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럽고 비린내나지만, 식구잖여"

[두 바퀴에 싣고 온 이야기보따리 97] '샙띠마을' 왜가리와 황새

등록 2011.04.21 14:24수정 2011.04.2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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샙띠마을 왜가리 샙띠마을은 마을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새가 많은 곳이랍니다. 마을 뒷산 나무마다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왜가리를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 자두꽃축제에 가서 마을 어르신 덕분에 왜가리 사진을 가까이에서 찍을 수 있었답니다. ⓒ 손현희


"저짝으로 쭉 올라가봐, 저기 저 우에 사실까지 쭉 자두꽃이 얼마나 마이(많이) 피었다고, 그라고 저기 우리 집 뒤로 올라가면 왜가리도 잘 보여, 이까정 왔는데 가까이 가서 구경하고 가야지."

자두꽃 향기에 취하고 흐드러진 꽃그늘 아래로 자전거를 타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봄이 오면 늘 보던 꽃이 자두꽃이란 걸 오늘에야 알게 되었고, 온통 화사한 꽃구경에 흠뻑 빠져 연신 사진을 찍고 있는 우리를 보고 할머니 한 분이 말을 건네시네요.


다리가 불편한 듯 지팡이를 짚고 언덕길을 힘겹게 올라오면서도 마을을 찾아준 나그네fmf 무척이나 살갑게 맞이해주십니다. 다리가 아파서 마실도 못 나갔는데, 마을에 큰 잔치가 열린다고 해서 일부러 내려가서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이랍니다.

"어무이, 이 마을 이름이 새가 많아서 샙띠라고 한다대요?"
"그렇지. 샙띠라 카기도 하고 옛날에는 새티라고도 했어."
"그게 바로 저기 보이는 왜가리 때문인가 봐요?"
"그렇지 왜가리도 있고 황새도 옛날부터 많았어."
"언제부터 그렇게 새가 많았어요?"
"아이고 오래 됐지. 내가 시집올 때도 있었으니까, 그기 벌써 50년도 넘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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샙띠마을 왜가리 샙띠마을 들머리에 들어서면 벌써부터 저 녀석들 우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요. 무척 시끄럽기도 하지만, 이곳을 찾는 나그네한테는 퍽이나 신기합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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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꼭대기에 서서 이 녀석들은 주로 나무 꼭대기에서 살더군요. 몸집이 꽤 큰데도 저렇게 가는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게 매우 신기했어요. ⓒ 손현희


낯선 이가 이것저것 묻는 물음에도 귀찮아하지 않고 오히려 마을 자랑을 한참 동안 하십니다. 게다가 집 뒤로 가면 왜가리(백로)를 가까이 볼 수 있다면서 사진을 찍으려면 집에 같이 가자고 하시네요.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나요? 마을 들머리에서부터 요란스럽게 울어대는 새떼 소리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지만, 높은 나뭇가지 위에다가 둥지를 틀고 있어서 가깝게 볼 수는 없었지요. 그런데 집까지 함께 가서 구경하라 하시니 할머니 마음 씀씀이가 퍽이나 살갑게 느껴집니다.

할머니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가니, 그곳 또한 매우 남다릅니다. 작은 농장이 집안에 모두 들어 있었어요. 따로 울타리를 여러 개 쳐놓고 그 안에 꿩도 있고 닭도 있고, 칠면조, 개,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도 있었어요. 마당에는 갖가지 꽃나무와 과일나무도 있어요. 할머니의 부지런한 손길이 그대로 느껴지더군요.

마루에는 나물을 다듬는 할머니가 한 분 더 계셨는데, 마침 포항에서 시누이가 오셨다면서 인사까지 시켜주십니다. 할머니 시누이 또한 우리 부부와 마주하는 모습이 똑같이 살갑습니다. 요즘 시골 사람 인심도 예전 같지 않다고 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런 분들을 뵈면 조금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아요. 무척이나 따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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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살갑게 맞이해주신 이종열(77)할머니 낯선 나그네가 마을을 찾아와 골목마다 다니며 사진을 찍는 걸 보고, 일부러 길안내까지 해주십니다. 왜가리 사진을 찍으려면 집안에서 보면 더 잘 보인다며 할머니 집까지 데리고 가셨어요. 할머니 덕분에 가까이에서 왜가리도 보고 사진도 찍으며 마을 얘기도 많이 들었답니다. ⓒ 손현희


