 가며 시첩을 장식한 선비의 태도에서 화려했던 송석원시사의 모습을 살필 수 있다.
송석원시사는 인왕산에서 태어나 옥계 언저리에서 만나 술 마시고 거문고 뜯으며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공동체 모임이다. 그들은 한 달에 한 번 날짜를 정해 모임을 가졌고, 그때마다 제목을 정해 시를 지었다.
모임이 장안의 화제가 되자 문인들은 모임에 초청받지 못한 걸 부끄럽게 여길 정도였는데 실력들이 대단해 '흰 종이로 싸운다' 하여 백전(白戰)이라 불렀다. 순라꾼이 한밤에 돌아다니는 사람을 붙잡아도 '백전'에 간다 하면 놓아둘 정도로 인기가 있는 모임이었다.
이렇듯 유명세를 탄 탓에 상감도 위항인 조희룡의 <호산외기>를 읽는가 싶어 정약용은 한동안 상감의 거동만 살폈는데 역시 그런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과인이 사암을 부른 건, 인왕산의 위항인 때문이 아니오. 장차 그들이나 김홍도나 과인을 도울 일이 있을 것이오만 지금은 궐 안에 심상치 않은 일이 있어 사암을 부른 것이오."
"무슨 일이시온지···."
"궐 안에 역도들이 날뛴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과인이 보위에 오른 초창기엔 홍필해 집안의 난리가 있었고 그 후에도 송덕상과 문인방 패거리가 날뛰지 않았습니까. 그런 일들은 과인의 주위에서 잘 막아주었소만, 최근에 일어난 몇 가지 사건만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니라 사암을 불렀소. 이보오, 사암."
"예에, 전하."
"걸핏하면 실적과 능력을 내세우던 벽파의 묵은 때가 사라졌는가 했더니 노회한 그들이 모습을 바꿔 쾌락주의로 변해 사대부들의 안방을 침입하고, 요망한 이론을 앞세워 궐 안을 흔들고 있으니 사암이 그들이 뭘 원하는지 조사해 주기 바라오. 그들은 녹두패를 사용하고 있으니 이것은 과인을 능멸하고 조정을 저희 뜻대로 하려는 속셈이 다분하오."
정약용이 알기에도 그랬다. 조선에서는 녹두패를 민간의 여인, 즉 하음(下陰)의 여인에게 내리는 것이지만, 중원에선 황제가 잠자리 시중으로 들어온 모든 여인에게 내렸다. 그런 것으로 보면, 녹두패를 사용하는 건 제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불충한 일이었다. 상감의 윤음이 무겁게 내렸다.
"사암, 궐내의 숙소인 대청은 삼사의 관원이 머물 수 있는 곳이니 사암은 이곳에 머물며 궐내각사(闕內各司)의 관원이 궐 안과 밖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살펴주기 바라오."
[주]
∎사암(俟菴) ; 정약용의 호
∎궐내각사(闕內各司) ; 궐 안에 있는 여러 관청
∎하음(下陰) ; 신분이 낮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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