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보이>겉표지
랜덤하우스
시인이자 비평가이면서 추리소설의 창시자이기도 했던 에드거 앨런 포는 1809년 1월 19일에 미국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그해 말에 포의 아버지인 데이비드가 사라졌다. 데이비드는 사라진 이후에 어디에서도 행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의 작가 스티븐 킹이 두 살 때 그의 아버지가 집을 나가서 사라져 버린 것처럼, 포의 인생도 '아버지의 행방불명'이라는 미스터리로 시작된 것이다. 1811년에는 어머니도 사망했다. 그러자 어린 포는 사업가인 존 앨런 부부에게 맡겨졌고 '앨런'이라는 성도 사용하게 되었다.
앨런 부부는 포와 함께 1815년에 영국으로 향한다. 이렇게 해서 5년간의 영국 생활이 시작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포의 역사도 메워지지 않은 갖가지 틈으로 얼룩져 있다.
그 틈에는 아버지의 행방불명이 있을 테고, 5년간의 영국 생활도 들어 있을 것이다. 포의 아버지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포는 영국에서 어떤 생활을 했을까.
어린 시절의 에드거 앨런 포앤드루 테일러의 2003년 작품 <아메리칸 보이>는 이 두 가지 의문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팩션(Fact + Fiction)이다. 작품의 시작은 포가 영국에서 생활을 시작한 지 몇 년 후인 1819년 가을이다. 작중 화자인 토머스 쉴드는 포가 다니던 브랜스비 학교에 교사로 취직한다.
쉴드는 취직한 그날 포를 만나게 된다. 포는 밝은 색의 커다란 눈에 넓은 이마를 가진 예의바른 아이다. 얼마 후에 많은 재산을 가진 프랜트가(家)의 아들 찰리가 이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포와 찰리는 외모가 이상할 정도로 닮았지만 성격은 다르다. 포는 놀림을 당하면 참지 않고 달려드는 자존심 강한 아이다. 반면에 찰리는 좀더 차분하고 온화한 성격이다.
이 두 명은 외모가 닮아서인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그러던 어느날 이 둘이 학교 밖에서 이상한 사람과 마주친다. 누추한 외투 차림에 턱수염을 지저분하게 기른, 한눈에 보아도 노숙자 같은 사람이다. 그는 찰리와 포에게 다가가서 구걸을 하고 우연히 근처를 지나던 쉴드는 호통을 쳐서 그를 쫓아보낸다.
이 일로 쉴드는 찰리와 포에게 영웅대접을 받고 프랜트가에서도 환대를 받게 된다. 말하자면 유력한 가문의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준 것이다. 하지만 그 노숙자는 포와 찰리를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다시 거리에서 노숙자를 만난 쉴드는 그를 다그치며 신분을 묻는다. 그러자 노숙자는 자신이 포의 친아버지인 데이비드라고 주장한다.
소설 못지 않게 극적이었던 포의 실제 삶작가 앤드루 테일러는 대단한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다. 미국에서 사라진 데이비드가 어떻게 영국으로 건너왔는지, 포가 태어난 지 1년도 안 되어서 사라졌으면서 어떻게 성장한 포를 알아볼 수 있는지 모든 것이 의문이다. 데이비드가 포 앞에 나타난 것은 돈이 필요해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의 주장처럼 순수한 아버지로서의 정 때문일 수도 있다.
쉴드도 이런저런 호기심을 갖지만 오래 유지하지는 못한다. 얼마 후에 프랜트가에서 잔인한 살인사건이 터지고 쉴드도 그 사건 가운데로 굴러 들어간다. 쉴드는 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누군가에게 미행당하고 거리에서 습격받기도 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은 포에게 있다고. 그 아이는 데이비드를 쉴드에게 이끌었고, 그러고 나서 쉴드는 프랜트가와 엮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쉴드는 평범한 교사에 머물렀을 텐데.
에드거 앨런 포의 실제 삶은 아버지의 실종이라는 미스터리로 시작해서 자신의 미스터리로 끝난다. 포가 죽은 것은 1849년 10월 7일 새벽이었다. 포는 죽기 전에 일주일간 실종 상태였는데 그가 9월 26일부터 10월 3일까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포는 자신이 쓴 기이한 추리소설들 못지않게 미스터리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하긴 소설이 아무리 극적이더라도 명성과 불행을 동시에 가졌던 포의 실제 삶을 따라가지는 못할 것이다. <아메리칸 보이>의 등장인물들도 영리하고 귀여운 소년 포가 30년 후에 알코올 중독과 가난에 시달리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리라고는 예상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