"시끄럽고 비린내 말도 못하지만... 길조이고 식구나 마찬가지"

"아따, 저 녀석들 무척 시끄럽네요."
"아이고, 말도 마! 엄청 시끄럽지, 또 비 오면 비린내도 많이 나는데"
"아, 그렇겠네요. 아무래도 왜가리 때문에 많이 불편하기도 하시겠어요."
"그렇지. 그래도 어쩌겠어? 우리 마을에 길조인데, 옛날부터 같이 살아서 이젠 식구나 마찬가지라. 원래 백로가 마이 날아오믄, 마을이 부자 되고, 적게 오면 흉년이 든다했어. 그라고 시끄럽기는 해도 저것들 보믄 참 재미나"
"네? 어떤 게…."
"저 왜가리가 이짝에다가 집을 지어놓잖아? 그라믄 저놈의 황새가 집을 다 물고 가 갖고 저짝에다가 지집을 지어. 거 참 희한하지? 성질도 별나여."
"하하하 그래요? 저기 저 잿빛날개 저게 황새에요?"
"그려. 황새가 성질이 아주 고약해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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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이나 살갑고 재미나게 얘기해주신 마을 어르신 때마침, 포항에 사는 시누이가 오셨다면서, 함께 나물을 다듬고 계십니다. 벌써 두릅이 나왔다면서 날씨도 좋고, 마을에 큰 잔치도 하니 기분이 좋다시며 모처럼 마실도 갔다왔다고 하시네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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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대 이종열 할머니 집 뒤뜰에는 장독대가 있어요. 봄햇살을 받으며 무척 따사로워 보입니다. 여기에서는 이 마을 자랑거리인 왜가리를 더욱 가깝게 볼 수 있습니다. 사진 찍으라고 일부러 집안까지 데리고 와서 뒤뜰까지 내어주셨지요. 어무이, 고맙습니다. ⓒ 손현희


할머니는 얘기도 참 재미나게 하십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들으며 새들 구경을 하니 참 재밌네요. 사진을 찍으려고 뒤뜰로 갔더니, 바깥에서 보던 것과는 매우 다릅니다. 가까이에서 보는 것도 처음인데다가 망원렌즈로 갈아 끼우고 나무 위를 올려다보니, 녀석들이 참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사진을 찍는다는 걸 알기라도 하는 것인지 날개를 활짝 펴는 녀석도 있고 깃털을 곧추세우고 부리로 쪼는 녀석들도 있어요. 또 부부로 보이는 황새는 나무 꼭대기 아주 가는 나뭇가지에 그 큰 몸집을 지탱하고 서 있는 것도 퍽 신기했어요.

왜가리가 집을 지으면, 집을 부숴서 가져다가 자기 집을 짓는다던 황새와 왜가리가 한 나무에서 함께 둥지를 틀고 사는 것도 퍽 놀랍네요. 왜가리는 몸 전체가 무척 희고 깨끗한데 부리가 연두빛깔을 지니고 있어요.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것도 처음인데다가 눈 둘레 빛깔이 연둣빛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아마도 종류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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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 할머니는 이 큰 새가 황새라고 하셨는데, 정확하게 잘 모르겠어요. 모두 왜가리과인 건 틀림없는데, 아무튼 이 녀석은 온통 흰 빛깔로 옷입은 녀석들보다 몸집이 훨씬 더 크더군요. 왜가리가 집을 지어 놓으면 부숴서 그것들을 가져다가 제 집을 짓는다면서 성질이 별나다고 하셨지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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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리 목이 참 길지요? 온통 흰 빛깔인데다가 눈 둘레에는 연둣빛인 게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답더군요. ⓒ 손현희

사진기 속으로 보는 새들의 몸짓이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대체로 왜가리는 황새보다 아래쪽에 터를 잡고 사는 듯 보였어요. 황새도 꽤 많이 있었는데, 이 녀석들은 모두 나무 꼭대기에 앉아있네요. 기다란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날아와서 둥지를 짓기도 하고, 깃털을 다듬는 새들도 있고, 또 싸우기라도 하는 것인지 시끄러운 소리로 저들만의 말을 하며 서로 쫓고 또 쫓겨 날아가는 녀석들도 있어요. 모르긴 몰라도 지들끼리도 꽤나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더군요. 그런데도 저렇게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이 퍽 신기합니다.

