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경회루
이정근
수양이 4공신을 거느리고 경회루에서 풍정을 올렸다. 양녕대군 이제, 효령대군 이보, 임영대군 이구, 금성대군 이유, 영응대군 이염, 익녕군 이치, 화의군 이영, 계양군 이증, 의창군 이공, 한남군 이어, 밀성군 이침, 왕비의 아버지 여량군 송현수, 도승지 신숙주, 좌승지 박팽년, 우승지 박원형, 좌부승지 권자신, 동부승지 구치관, 우의정 한확, 우부승지 권남, 병조참의 양정, 지병조사 이예장이 참석했다.
고관대작들은 잔치로 밤을 새웠다. 이들의 잔치는 보릿고개를 넘기며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던 백성들에겐 딴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배고픔에 허덕이는 백성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안 들은 척, 입이 있어도 입을 꾹 닫고 살아야 하는 강요된 침묵이었다.
민심이 흉흉했다. '나라에서 안평대군 별장 담당정 근처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집은 모두 철거한다'는 괴소문이 떠돌았다. 주민들은 동요했고 백성들의 원성은 대궐을 향했다. 바짝 긴장한 의금부가 소문의 진원지를 추적했다. 박수생과 이징량의 딸 이심방이 용의 선상에 올랐다. 이들을 추포하여 국문했으나 배후는 밝혀지지 않았다.
밤 3경. 창덕궁에 불길이 솟아올랐다. 궁녀들은 비명을 지르고 궁노들은 물을 길어다 붓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아수라장이었다. 궁궐에는 진귀한 물건이 많다. 좌우포청에 비상이 걸렸다. 혼란을 틈탄 약탈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도성의 밤하늘을 환하게 밝힌 불길을 바라보는 백성들은 마음으로 박수를 쳤다. 이 화제로 서쪽 행랑 23간이 소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