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상
이정근
부인은 원래 수양의 배필 후보가 아니었다. 세종은 윤번의 맏딸이 조신하다는 말을 듣고 상궁을 파견했다. 허나, 돌아온 상궁은 첫째보다도 둘째가 훨씬 야무지다고 보고했다. 세종은 마음을 바꿔 둘째를 수양의 아낙으로 맞아들였다. 본의는 아니지만 언니의 신랑감을 가로챈 것이다. 부부인의 의중은 곧 한명회에게 전해졌고 한명회는 임금을 움직였다.
"과인과 중전이 영의정 집에 가서 잔치하고자 한다."임금이 승정원에 전교하자 대궐이 발칵 뒤집혔다. 임금이 신하 집에 가서 잔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중전이 간다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좌헌납 서강이 반대하고 나섰다.
"수양대군 저사(邸舍)에 행행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예전에 임금이 대신 집에 임하신 일은 간혹 있지만 중궁께서 친히 가시는 일은 없었습니다. 어찌 국모로서 가볍게 거둥할 수 있겠습니까? 거두어주소서.""중궁이 친히 가야 수양 부인을 위로할 수 있다.""중궁이 신하의 집에 가는 것은 조종조(祖宗朝)에 예가 없습니다. 전하께서 친히 가시면 됐지 어찌 중궁이 함께 가야만 예라 할 수 있겠습니까?""내 뜻이 이미 정해졌으니 돌이킬 수 없다."임금이 중전과 함께 경복궁을 나섰다. 좌의정 정인지, 우의정 한확, 도승지 신숙주, 좌부승지 권남, 동부승지 한명회, 좌승지 박원형, 우승지 권자신, 우부승지 구치관, 판내시부사 엄자치, 환관 전균이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