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통은 방계로 흐르며 피를 볼 것"

[역사소설 수양대군 4]인간이 그리운 임금, 나가 살고 싶다

등록 2011.08.15 21:03수정 2011.10.07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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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산 광화문 사거리에서 바라본 백악산 ⓒ 이정근


조선을 개국한 혁명세력은 새로운 도읍지를 어디로 할 것인가를 놓고 난상 토론을 벌였다. 서운관을 중심으로 한 관변세력은 계룡산을 선호했고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추천한 반면 정도전은 백악을 주장했다. 결과는 목멱산을 안산으로 하고 백악을 주산으로 한 복안이 낙점되었다. 정도전의 쾌승이다. 근정문은 어떠한 뜻을 가지고 있느냐는 이성계의 하문에 정도전은 막힘없이 답했다.

"아침에는 정사를 돌보고, 낮에는 어진이를 찾아보고, 저녁에는 법령을 닦고, 밤에는 몸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임금의 소임입니다. 이 문을 드나들면서 한시도 그 뜻을 잃지 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개국공신 정도전이 유교의 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시경(詩經) 대아(大雅)편에서 따와 이름을 지었다는 경복궁. 허나, 광화문에서 궁의 주산 백악을 바라보면 비틀어져 있다. 때문에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조선이 경복궁을 법궁으로 쓰는 한 왕통이 적통으로 흐르지 않고 방계로 흐르면서 피를 볼 것이다."

골육상쟁을 예견한 핏빛 예언이다. 틀린 말 같기도 하고 맞는 말 같기도 하다. 태조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의 왕통이 계비 신덕왕후 소생 방석에게 이어질 뻔 하다가 왕자의 난으로 무산되면서 정종에게 갔다. 정종 역시 이성계의 맏아들이 아니다. 장자는 진안대군이다. 정종에게 있던 왕통 역시 그의 장자에게 계승되지 못하고 아우 태종에게 승계되었다.

태종 또한 맏아들 양녕대군을 세자로 삼았지만 폐위하고 셋째아들 충녕대군에게 대권이 돌아갔다. 세종대왕이다. 세종은 업적도 많지만 부인과 자식도 많다. 여섯 명의 부인에게서 18남 4녀를 두었다. 왕성한 생산력이다. 열여덟 명의 아들 중에서 똑똑한 아들이 많다는 것이 오히려 화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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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산 경복궁 뒤 백악산 정상에 있는 표지석 ⓒ 이정근

세종은 맏아들 이향을 세자로 삼았다. 문종이다. 조선 최초의 적장자 세자다. 세상 사람들이 다시 수근대기 시작했다.


"백악산이 비틀어져 왕통이 방계로 흐른다는 속설은 근거 없는 낭설이다. 그러한 뜬 소문을 입에 담는 자는 고려를 흠모하는 불순세력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약점은 있었다. 이향이 세종의 맏아들로 태어난 것은 분명한데 경복궁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문종은 세종이 태종의 셋째 아들로 대군 생활을 하고 있던 장통방 사저에서 태어난 것이다. 이 때 태종의 세자는 양녕대군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단종은 가장 완벽한 세자였다. 허니, 단종이 어떠한 길을 가게 될지 세인들의 초미의 관심이다.


근정문에서 즉위한 단종은 경복궁이 왠지 싫었다. 침소에 들어 잠 못 들어 뒤척이는 밤. 뒷산 백악에서 울어대는 부엉이 소리가 무서웠다. 자선당에서 자신을 낳고 하룻만에 돌아가신 어머니.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워주고 서른여덟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 아버지. 신랑 정종을 따라 사가에 나가있는 누나. 지밀상궁이 밤을 세워 지켜주지만 무서웠다. 이 세상에 홀로 있는 것만 같았다.

어린 임금의 마음을 간파한 황보인과 김종서가 다른 궁으로 이어(移御)할 것을 주청했다. 반갑고 고마운 제안이었다. 당장에 옮겨갈 것을 지시했으나 창덕궁을 한동안 비워두어 수리해야 입궁할 수 있다는 보고였다. 경복궁을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다. 창덕궁을 영선하라 명하고 수강궁으로 들어갔다. 태종이 세종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거처하던 별궁이다.

수강궁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그리웠다. 나가 살고 싶다. 물망에 오른 곳이 효령대군 사저였다. 효령대군이면 할아버지뻘되는 종실 어른이다. 나가 산다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았지만 결정했다. 그곳 역시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집 같았다. 인간이 그리웠다.

누나가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 허나, 출가한 공주가 궁에 들어와 사는 것은 법도에 어긋났다. 방법은 하나. 임금이 나가는 것이다. 때는 바햐흐로 춘삼월. 피접을 명분삼아 영양위 정종집에 나와 있으나 처서가 지나도 창덕궁 수리는 요원하다. 창덕궁 중수를 기회로 황보인과 김종서가 자신들의 사저를 증축하고 개축하는데 자재를 가져다 쓰고 숙련된 목공과 석공을 차출해버렸기 때문이다.

먼저 치고 사후 보고하는 것이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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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문. 경복궁 내문 ⓒ 이정근


"입직 승지를 불러내라."

권람이 시좌소 문으로 향했다. 잠시 후, 문 밖으로 나온 최항은 아연실색했다. 적잖은 무사들이 포진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그들을 호위하고 있는 순졸들은 어느 나라 순졸이란 말인가?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몸둘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하는 최항의 손을 수양이 덥석 잡았다.

"황보인·김종서·조극관·이양·윤처공·민신·원구·이명민·조번이 안평과 한패가 되어 불궤한 짓을 저지를 날짜까지 정하였소. 그게 내일 모레 열 이튿날이오. 이에 형세가 매우 위급하여 이미 적괴(賊魁) 김종서 부자를 베었고 나머지 잔당을 지금 토벌하고자 한다. 일찍이 고하지 못한 것은 그들과 내통하는 김연과 한숭이 주상의 곁에 있으므로 그리 되었으니 지금 아뢰어라."

수양이 입직 승지와 함께 따라 나온 환관 전균에게 덧붙였다.

"황보인과 김종서가 안평과 결탁하여 모사를 꾸미고 함길도절제사 이징옥, 경성부사 이경유, 평안도관찰사 조수량, 충청도관찰사 안완경 등과 연계하여 종사를 위태롭게 하였다. 옛 사람들이 먼저 일을 처리하고 뒤에 보고하는 선발후문(先發後聞)을 본받아 이미 김종서 부자를 죽였으나 황보인과 그 패당이 아직도 살아있으므로 지금 처단하기를 청하는 것이다. 속히 들어가 아뢰어라."

환관 전균이 부들부들 떨었다.

"주상께서 놀라시니 소리를 부드럽게 하고 천천히 아뢰어라."

승지와 환관을 시좌소로 들여보낸 수양은 김처의를 시켜 입직 사령 도진무 김효성을 불러냈다. 사건의 전말을 전해들은 김효성이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상관 병조참판 이계전을 불러냈다. 머리를 맞대고 숙의하던 최항과 김효성, 이계전은 판세를 읽고 수양에게 붙었다. 신속한 줄서기다.
#이성계 #정도전 #수양대군 #이방원 #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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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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