봄날, 하얀 자두꽃이 화사하게 피어 매우 아름다운 샙띠마을, 마을 사람들의 살가운 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할머니의 이야기도 듣고, 난생 처음 보는 새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어서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 날마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그 수가 워낙 많아서 비린내가 나는 것도 견디며 살지만, 이 마을에서 새들을 보호하며 자랑스럽게 여기는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참 좋습니다.

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9월이면 왜가리 사진 찍기 대회가 열려 사진작가들이 전국에서 많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볼거리가 많은 샙띠마을, 작은 마을이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열린 자두꽃축제와 함께 앞으로도 많은 이들한테 널리 사랑받게 되리란 생각이 듭니다. 지난날엔 자전거를 타고 가끔 지나가던 마을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더욱 남다른 정이 들 듯합니다.

오늘 이 마을에서 많은 걸 얻어갑니다. 난생 처음 왜가리와 황새도 가까이에서 보고, 몇 해 동안 그렇게나 궁금했던 하얀 꽃 이름이 자두꽃이라는 것도 알았어요. 게다가 맘씨 좋은 할머니께 재미난 마을 얘기도 듣고, 집을 나설 때는 꿩알과 토종닭 달걀까지 대여섯 개를 선물로 받아왔답니다. 둘이 사이좋게 나눠먹으라면서 건네주신 그 손길,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퍽이나 고마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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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샙띠마을에는 지금 한창 왜가리들이 집을 짓고 새끼가 깨어나기도 한답니다. 집지을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힘차게 날고 있는 녀석도 심심찮게 보이네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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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알과 토종 달걀 둘이 사이좋게 나눠먹으라시며 할머니가 건네주신 꿩알과 달걀이에요. 집에서 키우는 녀석들이 낳은 거라며 아들네 줄 거라고 따로 모아둔 것 가운데에서 우리한테 나누어주셨답니다. 왼쪽 희고 큰 두 개는 달걀이고요. 나머지 네 개는 꿩알이랍니다. 꿩알이 달걀보다는 작더군요. 집에 와서 달걀부침을 해먹었는데, 맛도 아주 좋았답니다. ⓒ 손현희


5~6월이 되면, 자두가 발갛게 열리고 조롱조롱 참 예쁘다면서, 그때도 다시 한 번 꼭 오라시는 할머니께 인사를 하고 돌아나오는 발걸음이 무척 가볍습니다. 따듯한 정을 한껏 안고 가는 듯해서 무척이나 뿌듯했지요. 마을 이름도 정겨운 샙띠마을, 여러분도 꼭 한 번 가보세요. 누구라도 우리처럼 살가운 정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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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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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현희

덧붙이는 글 | 김천시 농소면 봉곡리 샙띠마을은 왜가리 마을로도 이름나 있습니다. 이날 제가 이 마을에서 본 새들이 마을 어르신 말씀으로는 왜가리와 황새라고 하시던데, 정확하게 왜가리와 황새, 백로 등 이름을 잘 모르겠네요. 모두 왜가리과 새라는 것은 알겠는데, 사진 속에 나오는 새 종류를 정확하게 아는 분이 계시다면, 가르쳐주세요.


덧붙이는 글 김천시 농소면 봉곡리 샙띠마을은 왜가리 마을로도 이름나 있습니다. 이날 제가 이 마을에서 본 새들이 마을 어르신 말씀으로는 왜가리와 황새라고 하시던데, 정확하게 왜가리와 황새, 백로 등 이름을 잘 모르겠네요. 모두 왜가리과 새라는 것은 알겠는데, 사진 속에 나오는 새 종류를 정확하게 아는 분이 계시다면, 가르쳐주세요.
#샙띠마을 #자두꽃축제 #김천시 농소면 봉곡리 #왜가리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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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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