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아내 앞에서 강에 빠져 죽은 까닭

노래의 고향 (3) 공무도하가

등록 2012.06.14 11:25수정 2012.08.1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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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거리' 중국 단동(강의 왼쪽)과 북한 신의주가 마주 보고 있는 압록강 하류. 강폭은 물론 두 곳의 빈부 차이가 주는 '거리'까지도 확연히 드러나는 풍경이다. ⓒ 정만진


이른 새벽, 조선(朝鮮) 땅의 곽리자고(霍里子高)는 나루에서 배를 손질하던 중 기이한 광경을 본다. 술병을 낀 백발의 사내가 머리카락를 풀어헤친 채 거센 물살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뒤따라 달려온 백수광부(白首狂夫)의 아내가 남편을 붙잡으려고 했으나 미치지 못한다. 결국 사내는 물에 빠져 죽고 만다.

넋을 잃고 물가에 앉았던 아내는 공후(箜篌)를 튕기면서 애가 타들어가는 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더 없이 비장했다. 이윽고 노래를 끝낸 아내는 스스로 물로 들어가더니 남편을 따라 목숨을 버렸다.


기가 막히는 비극을 목격한 곽리자고는 집으로 돌아와 아내 여옥(麗玉)에게 보고 들은 것을 애절하게 전했다. 이야기를 들은 여옥도 눈물을 흘리면서 공후를 꺼내들고는 백수광부의 아내가 부른 넋두리 같은 노래를 다시 불렀다. 여옥은 노래를 이웃에 사는 친구 여용(麗容)에게도 가르쳐 주었다.

님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님은 기어이 물속으로 들어갔네.
기어이 물에 빠져 죽으셨으니
님이여! 어쩌란 말인가!

백수광부 아내의 울부짖음은 당시에 한글이 없었으므로 당연히 '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當奈公何' 등으로 한역되어 전한다. 한문으로 옮겨진 시기는 대략 기원 전 108년 이후 한사군 시대로 여겨진다. 하지만 <공무도하가>는, 배경설화 속의 '조선'이 (기자조선 및 위만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일연이 처음으로 채택한 이래 지금껏 우리가 애용하는) '고조선'이 아니라 중국 직예성(直隸省)의 '조선현'을 가리키고, 그곳에 '곽리'라는 마을도 있는 것으로 미루어 중국 노래로 추정되기도 한다. 그 탓에 이 노래는 중국의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현'은 중국인들만 거주한 것이 아니라 아득한 옛날부터 우리 민족들도 살았던 곳이므로 꼭 그렇게 단정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강의 양화도가 <공무도하가>의 진원지라는 일각의 주장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백수광부 설화를 후세에 전한 문헌이 3-4세기에 중국을 지배했던 진(晉)의 최표가 편찬한 <고금주> 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강 일대의 민요성 노래가 그 시대에 북경 일원까지 퍼져 문자화되었다는 것은 신빙성이 없다.

압록강변에 서서 백수광부를 떠올리는 나의 마음


2009년 8월, 단동에 닿은 나의 마음은 백수광부 설화의 무대가 압록강이라는 '소수 의견'에 심정적으로 젖어든다. 곽리자고가 강변의 진졸(津卒)이었다는 <고금주>의 기록과 압록강 일대가 고조선의 강역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수긍이 가기 때문이다.

1388년 5월, 이곳에 도착한 이성계는 강을 건너려 하지 않았다. 중국을 '건널 수 없는 강'이라고 생각했던 탓이다. 그의 손에는 '꿈의 세계'로 안내하는 술병도 없었고, 머리카락도 평범하게 검었다. 스스로 '미친'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던 그는 군대를 돌려 현실의 권세와 부유를 챙겼다.

이성계와 달리 백수광부는 강을 건너 '새로운' 세계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건널 수 있으면 이미 강이 아니므로, 백수광부와 같은 사람 앞에는 언제나 강이 도사리고 있다. 그는 결국 강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아는 아내가 말리지 않을 리 없다.

소월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에서 소년이 간구하는 것처럼, 세상의 아내는 남편과 더불어 강'변'에서 살고 싶다. 그 소원을 실현하는 것, 그것이 아내에게는 강을 건너는 일이다. 하지만 남편이 강을 건널 수 없듯이, 그녀에게도 강을 건너는 일은 허락되지 않는다. 사람은 강을 건널 수 없다! 그녀도 마침내는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엄마야 누나야>와 <공무도하가>의 차이

나는 노을이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압록강'변'에 서서 <공무도하가>에는 왜 어린 아들이  나오지 않는지 생각해본다. 답은 간명하다. <엄마야 누나야>와 달리 이 노래에서는 아버지만이 아니라 어머니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공무도하가>는 철 모르는 어린 소년이 어지러운 저잣거리를 떠나 자연의 중심으로 들어가 살자며 어머니를 보채는 <엄마야 누나야>의 세계와 다르다. 김소월의 노래는 현실도피적인, 좋게 말하면 자연친화적인 '어른을 위한 동시'이지만 <공무도하가>는 삶의 궁극적 의미를 찾아가는 인간 탐구의 울부짖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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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의 노을 붉게 노을이 물든 압록강. <공무도하가>의 백수광부가 강을 건너던 때에도 강은 아마 이처럼 붉었을 것이다. ⓒ 정만진



단동에서 바라보는 압록강의 풍경은 자못 애통하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잠시 잃었지만, 압록강은 단군 이래 줄곧, 그리고 1712년에 '백두산 정계비'를 세운 이후 그 누구도 '시비'할 수 없는 우리의 국경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분단의 질곡에 갇혀 남한에서는 압록강 남안을 거닐 수 없다. 헌법으로는 엄연히 '국토'이건만 그저 관념상의 땅에 멈춰 있을 따름이다.

게다가 중국의 공세가 강화되어 자칫하다가는 북한땅이 그들에게 사실상 넘어가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압록철교와 위화도를 기준으로 보면 중국쪽은 고층빙딩 등으로 번화한 면모를 보여주는 반면 신의주쪽은 여전히 수십년 전의 풍경에 머물러 있다.

백수광부가 머리를 풀어헤친 채 건너려다 익사하는 강이 북경 북쪽의 강이든, 아니면 '대한민국의 국경'인 압록강이든, 정치적으로 보면 그는 조국의 현실을 극복하려 애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무도하가>는 사회참여시가 아니므로 그렇게까지 넓혀서 읽으면 그저 확대해석이 될 뿐이다.

다만 나는 지금, '오늘의 백수광부'가 통일과 민주화, 조국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미친' 듯이 온몸을 던져 '운동'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그래서 압록강의 노을이 이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에 젖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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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집중화 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는 '강'이 없다. 강화도, 거제도, 진도, 남해도, 안면도 등에서 보듯이 '섬'도 점점 없어지고 있다. ⓒ 정만진


#공무도하가 #엄마야누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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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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