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5월 21일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내각수반에 장도영(전 육군참모총장), 외무 김홍일(첫줄 왼쪽에서 네번째) ,내무 한신, 재무 백선진 등을 임명하는 등 혁명내각을 구성하고 한자리에 모여 기념촬영를 하고 있다. 첫줄 가운데 양복차림을 한 이가 김동하
연합뉴스
한편 이한림 1군사령관 등은 쿠데타 세력들을 진압하려 했으나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급기야 미국 국무성은 이날 한국의 군사정부를 인정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나라 안팎으로 모든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명실공히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 일파는 이날 군사혁명위원회를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칭하고는 의장에 장도영, 부의장에 박정희가 추대됐습니다. 최고회의는 5월 20일 이른바 '혁명내각'을 발표함으로써 군사정부를 수립했는데, 각료들은 쿠데타에 가담했던 군인들이 임명됐습니다. 그밖에 김홍일(金弘壹)·김동하(金東河) 두 예비역 장군은 고문에 추대됐습니다.
여기서 고문으로 추대된 김홍일·김동하 두 사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김홍일은 중국에서 항일 독립투쟁을 벌인 인물로 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요청으로 폭탄을 제작해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지원한 바 있습니다.
해방 후 이승만의 특별지시로 육군 준장에 임명된 그는 한국전쟁 초기 1군단장을 맡아 참전하였으며 1951년 육군 중장으로 예편한 후 1961년 5·16 직전까지 주 중화민국 대사로 근무하였습니다. 그런 그가 쿠데타 세력에 동조하여 '혁명내각'의 각료(외무부장관)를 지냈으며, 1965년 박정희 정권의 한일협정 체결에 반대하면서 야당 정치인으로 변신했습니다.
나머지 한 사람 김동하. 그는 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1년 선배로 5·16 때 박정희를 도와 쿠데타를 성공시킨 주역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는 국가재건최고회의 고문과 최고회의 운영기획위원장, 재정경제위원장, 외무국방위원장, 대한체육회 회장 등을 역임한 후 1963년 해병 중장으로 예편했습니다.
5·16 때 '선봉장'격인 해병대의 참가를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그는 박 정권 초기 실세 중의 실세였으나 그의 삶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혁명공약' 이행을 놓고 박정희 일파와 갈등을 빚었기 때문입니다. '혁명공약' 6개항 가운데 마지막 6항은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은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무렵 '혁명주체들' 간에는 '원대 복귀' 문제를 놓고 의견 다툼이 있었습니다. '원대 복귀'는 그들의 공약사항이었습니다. 공화당 창당 과정에서 빚어진 잡음으로 김종필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외유를 떠나기 1주일 전인 1963년 2월 18일,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던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조건부 민정 불참'을 골자로 한 '시국수습에 관한 9개 방안'(2·18 선언)을 내놓았습니다. 그로부터 열흘 뒤인 2월 27일 박임항, 윤태일, 이주일, 김동하 등 '혁명주체' 몇 사람은 약수동 비밀요정에서 모임을 갖고 제1차 원대복귀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것이 이른바 '2·27 선언'입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초심'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김종필 등 박정희 친위세력들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당초의 약속의 뒤로한 채 민정이양을 차일피일 미루더니 급기야 '원대복귀'를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방원철의 증언에 따르면, 김종필은 "등기문서는 처음부터 내 이름으로 해야지 제3자 이름으로 했다가 나중에 다시 내 이름으로 하기는 어렵다"며 박정희에게 눌러 앉아 집권할 것을 권유했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초대 공화당 조직부장을 지낸 강성원은 "군정 기간 중 집권 타성에 젖어 이미 권력의 단맛을 본 데다 박정희 주변에 직업정치인 등 집권구축 세력이 강하게 형성된 탓"이라고 필자에게 증언한 바 있습니다. 당시 박정희는 몇 차례에 걸쳐 민정불참 선언을 번복해 이를 두고 '번의(翻意) 대통령'이라는 불명이 붙여졌었습니다.
선배도 가차 없었다... 박정희 정적된 김동하박정희에게 이들은 군관학교 선후배들이자 목숨을 걸고 쿠데타를 감행한 동지들이었지만 절대권력 앞에서는 이것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원대복귀'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이들은 졸지에 정적(政敵)으로 둔갑했고,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