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한양을 도읍지로 정할 때 정도전이 조산(祖山)으로 삼았던 영산(靈山). 왼쪽이 만경대, 가운데가 백운대, 오른쪽이 인수봉이다. 이들 세 봉우리가 뿔처럼 솟아 있다하여 삼각산이라 부른다.
이정근
"말끝마다 '나리!' '나리!' 하는데 그 말버릇 좀 고칠 수 없나? 이제는 영의정이지 않으신가?"홍윤성이 끼어들었다. 수양이 예전에는 임금의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로 대군(大君)이라 불리었지만 이제는 영상의 자리에 있으니 그에 걸맞게 언사를 고치고 예우하라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영의정은 딱 한 사람 아래다. 만인이 우러러보는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높은 자리다. 물려받는 세습의 자리도 아니고 연로하다고 올라가는 자리도 아니다. 임명권자가 임명하는 최고의 자리다. 당연 만백성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자리다. 허나, 수양은 자기가 그 자리에 올라가 있다. 모양새가 썩 아름답지 않다. 좌정한 사람들 모두 한명회를 주시했다. 그의 응대가 궁금한 것이다.
홍윤성은 수양 휘하 중 신숙주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문과 출신이다. 그는 세종 때 문과 급제했지만 무반(武班)으로 방향을 틀었다. 개인적인 무재(武才)도 있었지만 병약한 문종과 어린 임금의 세상을 난세로 읽었다. 난세(亂世)에는 모든 힘이 무(武)에서 나오고 문(文)보다 무(武)가 활동영역이 넓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리한 분석이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면 주변부는 쑥대밭이 되지만 중심부는 무풍지대다. 전쟁이 발발하면 군대에 있는 것이 오히려 안전하다는 역설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전쟁 때,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던 만군 출신 매국노들이 대거 군에 들어가고 일제의 앞잡이로 동족을 탄압하던 충견들이 군대에 들어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용량 부족을 절감한 황금, 보석을 천거하다홍윤성은 사복시에 근무할 때 수양에게 발탁되었다. 사복시는 궁중의 말(馬)을 관장하고 왕실 목장을 담당하는 기관이지만 병조 아문이다. 수양의 그릇을 파악한 그는 권람을 천거했고 자신의 용량으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권람은 한명회를 추천했다. 돌이 황금을 알아보고 황금이 보석을 알아본 격이다.
"소인이 권승지의 소개로 나리를 처음 뵈었을 때 목숨 바쳐 모시기로 결심했습니다. 주군(主君)을 위해 이 한 목숨 바치기로 작심했다 이 말씀입니다. 지금 이렇게 살아 있지만 이 목숨은 소인의 목숨이 아닙니다. 죽으면 주군의 수하로 죽고 살면 주군의 신하로 살고 싶습니다. 그러한 나리께서 어좌에 오르시면 전하라고 부를까 그 이전에는 바꾸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한명회의 성깔이 언제부터 이렇게 칼칼해졌던가? 권람도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